밤을 달려 온
연여름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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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이 소설집은 총 여덟 편의 이야기를 이루어졌다.
아니, 여덟 개로 이뤄진 밤의 조각이라고 해도 좋다.

이 책은 동화적인 요소와 아포칼립스적인 요소, 퍼져가는 바이러스, 시간이 뒤틀린 세계, 밤과 낮이 뒤바뀐 세계, 아이가 부모를 고르는 세계, 꿈이 사라지고 만들어낸 꿈을 이식하는 세계

이러한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그 속에 SF적 상상력 위에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수성으로 풀어낸 여덟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이 작품이 다른 여타 SF 소설과는 다른 점은 이 작가가 느끼고 겪고 있는 어둠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 비판을 한 웅큼씩 집어 넣었다.

책을 읽는 우리들은 밤의 조각을 하나씩 입에 집어 넣듯 한 편씩 단편을 집어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은 제각기 다른 맛이겠지만, 내 안 깊숙한 데까지 건드리는 그런 익숙하고 그리운 맛이 있었다.

​책을 펼치며📖

1. 하품

무기력과 잠이 바이러스가 되어 전체 인구 80% 이상이 전염된 '솜누스' 사태 이후 후유증으로 꿈을 꾸지 못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 수요에 맞춰 '모프시스' 기업은 레디메이드를 비롯한 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꿈을 이식한다.
주인공은 꿈 설계사로서 '호연'에게 꿈을 이식해준다.
동시에 가족 초대 심사를 받기 위해 '윤재'와의 접견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을 꿈 이식이라는 기술이 불러오는 위험성과 중독.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온 폭력과 학대를 되돌아보게 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아이가 부모를 고른다는 설정 자체가 자극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난 이 작품은 더욱 아픔에 집중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들의 아픔이 '하품'처럼 전염될 수도 있으며 그저 하품 한 번 쉬었다고 몇 번이나 구타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사회는 편히 하품을 쉬어도 되며, 깨지 않는 악몽이 잠을 자지 않아도 떠오를 정도로 아파와도.

우리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
그리고 마음껏 하품하고 웃어도 된다.
누가 뭐라고 할 권리도 없으며, 설령 그렇다할지라도 선택하고 화를 낼 권리는 우리에게도 있다.
무기력과 잠이 바이러스가 된 배경과는 달리 현재 사회는 털 끝 하나 닿기라도 하면 기겁하며 일그러진 표정을 짓기 일쑤이다.
언제부터 이런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고 팽배해졌을까.

2. 밤을 달려 온

표제작인 이 작품은 밤과 낮이 뒤바뀐 시대를 살아가는 '온'을 중심으로 달려간다.
12년을 주기로 밤과 낮이 뒤바뀐다.
'라크'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온은 경비대장의 저택에서 시종으로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가오는 밤을 두려워하며 서둘러 불을 지필 기름을 준비하고 식량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한 손님이 찾아온다.
그 이름은 '나기'
온은 나기의 몸에 묻어난 땀을 닦아주며 어떠한 기억과 감정을 읽어낸다.
온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있었다.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닿기만 해도 슬픔이 전이되고 아픔이 찾아온다.
기쁜 기억이 전해져 내려와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곧 찾아오는 어둠이 두려움이 아닌 누구보다 밝은 어둠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하늘에 수놓은 별을 따라가면 가야할 길을 알 수 있듯 온은 찾아오는 어둠에 망설이지 않고 달려간다.
두려움은 곧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들고, 제대로 된 판단도 하지 못하도록 한다.
과거와의 작별은 영영 불가능하며 찾아온 현재는 밤이 되어 영영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늘을 보라.
별은 우리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나를 지키고 보호해줄 수 있는 곳으로.
늘 구박을 받고,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밤이면 나기의 기억 속 자그마한 등불을 떠올린다.
우리는 자그마한 등불 하나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거나 과거에 치일 때가 많다.
우리에게는 늘 자그마한 등불이 필요하다.
당신에게도 밤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등불이 마음 속에 자리하기를.

책을 덮으며📔

이 책을 읽고 서평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도 '연여름' 작가의 작품은 꼭 읽어볼 마음이 들었다.
당신에게도 밤의 조각을 꼭 천천히 음미하고, 어두움을 받아들이고 달려갔으면 좋겠다.
부디 밝은 ​밤이 함께 하기를.

나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요즘 온을 위한 등불인 동시에 호론이었다.
매일 조금씩 커진 밤의 조각이 찾아올 때도,
온은 두려움을 밀어내기 위해 나기가 들려준 밤 이야기를 떠올렸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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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 탄자니아 여행그림책
나태주 지음 / 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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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교과서에 수록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여행 시집을 읽었다.
최근의 나는 매일같이 일하고, 잠들기 전에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밤이 깊어지면 운동을 나갔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시간에 샤워를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꿈 속에서는 희미한 스케치가 그려졌다.
풀꽃이 흔들리는 이미지.
꽃들 사이에 피어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내 일상을 침식하고 있었다.
그의 시처럼 천국도 지옥도 아닌 세상.
돌아보니 천국이었던 곳이 있었고, 지옥이었던 곳이 있었다.
차라리 내가 천국이었다면, 천사였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나태주 시인은 짧고 쉬운 언어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읽는 내내 담백하게 우려낸 곰탕 한 그릇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자극적이지도, 요란하지도 않지만 천천히 숟가락을 들수록 몸 깊은 곳까지 온기가 번진다.
문장은 짧고, 여운은 길다.
간결한 말 한마디가 마음속 가장 오래된 자리까지 스며들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닿는다.

​책을 펼치며📖

그는 월드비전을 통해 마련된 비행기를 타고 탄자니아로 날아갔다.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한 소녀의 얼굴.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던 아이.
'네마 니코데무.'
더 일찍 만나기 위해 황열병 예방주사까지 맞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그를 멈춰 세웠다.
탄자니아로 가는 길도 그렇게 미뤄졌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가 소녀를 만났을 때
아이의 시간은 훌쩍 자라 있었다.
사진 속 어린 소녀는 온데간데 없고 키는 무럭무럭 자랐고, 눈빛은 여전히 맑았다.
반대로 그는 나이가 들었다.

소녀가 꿈이 의사라고 말하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의사가 되면 한국에 놀러 오렴.”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내가 살아 있다면.”

이상 기후는 계속되었다.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검은 얼굴의 아이들은 뜨거운 대지 위에서 뛰어놀다가 이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양이나 염소와 같은 짐승은 목이 말라 몸을 낮추고 열기 속에서 희미한 숨을 고르며 힘을 비축했다.
그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생수 몇 박스라도 가져올 걸."

사람이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 땅에서 그는 묵묵히 살아가는 순수한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물이 없는 곳에서 눈물이 먼저 흘러나왔다.
살기 힘든 곳이라 여겼지만 그들은 오히려 천국에 사는 천사들처럼 보였다.

그의 시를 읽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삶을 저주하고 생명줄을 끊어버리고 싶다고 말하는가.
그 순간, 소 눈망울처럼 크고 맑은 눈이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다가와 내 손을 잡는다.
이상하게도 섬뜩했다.
삶이 조용히 끝을 향해 가는 건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마냥 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성한 잡초 위에 피어난 절망 속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말하는 그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가 쉽게 갖지 못하는 희망을 끝내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이상 기후를 모른 척하고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며 자기 안으로만 숨어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두렵고 섬뜩한 일 아닐까.
그가 내민 손이 또 다른 힘든 이의 손을 붙잡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그 장면.
어쩌면 그곳이 천국일지 모른다.

책을 덮으며📔

"차라리 내가 말이야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고
누군가의 천국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천국이었을까.
내 말과 행동은 누군가에게
떳떳한 천국이었을까.
지금 우리에게 나태주 시인의 말이 필요한 이유는 잊혀져 가는 천국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천사가 되어 사흘 동안 슬피 울던 이의 등을 쓸어준다.
나흘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울다가 웃으며 말한다.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다시 앞을 보니 이곳도 천국이었네.”

끝나지 않는 건 이상기후뿐만이 아닌 이상기후를 포착하지 못하고, 포착했지만 외면하는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는 일 조차 힘겨운 일처럼 느껴지는 요즘.
우리는 작은 손 하나 내미는 일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날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만 인간의 세상
허겁지겁 서두르고 아웅다웅 다투고
넘어졌다가는 일어서기도 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세상
날마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만 보통의 사람들
너나없이 서툴고 잘하는 일 많지 않고
자기만 오로지 챙기는 이기적인 천사도 악마도 아닌 사람들
하지만 말이야, 잠시 잠깐
발을 멈추고 돌아보면
금방 떠나온 그곳이 천국 아니었을까?
고대 헤어진 그 사람 또한
나에게는 천사 아니었을까?
정말로 그렇다면 말이야
지난날에서만 천국을 찾고
헤어진 사람에게서만 천사를 만나지 말고
앞으로 오는 세상에서도 천국을 찾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천사를 만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내가 말이야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고
누군가의 천국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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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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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책📚

나는 왜 이 바다를 읽게 되었을까.
책은 방대했고, 흑해만큼이나 깊었다.
그건 마치 깊이 잠들어있는 역사적 잔해물, 흠집 없이 보존된 난파선 같았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사실은 늘 바다를 두려워했다.
수영은 전혀 못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는 길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찰스 킹의 '흑해'를 읽으며 나는 그 두려움이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흑해는 오랫동안 세계의 가장자리에 놓인 바다였고, 사람들은 늘 이 바다 앞에서 상상과 공포, 욕망을 동시에 키워왔다.

"흑해는 '문명' 세계와 '야만' 세계가 만나는 곳이라기보다는,
그리스인과 후에는 로마인을 비롯한 외부인들이 오랫동안 해안 주변에서
다양한 생활 양식과 관습이 소용돌이치듯 뒤섞이던 과정에 스며들고,
그 일부가 된 곳이었다."

책을 펼치며📖

이 책은 하나의 바다에 관한 역사서지만, 읽는 동안 나는 자꾸만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경계를 만들어왔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흑해는 세계의 끝이었고, 그래서 신화가 태어났다.
그러나 신화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곧 상업이 들어오고, 식민지가 세워지고, 제국의 이름이 바다 위를 떠다닌다.
흑해의 이름이 시대마다 달라졌다는 사실은, 이 바다가 얼마나 자주 타인의 언어로 불려왔는지를 말해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다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설명이었다.
산소가 닿는 얕은 층에만 생명이 있고, 그 아래는 거의 죽음에 가까운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다는 이야기.
나는 이 구조가 이 바다를 둘러싼 역사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지만, 모두가 기록으로 남지는 않았다.
어떤 삶은 수면 위에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졌고, 어떤 것은 심해처럼 말없이 가라앉았다.

책 속에서 흑해는 언제나 이동의 장소였다.
스키타이인들, 로마인들, 비잔틴과 이탈리아 상인들, 그리고 오늘날의 국가들까지.
누구도 이 바다에 완전히 머물지 못했고, 모두가 무언가를 남기거나 가져가려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바다가 인간을 거부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흑해는 늘 사람을 받아들였지만, 결코 그들의 소유가 되지는 않았다.

오늘의 흑해는 다시 정치의 언어로 불리고 있다.
석유와 가스, 파이프라인, 국경.
그러나 이 책을 덮고 나면 그런 단어들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천 년 동안 반복되어온 떠남과 침묵이다.
흑해는 늘 경계에 있었고, 경계는 언제나 불안과 매혹을 동시에 품는다.

​책을 덮으며📔

'흑해'를 읽으며 나는 바다를 이해하게 되었다기보다, 내가 왜 바다 앞에서 멈춰 서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시간이며, 장소가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세계를 건너온 것인지, 아니면 늘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며 이름만 바꾸어 불러왔던 것은 아닌지. 흑해는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오래도록 남긴다.

바다의 과학조차 민족 개념의 유호글 피할 수 없었다.
한때 오스만의 멍에에서 새로 해방된 민족의 유산으로 찬양받았던 바다는
이제 소련 팽창주의의 탐욕으로부터 지켜야 할 보물로 선전됐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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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서툰 사람들 -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고선규 지음 / 아몬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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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책📚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아오키 신문’의 장편소설 ‘납관일기’를 원작으로 한 ‘굿바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은 첼리스트를 그만두고 죽은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납관일을 하게 되며 많은 이별을 마주한다.
그 속에서 마주했어야 하는 이별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별이 교차한다.
나는 죽은 이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납관사인 주인공 뒷편에는 죽은 이의 가족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히 그가 조심히 떠나기를 바랐다.
그들의 표정에는 슬픔이 물처럼 흐르고 있었고、주체할 수 없어 서로를 껴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애도하는 과정을 거쳐 떠난 이를 보내주었다.
‘굿바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때에야 이들의 슬픔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가 전국 자살로 사별한 이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결과를 열 편의 영화를 들어 설명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주고, 고통받는 이들을 따스하게 쓰다듬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비밀 보장의 원칙을 준수하면서 저자는 슬픔이 서툴지 않도록 친절하게 설명했다.

여러분 모두가 본 영화도 있을 것이며, 접하지 못한 영화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모두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어떤 이는 어떠한 감정도 새어나오지 않으며,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한 이들도 있다.
우리 모두가 상실을 겪는 것은 필연적인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 상실 앞에서 우리는 눈물을 참을 필요가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마치 수돗물을 받아놓은 대야에 물이 넘치고, 냄비에 물이 끓어 올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저 흘려보내면 된다고.
그저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위해 애도하자고.

책을 펼치며📖

우리는 슬픔을 적대시한다.
혹은 두려워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심연이라고 생각하거나, 쉴새 없이 흐르는 물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슬픔이 서툴다는 건 우리가 슬픔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건 아닐까.
저자는 영화 속 주인공을 병원 면담자로 내세워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을 진행하는 내내 그들은 천천히 종이에 잉크가 스며들고、발끝에서 머리까지 물이 차오르듯 슬픔을 마주한다.

우리는 슬픔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나는 슬픔이 괴물같다거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슬픔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를 구성하는 몇 안되는 소중한 감정이 내게 말한다.
나를 하찮게 생각하지 말고, 보고 싶은대로 보지 말고 제대로 응시해라고.
그럼에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슬픔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때가 있다.
그때는 어린아이처럼 울거나, 누가 쳐다볼까 두려워 울음을 참는다.
우리는 언제든지 슬픔에 서툰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슬픔이 서툰 우리가 상실을 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알려주기에 이 책을 추천드린다.

책을 덮으며📔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입니다.
사별자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실의 슬픔이 억눌리지 않고 관계 속에서 철철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늘 한 지점을 의식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것이 얼마나 조용하고, 얼마나 고독한지를 쓰고 싶었다.
이 욕망은 결국 나를 향해 되돌아왔고, 끝까지 마주하기에는 지나치게 힘이 들었다.
볼에 남은 흉터는 오래전의 기억이다.
그때의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떤 행동을 반복했다.
몸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 생각보다 앞서는 본능.
피가 시간의 단위처럼 떨어질 때서야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평소 슬픔을 말로 옮기지 못하는 아버지는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실까.
어머니는 아마 울음을 멈추지 못하겠지.
그 상상을 하는 순간,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았다.
그날 나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남아 있었다.
반대로도 생각해봤을 때 난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존재에게 우리가 마음을 쏟았다면、
관계에서 주고받았던 감정과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를 잃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요。
스스로 애도할 권리를 박탈하지 말자고요。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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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디자인 - 우리 시대의 프로덕트 디자이너 100
파이돈 편집부.켈시 키스 지음, 최다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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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책📚

이 책에 등장하는 100명의 디자이너는 각자가 선보이는 디자인으로 자신을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또렷한 선언이 아니라, 오래 쓰다 보니 손자국이 남은 가구처럼 선명하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우리는 삶이 풍족할 때 의자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건 마치 삶의 허전함과도 동일한 것이리라.

지금껏 수고한 내게 내리는 하나의 선물과도 같은 것.

이전에는 의자 생각도 못하다가 조금 여유로워지는 순간 포근한 의자, 몸에 딱 맞는 의자에 앉고 싶어 여기저기 의자를 알아보고 있다.

방 한켠에 놓인 의자 하나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생활을 알 수 있듯 그 곳에 한 사람의 편안함과 행복이 담겨 있을 것이다.


​책을 펼치며📖

각 시대마다 변해가는 세월 속에서 이들이 만든 의자와 테이블, 조명과 공간은 유행을 따라 움직이기보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가 나는 종종 디자인보다 사람을 먼저 보게 되었다.
어떤 가구의 각이 진 모서리와 소재에는 타협을 거부해온 삶이 느껴졌고, 필요 이상의 장식을 덜어낸 형태에서는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유의 시간이 읽혔다.
이들이 만드는 디자인은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각자의 삶과 생각이 응고된 하나의 문장처럼 보였다.

나 역시 내 삶의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 무심코 지나치는 공간들 속에 과연 나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편리함만을 기준으로 선택한 것들 사이에서, 나의 태도나 신념은 얼마나 드러나 있는지 묻게 된다.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이 삶의 결과라면, 나에게도 나의 선택들은 이미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자취하는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주변에서는 늘 맥시멈리스트라는 소리를 듣는 탓에 집에는 쓸데 없는 물건이나 책이 쌓여갔다.
지갑은 빈약했지만, 마음은 풍족했고 이들이 내 삶을 만드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정리해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방에 들어찬 물건들은 내게 말한다.
네 삶을 구성하는 날 어떻게 버릴 수가 있냐고.
내 삶을 위해 나는 물건을 버리지 않았다.
가능하면 오래 쓰고 싶어서 자주 쓰다가 그들이 지쳐가고 낡아갈 때가 찾아오면 그 날 그들을 보내주었다.
목때가 타거나, 늘어난 옷은 어딘가에서 재활용되어 다시 쓰임받기를 바랐다.
버려지는 가전제품이나 소파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보냈다.

"인터뷰에서 모리슨은 디자이너 이름은 없어도 오랫동안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물건이 내뿜는 분위기에서 자극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것들이야말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오래 쓰여 손때가 묻은 물건은 아우라가 생기고, 제가 놓인 공간을 정의하기에 이른다."

『삶을 위한 디자인』은 디자인을 통해 삶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삶이 어떻게 디자인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들의 가구와 디자인은 각자의 삶을 반영하고,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낸 흔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잘 만든 디자인’을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 각자의 삶 또한 어떤 모양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책을 덮으며📔

자 이제 내가 머무는 공간을 상상해보자.

먼저 문을 열면 방이 몇 개 보일 것이고, 주방이나 화장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먼저 어떤 공간으로 뛰어드는가?

바로 침대에 뛰어들고 싶다면 침대를 자신의 생활 리듬이나 몸 상태에 맞게 디자인해도 좋다.

혹은 책을 좋아한다면 여유로운 서재와 아담한 소파가 함께 이뤄진 나만의 독서 공간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은 어디에 가장 오래 머무는가.

이 질문의 끝에서 지금 세계를 대표하는 100명의 디자이너는 말한다.

단순히 아름다움에서 끝나는 디자인이 아닌 사용자를 생각하는 기획방식과 철학, 그리고 작업방식 속에서 삶을 위한 디자인이 만들어진다고.

누군가에게 디자인은 색이 선명하게 드러난 화려함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조명이 방을 비추고 있는 편안함일 수도 있다.

다른 이에게는 무심함처럼 다가와서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는 친근함일 수도 있다.

당신에게 있어 삶을 이루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떤 디자인을 원하며 더 나아가 내 삶에 있어 편히 쉴 수 있는 의자 하나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인터뷰에서 모리슨은 디자이너 이름은 없어도 오랫동안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물건이 내뿜는 분위기에서 자극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것들이야말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오래 쓰여 손때가 묻은 물건은 아우라가 생기고, 제가 놓인 공간을 정의하기에 이른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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