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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서툰 사람들 -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고선규 지음 / 아몬드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아오키 신문’의 장편소설 ‘납관일기’를 원작으로 한 ‘굿바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은 첼리스트를 그만두고 죽은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납관일을 하게 되며 많은 이별을 마주한다.
그 속에서 마주했어야 하는 이별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별이 교차한다.
나는 죽은 이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납관사인 주인공 뒷편에는 죽은 이의 가족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히 그가 조심히 떠나기를 바랐다.
그들의 표정에는 슬픔이 물처럼 흐르고 있었고、주체할 수 없어 서로를 껴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애도하는 과정을 거쳐 떠난 이를 보내주었다.
‘굿바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때에야 이들의 슬픔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가 전국 자살로 사별한 이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결과를 열 편의 영화를 들어 설명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주고, 고통받는 이들을 따스하게 쓰다듬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비밀 보장의 원칙을 준수하면서 저자는 슬픔이 서툴지 않도록 친절하게 설명했다.
여러분 모두가 본 영화도 있을 것이며, 접하지 못한 영화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모두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어떤 이는 어떠한 감정도 새어나오지 않으며,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한 이들도 있다.
우리 모두가 상실을 겪는 것은 필연적인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 상실 앞에서 우리는 눈물을 참을 필요가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마치 수돗물을 받아놓은 대야에 물이 넘치고, 냄비에 물이 끓어 올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저 흘려보내면 된다고.
그저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위해 애도하자고.
책을 펼치며📖
우리는 슬픔을 적대시한다.
혹은 두려워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심연이라고 생각하거나, 쉴새 없이 흐르는 물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슬픔이 서툴다는 건 우리가 슬픔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건 아닐까.
저자는 영화 속 주인공을 병원 면담자로 내세워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을 진행하는 내내 그들은 천천히 종이에 잉크가 스며들고、발끝에서 머리까지 물이 차오르듯 슬픔을 마주한다.
우리는 슬픔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나는 슬픔이 괴물같다거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슬픔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를 구성하는 몇 안되는 소중한 감정이 내게 말한다.
나를 하찮게 생각하지 말고, 보고 싶은대로 보지 말고 제대로 응시해라고.
그럼에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슬픔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때가 있다.
그때는 어린아이처럼 울거나, 누가 쳐다볼까 두려워 울음을 참는다.
우리는 언제든지 슬픔에 서툰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슬픔이 서툰 우리가 상실을 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알려주기에 이 책을 추천드린다.
책을 덮으며📔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입니다.
사별자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실의 슬픔이 억눌리지 않고 관계 속에서 철철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늘 한 지점을 의식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것이 얼마나 조용하고, 얼마나 고독한지를 쓰고 싶었다.
이 욕망은 결국 나를 향해 되돌아왔고, 끝까지 마주하기에는 지나치게 힘이 들었다.
볼에 남은 흉터는 오래전의 기억이다.
그때의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떤 행동을 반복했다.
몸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 생각보다 앞서는 본능.
피가 시간의 단위처럼 떨어질 때서야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평소 슬픔을 말로 옮기지 못하는 아버지는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실까.
어머니는 아마 울음을 멈추지 못하겠지.
그 상상을 하는 순간,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았다.
그날 나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남아 있었다.
반대로도 생각해봤을 때 난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존재에게 우리가 마음을 쏟았다면、 관계에서 주고받았던 감정과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를 잃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요。 스스로 애도할 권리를 박탈하지 말자고요。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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