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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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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께서 집필한 이 책은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한 책입니다.
일반적인 서사를 벗어나 책을 읽는 독자를 <그대>라고 부르죠.
책을 펼친 순간 이 책은 말합니다.
나보다 파격적인 녀석은 없을 걸?
맞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살아있습니다.
작가의 머릿속을 한 번 드나들고 다른 은하계로 여행을 갔을지도 모릅니다.
형체는 없고 작가의 머릿속에만 남은 채 말이죠.
지금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고요.

책을 펼치며📖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기며 스스로를 <여행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저를 소개합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
여행의 책이라니?
이건 마치 책이 살아서 말하는 것 같구나!
그런 책도 있었나.

홀로 고독한 책, 몹시 심술 궂은 책,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어 결국에는 중간도 못 가 책장을 덮게 만드는 그런 녀석도 있죠.
반면에 저를 기쁘게 하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그런 녀석은 제 서재에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근데 이 녀석은 다른 책이랑 성격이 달랐습니다.
앞에서 말한 책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죠.
이 책은 처음에는 상냥하게 손을 내밀며 함께 여행하자고 저를 꼬드깁니다.
이 녀석의 말이 얼마나 달콤한 지 손을 잡듯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죠.

아주 달콤한 말을 건넵니다.
함께 여행을 떠나자. 육체를 버리고 정신이 떠나는 여행.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 말이 예전에는 '함부로 나대지 마라.'라고 변환되어 들려왔죠.
그 때문이었을까.
본래 저라는 사람은 어딘가로 숨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아마 깊은 골짜기나 캄캄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늘 남의 시선을 신경쓴다.
이런 말을 자주 들었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그러한 경험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기억이 떠올리려고 하는 찰나에 이 녀석은 말합니다.

"이 여행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그대는 곧 돌아올 것이니,
차분한 호흡을 계속하고 있으라고
그대 육체에게 말하라.
나는 그대의 책이다."

이제 숨을 가다듬고 날아오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녀석의 말대로 해보죠. 뭐.

공기의 세계📗

그 중 첫 번째 공기의 세계를 떠다니며 산뜻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다가 폭포수에서 수련을 하던 도인을 마주하죠.
도인은 저에게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합니다.
제가 왜 바보일까요?
저는 그저 더 넓은 세상을 보았고, 인생은 그저 허깨비가 아니라고 말했을 뿐인데 말이죠.
근데 바보 같다는 게 마냥 나쁜 뜻은 아니더군요.
프랑스어 앵배실의 어원을 둔 참된 뜻의 언어로는 <발목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발목도 지팡이도 필요 없는 사람.
홀로 걷는 사람.
어쩌면 인생은 홀로 걸었을 때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홀로 걷지 않기 때문에 '바보'라는 소리를 못 듣고 자란거죠.
저는 바보입니다.
자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외쳐보시죠.
저는 바보입니다.
홀로 걷는다는 사람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전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허리를 구부린 채 두 손을 등에 모으고 걷는 어르신, 당당하게 걸어가는 어른의 모습 사이로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어린 아이의 설레는 뒷모습.
우리는 어쩌면 자신을 위한 뒷모습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오직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모습만을 보인 채 말이죠.
자 저는 이제 다음 여행지로 떠납니다.
얼른 안내해줘.
그 말에 이 녀석은 제 손을 잡고, 페이지를 넘기라고 말합니다.

​흙의 세계📙

저는 잠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대지를 밟고 세계를 딛고 일어선 제가 보입니다.
저를 맞이해맞이해주는 친구들을 마주하죠.
그들은 저를 위한 파티를 열어주고 생일을 축하해줍니다.
정말 감사하죠.
하지만 그들은 제 등을 떠밀며 혹은 저를 믿어줍니다.
잠시 쉬었다가 여행을 떠나라는 거죠.
잠시 뜨거운 눈물을 뒤로 하고 그들에게 제 뒷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전 제 몸을 뒤로 하고 정신이 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홀로 가되 독선적으로 가지 말고 안내서가 되어줄 친구를 만나라.


불의 세계📕

이 세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병이 확산하고, 죽음이 늘어나는 곳이죠.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을 마주합니다.
이 녀석은 잠시 괴팍해집니다.
어서 눈을 뜨고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뭘?
저를 가로막는 수많은 적을 말이죠.
이 녀석들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불운이 되기도 하고 죽음이 되기도 하죠.
결국에 마주할 상대는 자기 자신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잘 모르지만 상대는 저를 아주 잘 압니다.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을 배꼽 주머니에서 마구 꺼내보이죠.
저는 눈을 감고 싶어집니다.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런 유형의 여행이 아닙니다.
이 여행은 저를 마주하는 혹독한 여행입니다.
지중해로 둘러싸인 나라에 가서 유유자적 햇볕을 쬐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그를 이기기 위해 저를 마주하고 그가 꺼내는 카드보다 더 센 카드를 꺼내보이기로 합니다.
아 저는 이길 겁니다.
누구를?
저를 이길 겁니다.

혹독한 훈련을 거친 것처럼 숨을 헐떡거립니다.
아 편하게 침대에 누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는데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요?
이 녀석은 채찍을 휘두르더니 이제는 당근을 주네요.
흥. 절대 안 먹을거다.
라고 말하려는 찰나
이 녀석은 제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배꼽에서 꺼내 들이밀죠.
흥. 순순히 페이지를 넘기고 맙니다.
그는 저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물의 세계📘

사실 저는 물이 무섭습니다.
물 속에 있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잖아요. 헤엄을 치는 것도 잠시 잘못하면 빠져 죽을 수도 있죠.
그런데도 물에 들어가면 편안한 마음이 듭니다.
뼈 마디를 눌러주고 어깨를 주무르고 있죠.
저는 생명입니다.
태초에 저는 물 속에 있었습니다.
양수 속에서 어머니의 품을 느꼈죠.
가끔은 아버지의 툭 튀어나온 배꼽이 절 누를 때도 있었죠.
이 책은 제 시작을 알려주었습니다.
제 어버이가 저를 낳았고, 마름모 형태의 빛이 새어 들어와서 그 빛을 따라 머리를 집어 넣으니 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습니다.
이 빛이 저를 만들어준 생명이라는 겁니다.

책을 덮으며📔

저는 이 책을 덮으며 <안녕>이라고 말해보았습니다.
이제 영영 보지 말자는 말이 아닌 자주 보자는 말입니다.
순간 목욕을 오래 한 것처럼 때가 부풀어 올라왔고, 개운함과 동시에 피곤함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제 잘 시간이라 자야겠다.
하지만 잘 때마다 느낀 불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진정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저는 배꼽에서부터 마주한 빛, 탯줄을 끊어진 순간을 기억하며 어버이 더 나아가 행성, 은하계, 빅뱅으로 이어져 있다는 순간을 상상합니다.


당신의 여행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정신을 수행하기 위한, 혹은 나 자신을 가라앉히고, 바라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를 소개합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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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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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용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팟캐스트 〈한 사람을 위한 문학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라디오를 통해 자주 목소리를 들었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더 뵙고 싶은 작가다. 그 이유는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이야기 바깥의 공간들 선릉 주변을 산책하고, 「미스터 심플」의 인물을 떠올리며 무인 세탁소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소설이 끝난 뒤에도 인물과 장소가 현실로 이어지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가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감정이 고양된다기보다는, 마음속 어딘가가 조용히 정돈되는 느낌에 가깝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의 소설은 분명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시각적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보이게 만드는 문장들이다.

작가는 자폐를 가진 인물과 함께 선릉 주위를 맴돌고, 모두 타버린 종묘를 바라보며, 당근을 매개로 서로의 아픔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이야기를 쓴다. 이 소설들은 거창한 사건 대신, 잃어버린 것들의 흔적을 더듬는 행위에 집중한다. 무엇인가를 따라 걷고, 머뭇거리고,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인물은 자신을 조금씩 마주한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혼란 속에 있고,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망설임 자체가 하나의 진실처럼 느껴진다. 사라져가거나 이미 소멸된 것들을 붙잡으려는 시도, 혹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의 소설을 오래 남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이야기를 읽었다기보다 누군가의 걸음을 잠시 따라 걸었다는 감각이 남는다. 정용준의 소설은 그렇게 독자를 조용히 돌아보게 하는 힘이 깃들었다. 나도 모르게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걸음을 따라 걸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 「두부」 속 두부를 만날 수도 「미스터 심플」 속 미스터 심플을 만날 수도 있다. 「이코」 속 주우를 마주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어떤 만남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그들과 함께 발을 맞추어 걸을 것이다.

이 작품을 한 사람을 위해 마주 걷고 싶은 사람 혹은 나를 위해 걷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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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랑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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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다른 사랑

이 소설집에서는 여름 냄새가 자욱하게 풍겨온다.

비가 온몸을 다 부서버릴 것처럼 머리와 몸체, 손가락까지 다 꿰뚫어버리다가 갑자기 멈춰버리고 마는 계절.

한없이 더웠다가도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람도 보이지 않게 되는 계절.

이 소설에서 말하는 '다른 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우리는 이 사랑에 대해 정확히 정의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이 사랑은 여름 냄새가 난다.

상리를 떠나는 길,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며 장총을 들고 무장하는 날, 정선이라는 이름을 찾고 싶었고, 김춘영이라는 이름을 잊어서는 안되었고, 그곳에 있었던 사랑이 그저 사랑이 아니었으며, 이 모든 고통과 아픔이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고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귀한 소설을 써주신 최은미 작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일곱 편의 단편 중 인상깊게 읽었던 두 편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김춘영

그 시기에는. 1980년에는. 사북에는.

피아 식별이 제대로 되지 못한 채로 끌려갔던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진상조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항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마저 오해하고 잡아가서 고문했었고,

항쟁에 참여한 광부들조차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된 판단조차 하지 못했고,

항쟁을 진압하고 공수부대까지 출동시키려고 했던 5공화국.

이 단편은 항쟁에 참여하지 않은 인물 '김춘영'을 통해 1980 사북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소상히 다루기보다는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연구원으로서 김춘영을 만나는 화자는 여러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겪었을 아픔, 처지. 그리고 미처 들려주지 못한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린 그의 마음을 헤아린다.

오직 들어주고 절실하게 아파하고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일이 없구나.

큰 사건을 마주할 때에 우리는 얼마나 아파하고 얼마나 기억하고 잊혀갈 수 있을까∙∙∙∙∙∙

그곳

화자는 몇 해 전 한여름 고립야영객이었던 적이 있다.

이후로 화자는 체육센터에 몸을 단련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자기만의 훈련을 해왔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으며 말리산 인근에 위치한 사육장에서 곰이 탈출했다.

화자를 비롯한 사람들은 대피소로 지정된 체육센터에 고립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코로나 19 사태가 떠올랐다..

나는 당시 군대에 있었고,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휴가가 제한되어 나가지도 못하고 2년을 그 안에서 지냈다.

난 그곳에 있던 기억을 단지 '그곳'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곳에서는 고립되어 모두가 긴장된 상황이었고, 모두가 예민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그곳에 있을 때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다가도 금세 서로를 도와주려고 하고, 배려하고 살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 대해 떠올리면 나 또한 전우들과 함께 어떻게든 살려고 했다. 서로를 살리려고 했다.

우리가 지금도 그곳에 있다는 것.

우리는 서로 살려야만 한다는 걸 알려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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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6.봄호 - 89호
한이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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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앞으로 난 '계간 미스터리 서포터즈'로서 지금껏 접해본 적이 없는 매혹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땅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우선 계간 미스터리는 2002년 7월호를 시작으로 한국 추리 문학에 있어 진정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왔다.
추리 미스터리라는 단일 장르로서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은 '계간 미스터리'가 유일하다.
물론 이번 계간지를 알게 된지는 정말 최근이다.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여태까지 어디에 숨어계셨습니까...(긍정의 시그널입니다)
만약 일본 추리 소설에 미쳐 환장했던 중학생 시절의 내가 이 잡지를 펼쳤다면 지금쯤 공모전에 넣을 추리 소설을 열렬히 쓰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라도 알게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치겠다.

📙로맨스 스캠 특별 단편
1) 봐라니 연가 + 김아직
2)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 서윤빈
3) 사랑에는 돈이 들어 + 박하익
4) 할머니 수사단 + 정명섭

이 책은 구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어주신 대로 안전한 모험을 떠나는 경험을 받았다.
추리 문학이라고 해서 잔인하고 무섭고, 머리를 써야 하며, 선정적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첫 번째로 일상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소재를 숙련된 작가님들의 솜씨로 추리 미스터리 문법으로 다뤄진 '로맨스 스캠 특별 단편'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단편이 흥미로웠던 점은 다양한 시각에서 로맨스 스캠을 다루었고, 각기 다양한 결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이 단편을 쓰시는 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는지가 느껴졌고, 그저 평면적인 이야기를 넘어 입체적으로 전해지는 전율과 비애감마저 들었다.
잡지에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독특한 소재를 특별 단편으로 내세운 건 추리·미스터리 문학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앞으로 이 잡지를 챙겨볼 이유가 생겼다.

📗서브컬쳐와 밈으로 문화 읽기

서브컬쳐라고 하면 흔히들 '오타쿠들이 향유하는 문화 아니야?'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다른 문화였음을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주류에 반대되는 지점에 있으며 저항하는 장치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문화가 서브 컬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계층의 열세를 대표했던 문화는 서서히 수직적으로 변해가며 '누가 더 마이너한 문화를 아는가?', '누가 더 깊이 알고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2026년 한국의 서브컬쳐란,

사회적 소수자의 문화가 아니라 맥락을 소유한 자들의 문화다.
p163

요컨대 남들은 하지 않는 마이너한 문화를 찾기 위해 더욱 음지로, 심연으로 향하는 길은 어둡고도 힘겹다. 심연을 들여다볼 때에 그 심연 또한 바라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둡고 칙칙한 동굴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아무도 잊지 않았다 - 애거사 크리스티 서거 50주기를 맞이하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님을 생각하면 지금은 희석되어 아무렇지 않지만, 당시에 겪었던 억울한 일이 한동안 날 괴롭혔다.
당시 잘 알지도 못하던 동급생과 추리 문학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그리고 뭐시기라는 추리 소설 정말 별로더라.' 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그 친구는 내게 총을 연발로 바꾸어 매섭게 쏘아붙였다. 네가 뭘 안다고 씨부리냐고. 제대로 읽은 거 맞냐는 둥... 사실 내가 읽었던 건 여사님의 작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아닌 비슷한 제목의 일본 추리 소설이었다.

이에 대해 항변할 틈도 없이 그는 자리에서 떠났고, 난 이 일을 곱씹으며 억울함에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났다. 속으로 '아닌데. 나 그 소설 읽어본 적도 없는데. 너야말로 내가 말한 소설 읽지도 않았으면서 멋대로 씨부리지 마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특집을 읽고 소파 밑에 깔려 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어볼 마음이 들었다는 것. 그래서 조금의 억울함이 솟구쳐 올라와도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며

지금까지 계간 미스터리 2026 봄호 서평을 마무리하고 책을 덮는다. 예상과는 다르게 진입장벽이 낮았고, 원래 알고 있던 추리 문학에 대한 선입견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동시에 관심도 생겨 여름에 찾아오는 잡지도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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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파도 트리플 35
이서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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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문득 이서아 작가의 당선 소감이 생각났다.
“물론 삶은 좆같지! 그러나 오늘만큼은 네가 마음껏 웃길 바란다!”
그런 마음이 담겨 있듯 그녀의 글에는 방황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그의 전작 '어린 심장 훈련'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화자가 도망치고 갈등한다.
우리가 그녀의 작품에서 느껴야 하는 건 끊임없이 방황한 끝에 마주한 끝에 만나는 저 너머의 선이다.

어머니는 바닥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자, 이건 바다야."
그리고 어머니는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가,
쥐었다가 풀면서 말했다.
"자, 이건 파도야."
빗금의 논리 p58

그 손바닥 사이에는 가느다란 선이 길게 뻗어있다.
선 너머로 소중한 사람이 건너갔다.
우리는 죽어서 그곳에 가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죽기 전까지는 나도 우리도 모두 밀려오는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으레 바다를 아는 척할 수도 있다.

트리플 시리즈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세 편의 작품이 유기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여섯 인물이 모두 등장하며 돌아가며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고, 숨겨 왔던 감정과 비밀을 드러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일 없이 멀리 날아가는 새를 관조하듯 가만히 해변에 서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관찰하며 지나가는 세계를 넘어갈 때 일어난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선을 넘으려고 할 때, 물에 몸을 담가 다가서려고 할 때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을 대표하는 단편 '방랑 파도'를 소개한다.
화자인 '나'는 작은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요양원에 취직했다. 침대 밑을 들여다보다가 발견한 옥반지를 중심으로 '향자'라는 할머니를 알게 되고 책과 반지를 받게 된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향자 할머니에게서 받은 것을 돌려주려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선을 넘어 그녀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때 난 '선을 넘는다.'라는 말이 유독 새롭게 들려왔다.
어릴 때 벽돌로 지은 집에 추위에 떠는 1개월도 안 된 강아지 두 마리를 집어넣었다.
추울까 봐 따뜻한 밤을 보내길, 곤두서있는 털이 조금이라도 가라앉기를 바랐다.
그러나 다음 날 강아지 두 마리는 서로를 껴안으며 털이 얼어붙은 채로 발견되었다.
내 마음도 얼어붙어 한동안 몸을 가누지 못했다.
옆에 있던 형은 '묻어줘야지.'라고 말하며 뒷산으로 올라갔지만, 언 땅에 아무리 삽을 들이대도 철판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때 우리 형제는 강아지 두 마리를 껴안고 맨땅에 앉아서 해가 떠오르고 언 땅이 시간이 지나 녹기를 기도했다.
해가 점점 하늘 높이 걸릴수록 거대한 존재가 자고 있던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는 것만 같았다.
순간 그늘이 지고 우리 앞에 선 거대한 존재는 강아지 두 마리를 지켜보더니 등을 돌려 선 너머로 향했다.
그때 우리는 볼품없이 작았다.
손톱만큼 작았다.
모래만큼 작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는 뛰지 않는 심장을 품에 안고 언 땅이 녹아내리길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거대한 존재가 절을 하듯이 두 손을 바다에 댄 채 엎드려 고개를 돌렸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존재였다.
나는 볼품없이 작았다.
손톱만큼 작았다.
모래만큼 작았다.
방랑 파도 p51

이후로 이어지는 '빗금의 논리'라는 단편에서도 첫단편에 등장했던 백반집 남매가 등장한다.
그들 중 '지예'는 아이를 사고로 잃었으며 '지환'은 누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를 가르쳐준 걸 후회하지 마."
후회라는 감정은 파도와 닮았다.
그때 해변에 앉아 가만히 파도가 치는 걸 지켜보면 편했을 일을 소중한 무언가를 파도에 던졌다.
떠나간 파도 사이에서 다시 밀려온다.
소중한 무언가가 떠오르지만, 다시 잡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떠내려간다.
나는 잠시 후회한다.
"벽돌로 집을 짓지 않았다면."
그런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오다가 떠나간다.
살면서 어떤 사건을 겪은 뒤 우리는 그 사건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다.
'사건'이란 사고로만 치환할 수 있을까.

이 작품에는 화자를 비롯한 여섯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크고 작은 죄책감을 가지고 남은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러한 지점을 포착한다.
어떤 이에게는 앞으로 나아가도 돌아올 수밖에 없는 죄책감이 있다.
그럼에도 꼭 돌아오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어머니는 바닥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자, 이건 바다야."
그리고 어머니는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가,
쥐었다가 풀면서 말했다.
"자, 이건 파도야."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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