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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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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께서 집필한 이 책은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한 책입니다.
일반적인 서사를 벗어나 책을 읽는 독자를 <그대>라고 부르죠.
책을 펼친 순간 이 책은 말합니다.
나보다 파격적인 녀석은 없을 걸?
맞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살아있습니다.
작가의 머릿속을 한 번 드나들고 다른 은하계로 여행을 갔을지도 모릅니다.
형체는 없고 작가의 머릿속에만 남은 채 말이죠.
지금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고요.

책을 펼치며📖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기며 스스로를 <여행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저를 소개합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
여행의 책이라니?
이건 마치 책이 살아서 말하는 것 같구나!
그런 책도 있었나.

홀로 고독한 책, 몹시 심술 궂은 책,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어 결국에는 중간도 못 가 책장을 덮게 만드는 그런 녀석도 있죠.
반면에 저를 기쁘게 하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그런 녀석은 제 서재에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근데 이 녀석은 다른 책이랑 성격이 달랐습니다.
앞에서 말한 책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죠.
이 책은 처음에는 상냥하게 손을 내밀며 함께 여행하자고 저를 꼬드깁니다.
이 녀석의 말이 얼마나 달콤한 지 손을 잡듯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죠.

아주 달콤한 말을 건넵니다.
함께 여행을 떠나자. 육체를 버리고 정신이 떠나는 여행.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 말이 예전에는 '함부로 나대지 마라.'라고 변환되어 들려왔죠.
그 때문이었을까.
본래 저라는 사람은 어딘가로 숨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아마 깊은 골짜기나 캄캄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늘 남의 시선을 신경쓴다.
이런 말을 자주 들었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그러한 경험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기억이 떠올리려고 하는 찰나에 이 녀석은 말합니다.

"이 여행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그대는 곧 돌아올 것이니,
차분한 호흡을 계속하고 있으라고
그대 육체에게 말하라.
나는 그대의 책이다."

이제 숨을 가다듬고 날아오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녀석의 말대로 해보죠. 뭐.

공기의 세계📗

그 중 첫 번째 공기의 세계를 떠다니며 산뜻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다가 폭포수에서 수련을 하던 도인을 마주하죠.
도인은 저에게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합니다.
제가 왜 바보일까요?
저는 그저 더 넓은 세상을 보았고, 인생은 그저 허깨비가 아니라고 말했을 뿐인데 말이죠.
근데 바보 같다는 게 마냥 나쁜 뜻은 아니더군요.
프랑스어 앵배실의 어원을 둔 참된 뜻의 언어로는 <발목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발목도 지팡이도 필요 없는 사람.
홀로 걷는 사람.
어쩌면 인생은 홀로 걸었을 때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홀로 걷지 않기 때문에 '바보'라는 소리를 못 듣고 자란거죠.
저는 바보입니다.
자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외쳐보시죠.
저는 바보입니다.
홀로 걷는다는 사람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전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허리를 구부린 채 두 손을 등에 모으고 걷는 어르신, 당당하게 걸어가는 어른의 모습 사이로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어린 아이의 설레는 뒷모습.
우리는 어쩌면 자신을 위한 뒷모습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오직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모습만을 보인 채 말이죠.
자 저는 이제 다음 여행지로 떠납니다.
얼른 안내해줘.
그 말에 이 녀석은 제 손을 잡고, 페이지를 넘기라고 말합니다.

​흙의 세계📙

저는 잠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대지를 밟고 세계를 딛고 일어선 제가 보입니다.
저를 맞이해맞이해주는 친구들을 마주하죠.
그들은 저를 위한 파티를 열어주고 생일을 축하해줍니다.
정말 감사하죠.
하지만 그들은 제 등을 떠밀며 혹은 저를 믿어줍니다.
잠시 쉬었다가 여행을 떠나라는 거죠.
잠시 뜨거운 눈물을 뒤로 하고 그들에게 제 뒷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전 제 몸을 뒤로 하고 정신이 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홀로 가되 독선적으로 가지 말고 안내서가 되어줄 친구를 만나라.


불의 세계📕

이 세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병이 확산하고, 죽음이 늘어나는 곳이죠.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을 마주합니다.
이 녀석은 잠시 괴팍해집니다.
어서 눈을 뜨고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뭘?
저를 가로막는 수많은 적을 말이죠.
이 녀석들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불운이 되기도 하고 죽음이 되기도 하죠.
결국에 마주할 상대는 자기 자신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잘 모르지만 상대는 저를 아주 잘 압니다.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을 배꼽 주머니에서 마구 꺼내보이죠.
저는 눈을 감고 싶어집니다.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런 유형의 여행이 아닙니다.
이 여행은 저를 마주하는 혹독한 여행입니다.
지중해로 둘러싸인 나라에 가서 유유자적 햇볕을 쬐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그를 이기기 위해 저를 마주하고 그가 꺼내는 카드보다 더 센 카드를 꺼내보이기로 합니다.
아 저는 이길 겁니다.
누구를?
저를 이길 겁니다.

혹독한 훈련을 거친 것처럼 숨을 헐떡거립니다.
아 편하게 침대에 누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는데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요?
이 녀석은 채찍을 휘두르더니 이제는 당근을 주네요.
흥. 절대 안 먹을거다.
라고 말하려는 찰나
이 녀석은 제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배꼽에서 꺼내 들이밀죠.
흥. 순순히 페이지를 넘기고 맙니다.
그는 저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물의 세계📘

사실 저는 물이 무섭습니다.
물 속에 있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잖아요. 헤엄을 치는 것도 잠시 잘못하면 빠져 죽을 수도 있죠.
그런데도 물에 들어가면 편안한 마음이 듭니다.
뼈 마디를 눌러주고 어깨를 주무르고 있죠.
저는 생명입니다.
태초에 저는 물 속에 있었습니다.
양수 속에서 어머니의 품을 느꼈죠.
가끔은 아버지의 툭 튀어나온 배꼽이 절 누를 때도 있었죠.
이 책은 제 시작을 알려주었습니다.
제 어버이가 저를 낳았고, 마름모 형태의 빛이 새어 들어와서 그 빛을 따라 머리를 집어 넣으니 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습니다.
이 빛이 저를 만들어준 생명이라는 겁니다.

책을 덮으며📔

저는 이 책을 덮으며 <안녕>이라고 말해보았습니다.
이제 영영 보지 말자는 말이 아닌 자주 보자는 말입니다.
순간 목욕을 오래 한 것처럼 때가 부풀어 올라왔고, 개운함과 동시에 피곤함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제 잘 시간이라 자야겠다.
하지만 잘 때마다 느낀 불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진정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저는 배꼽에서부터 마주한 빛, 탯줄을 끊어진 순간을 기억하며 어버이 더 나아가 행성, 은하계, 빅뱅으로 이어져 있다는 순간을 상상합니다.


당신의 여행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정신을 수행하기 위한, 혹은 나 자신을 가라앉히고, 바라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를 소개합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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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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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용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팟캐스트 〈한 사람을 위한 문학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라디오를 통해 자주 목소리를 들었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더 뵙고 싶은 작가다. 그 이유는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이야기 바깥의 공간들 선릉 주변을 산책하고, 「미스터 심플」의 인물을 떠올리며 무인 세탁소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소설이 끝난 뒤에도 인물과 장소가 현실로 이어지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가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감정이 고양된다기보다는, 마음속 어딘가가 조용히 정돈되는 느낌에 가깝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의 소설은 분명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시각적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보이게 만드는 문장들이다.

작가는 자폐를 가진 인물과 함께 선릉 주위를 맴돌고, 모두 타버린 종묘를 바라보며, 당근을 매개로 서로의 아픔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이야기를 쓴다. 이 소설들은 거창한 사건 대신, 잃어버린 것들의 흔적을 더듬는 행위에 집중한다. 무엇인가를 따라 걷고, 머뭇거리고,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인물은 자신을 조금씩 마주한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혼란 속에 있고,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망설임 자체가 하나의 진실처럼 느껴진다. 사라져가거나 이미 소멸된 것들을 붙잡으려는 시도, 혹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의 소설을 오래 남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이야기를 읽었다기보다 누군가의 걸음을 잠시 따라 걸었다는 감각이 남는다. 정용준의 소설은 그렇게 독자를 조용히 돌아보게 하는 힘이 깃들었다. 나도 모르게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걸음을 따라 걸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 「두부」 속 두부를 만날 수도 「미스터 심플」 속 미스터 심플을 만날 수도 있다. 「이코」 속 주우를 마주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어떤 만남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그들과 함께 발을 맞추어 걸을 것이다.

이 작품을 한 사람을 위해 마주 걷고 싶은 사람 혹은 나를 위해 걷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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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영광 새소설 22
권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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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을 남을 웃기는 일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 p147

이 책의 저자는 '무한도전'과 같은 굴지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외에도 '놀러와'를 만들고, '진짜 사나이', '아빠 어디가'를 기획한 MBC 소속 예능 PD이다.

어릴 때 안방에서 웃음을 책임지고 누구보다 앞서 달리며 누군가를 구원하는 길을 개척해나갔다.

방송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는 시청자들 앞에 그들은 말한다.

그럼 다음주에 봐요.

다음주가 되어 똑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다른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티브이에 눈을 못 떼던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이를 '무도 키즈'라고 부른다.

동시에 '1박 2일 키즈'이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에는 무한도전을 봤고, 일요일 오후에는 1박 2일을 봤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어찌 되었건 한없이 고독했던 시절을 책임지던 주역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펼쳤다. 아니 카세트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어 버튼을 눌렀다.

화자는 마흔 중반이 된 코미디언 출신 택시 운전사가 나온다.

현재 그는 택시를 몰며 손님에게 삐에로 코를 달고 작은 스케치 코미디를 보여준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루에 한 사람 이상을 웃기는 것.

한 사람이라도 웃음을 전파했다면 자신에게도 그 웃음은 전해져와 하루가 행복했다.

지금의 인생은 카세트 테이프로 따지면 SIDE A.

그는 애초에 코미디언을 할 깜냥도,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다는 생각도, 재량도 없었다.

원래 그는 작은 교회의 전도사였다.

과거로 돌아간다.

지난 인생은 카세트 테이프로 따지면 SIDE B.

A와 B를 오가는 시간대 속에서 그는 어찌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나는 코미디언이다'라고 증명해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이프에 들려오는 그 시절 방송국 코미디언 다섯 명의 18기 동기들의 웃기는 이야기.

하지만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그저 웃었다.

라고 한다면 그게 어떤 웃음인지 글로 접한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에서 울리는 웃음은 정말 즐거워서 웃기도 하며, 서러워서 웃고, 울 것 같을 때에도 웃었다.

그저 그런 성공을 달리는 책이 아니다.

그들이 달려간 끝에는 남들과 다른 성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을 웃기고 그 사람을 구원에 이르는 길.

그리고 코미디언 본인 조차도 구원에 이르는 길.

천국에는 코미디가 존재하지 않는대.

코미디의 원천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니까.

연예대상 p327

나는 천국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천국이 그 자리에 분명히 존재함을 믿고 있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곳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정말 방송국 코미디의 현장에서 뛰는 인물처럼 이리저리 스튜디오를 뛰어다녔다.

그 시절 신입 코미디언의 수칙이라는 것도 있으며, 집합을 때리고 체벌을 가하는 그런 일이 빈번히 벌어졌다.

입만 열지 않았지.

그저 묻어두고 지나간 일은 많았다.

나는 웃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에는 그런 이들의 뒷배경을 몰랐다.

그들은 모두 남을 웃기기 이전에 살아남으려고 버텼고, 끝까지 살아남아 웃기는 일에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다섯 명의 주인공.

전직 전도사 출신 최도사.

나주 카사노바 김철수.

마장동에서 고기를 팔던 마우돈.

Y대 출신에 나사 연구원 아버지를 둔 나우주.

배우가 꿈인 조은별.

이들은 모두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상경했다.

나는 그들이 꿈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떨며 책을 넘겼다.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실소와 더불어 과거에 묻어둬야만 했던 아픈 상처.

그리고 그들이 만든 코너 속에서 보여주던 케미와 개그까지 울고 웃으며 이 책을 덮었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동시에 아 이 책은 행복을 전하는 책이라고도 생각했다.

행복을 전하는 책을 나열하라고 한다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이 '코미디의 영광'이지 않을까.

영광은 남이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리라.

그건 분명 행복을 정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리라.

코미디는 이제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유튜브 숏폼을 넘겨도 우리는 소소한 웃음을 주는 코미디를 접할 수가 있다.

우리는 핑거를 누르면서 피식하고 웃는다.

그리고 손가락을 오므리며 그 시절 무한도전과 1박 2일을 보던 시절로 돌아갔다.

내일도 다음주를 기대하며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코미디가 필요하다.

어질어질한 폭소와 주체할 수 없는 실소 사이에서 우리들은 피에로 코를 달고 이곳이 마치 천국인 양 굴어보자.

이 책을 덮으며 난 혼자 중얼거려보았다.

'시간이 약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픈 일이 있어도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면 안되었다.

대신 이렇게 말해본다.

코미디는 네버 다이!

그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코미디 포에버!

나는 코미디언이다 p368

코미디는 네버 다이.

코미디는 포에버.

그리고 지나온 내게 있어서도 시간이 약이라고 치부해서도 안된다.

인생은 코미디.

코미디는 기쁨이 아니라 슬픔에서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코미디.

아무리 아이러니하고 어이없어도 그래도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난 시간이 약이라는 걸 마시고 싶지 않아 입을 떼어 말하고 싶다.

나는 네버 다이.

나는 뽀에버.

뒤가 아닌 앞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나는 행복하다.

반대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는 불행하다.

그렇기에 인생은 비극과 희극이 공존한다.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땐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먹고사는 게 절박했고

용기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많이 자책하고 후회했습니다.

나는 코미디언이다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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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트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7
문지혁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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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여행하는 책📚

우리는 여행 갈 준비를 한다.
그러다 지난 여행에서 찍어둔 필름 롤이 눈에 들어온다.
무려 삼백 장 가까이 되는 분량을 아직 인화하지 않았다.
나는 주로 올림피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 사진들 속에 내 모습은 단 한 장도 없다.
아마 그럴 것이다.
에펠탑 앞에서 멋있게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찍어주고, 마르크트 광장 중앙의 동상을 담았다.

한때는 프라하행 야간열차에서 만난 그녀와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떠한 기록 장치도, 기억력도 변변치 않았다.
그녀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나는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잊어버렸다.
그 사실을 떠올린 건 일주일이나 지나서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사죄하듯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여행 내내 노트를 들고 다니며 순간을 소설로, 시로 남겼다.
장면을 물리적으로 붙잡고 싶어 아버지가 쓰던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필름 카메라는 성가신 존재였다.
찍는 즉시 결과를 보여주지도 않고, 부지런히 사진관을 찾아가 인화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손에 땀이 나도록 붙잡고 다녔다.
필름 카메라는 단순한 구조로 작동한다.
렌즈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조리개가 빛의 양을 조절하고, 셔터가 일정 시간 동안만 빛을 통과시킨다.
빛에 반응한 화학 물질은 그 순간을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필름 위에 새긴다.

노출의 정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단노출은 찰나를 선택한다.
짧은 시간 동안만 셔터를 열어 한 점의 시간을 고정한다.
장노출은 시간을 축적한다.
셔터가 열려 있는 동안 일어난 모든 움직임을 겹겹이 쌓아 수용한다.

나는 장노출처럼 그녀를 오래 담아두고 싶었다.
그녀와 다시 만난다면.
그 생각이 무섭도록 천천히 다가올 때면 나는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고 셔터를 눌렀다.
약속 장소였던 빈에 도착했을 때, 나는 플랫폼에 앉아 한참을 시간을 흘려보냈다.
손에 쥔 카메라로 빈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는 야간열차를 찍었다.
열차는 빨랐고, 셔터는 오랫동안 열렸다.
열차는 또렷했고, 배경은 빛으로 번졌다.
건물의 네온은 선이 되어 흐르고, 열차는 그 사이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빛이 번지는 건물들 사이로 나는 끝없이 전진하는 열차를 바라보았다.

필름으로 찍는다는 건 곧 암전을 감수하는 일이다.
암전 이후 찾아오는 어둠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현상되기 전까지는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했다.
혼란스럽고 흐릿했던 시간이 지나 이미지는 현상액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나는 그 사진 어딘가에 그녀가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남은 것은 세 시간의 만남과 확실한 이별이었다.

현상된 것은 사진만이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사실 또한 함께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의미가 드러나는 것처럼.
여행은 흩어진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세계를 받아들이고,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
한 번 받아들인 이상 여행 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별도 그렇다.
이미 찍혀버린 장면은 삭제할 수 없다.
셔터를 누른 순간, 되돌림은 불가능하다.
얼마나 오래 빛을 받아들이는가.
내게 빛은 치유이면서도 몽롱함이고,
흐려짐이면서도 선명해짐이다.
나는 빛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필름 위에 새긴다.

여행을 마치며📔

이 책은 오토픽션이다.
작가 자신이 인물로 등장한다.
자신에게 빈에서 구매한 은반지를 선물하며 이별을 선언한 그녀 O.
그녀와 다시 한번 이별을 하기 위해 유럽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빈에서 은반지를 던져버리기로 한다.
허구와 실제의 경계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따지기보다 그가 보여주는 사건과 행동을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또한 하나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장을 쓰며 살아간다.
퇴색되어가던 의미를 다시 꺼내 나는 소설로 재구성했다.
당신도 잊혀가던 기억을 다시 소설로 써보고 싶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세상의 속도가 빛처럼 빠를 때 우리는 소설을 써야 한다.
소설을 쓸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오래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붙잡고 싶을 때 네온 빛 사이로 지나가는 이 책을 선명히 포착하고 읽었으면 좋겠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것은 사진이었다.
인화한 필름 사진들은 마치 보호 기능이 없는 에어캡처럼
여기저기 소포 속 빈틈을 메우고 있었는데,
유독 어느 한 묶음만은 회색 종이봉투에 들어 있었고 봉투 겉면에는
독수림 그림과 함께 ‘ARMANI EXCHANGE‘라는 글자가 여전히 선명했다. - P16

그때 나는 왜 유럽에 가려고 했던 걸까?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생각한다.
90년대 후반에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럽 배낭여행이 유행처럼 번졌던 것은 사실이다. - P21

일행의 여행 최종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지만
내 최종 목적지는 여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
반지를 버리면 그때부터 나는 자유다. - P97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서 나는 맨 첫 장으로 돌아갔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 소설에 어울리는 제목은 하나뿐이었다.
노트를 덮고 나는 머리를 뒤고 기댔다.
비행기가 서해 상공에서 진입하고 있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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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달려 온
연여름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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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책📚

이 소설집은 총 여덟 편의 이야기를 이루어졌다.
아니, 여덟 개로 이뤄진 밤의 조각이라고 해도 좋다.

이 책은 동화적인 요소와 아포칼립스적인 요소, 퍼져가는 바이러스, 시간이 뒤틀린 세계, 밤과 낮이 뒤바뀐 세계, 아이가 부모를 고르는 세계, 꿈이 사라지고 만들어낸 꿈을 이식하는 세계

이러한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그 속에 SF적 상상력 위에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수성으로 풀어낸 여덟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이 작품이 다른 여타 SF 소설과는 다른 점은 이 작가가 느끼고 겪고 있는 어둠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 비판을 한 웅큼씩 집어 넣었다.

책을 읽는 우리들은 밤의 조각을 하나씩 입에 집어 넣듯 한 편씩 단편을 집어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은 제각기 다른 맛이겠지만, 내 안 깊숙한 데까지 건드리는 그런 익숙하고 그리운 맛이 있었다.

​책을 펼치며📖

1. 하품

무기력과 잠이 바이러스가 되어 전체 인구 80% 이상이 전염된 '솜누스' 사태 이후 후유증으로 꿈을 꾸지 못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 수요에 맞춰 '모프시스' 기업은 레디메이드를 비롯한 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꿈을 이식한다.
주인공은 꿈 설계사로서 '호연'에게 꿈을 이식해준다.
동시에 가족 초대 심사를 받기 위해 '윤재'와의 접견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을 꿈 이식이라는 기술이 불러오는 위험성과 중독.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온 폭력과 학대를 되돌아보게 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아이가 부모를 고른다는 설정 자체가 자극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난 이 작품은 더욱 아픔에 집중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들의 아픔이 '하품'처럼 전염될 수도 있으며 그저 하품 한 번 쉬었다고 몇 번이나 구타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사회는 편히 하품을 쉬어도 되며, 깨지 않는 악몽이 잠을 자지 않아도 떠오를 정도로 아파와도.

우리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
그리고 마음껏 하품하고 웃어도 된다.
누가 뭐라고 할 권리도 없으며, 설령 그렇다할지라도 선택하고 화를 낼 권리는 우리에게도 있다.
무기력과 잠이 바이러스가 된 배경과는 달리 현재 사회는 털 끝 하나 닿기라도 하면 기겁하며 일그러진 표정을 짓기 일쑤이다.
언제부터 이런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고 팽배해졌을까.

2. 밤을 달려 온

표제작인 이 작품은 밤과 낮이 뒤바뀐 시대를 살아가는 '온'을 중심으로 달려간다.
12년을 주기로 밤과 낮이 뒤바뀐다.
'라크'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온은 경비대장의 저택에서 시종으로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가오는 밤을 두려워하며 서둘러 불을 지필 기름을 준비하고 식량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한 손님이 찾아온다.
그 이름은 '나기'
온은 나기의 몸에 묻어난 땀을 닦아주며 어떠한 기억과 감정을 읽어낸다.
온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있었다.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닿기만 해도 슬픔이 전이되고 아픔이 찾아온다.
기쁜 기억이 전해져 내려와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곧 찾아오는 어둠이 두려움이 아닌 누구보다 밝은 어둠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하늘에 수놓은 별을 따라가면 가야할 길을 알 수 있듯 온은 찾아오는 어둠에 망설이지 않고 달려간다.
두려움은 곧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들고, 제대로 된 판단도 하지 못하도록 한다.
과거와의 작별은 영영 불가능하며 찾아온 현재는 밤이 되어 영영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늘을 보라.
별은 우리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나를 지키고 보호해줄 수 있는 곳으로.
늘 구박을 받고,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밤이면 나기의 기억 속 자그마한 등불을 떠올린다.
우리는 자그마한 등불 하나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거나 과거에 치일 때가 많다.
우리에게는 늘 자그마한 등불이 필요하다.
당신에게도 밤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등불이 마음 속에 자리하기를.

책을 덮으며📔

이 책을 읽고 서평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도 '연여름' 작가의 작품은 꼭 읽어볼 마음이 들었다.
당신에게도 밤의 조각을 꼭 천천히 음미하고, 어두움을 받아들이고 달려갔으면 좋겠다.
부디 밝은 ​밤이 함께 하기를.

나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요즘 온을 위한 등불인 동시에 호론이었다.
매일 조금씩 커진 밤의 조각이 찾아올 때도,
온은 두려움을 밀어내기 위해 나기가 들려준 밤 이야기를 떠올렸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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