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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6.봄호 - 89호
한이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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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앞으로 난 '계간 미스터리 서포터즈'로서 지금껏 접해본 적이 없는 매혹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땅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우선 계간 미스터리는 2002년 7월호를 시작으로 한국 추리 문학에 있어 진정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왔다.
추리 미스터리라는 단일 장르로서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은 '계간 미스터리'가 유일하다.
물론 이번 계간지를 알게 된지는 정말 최근이다.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여태까지 어디에 숨어계셨습니까...(긍정의 시그널입니다)
만약 일본 추리 소설에 미쳐 환장했던 중학생 시절의 내가 이 잡지를 펼쳤다면 지금쯤 공모전에 넣을 추리 소설을 열렬히 쓰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라도 알게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치겠다.

📙로맨스 스캠 특별 단편
1) 봐라니 연가 + 김아직
2)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 서윤빈
3) 사랑에는 돈이 들어 + 박하익
4) 할머니 수사단 + 정명섭

이 책은 구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어주신 대로 안전한 모험을 떠나는 경험을 받았다.
추리 문학이라고 해서 잔인하고 무섭고, 머리를 써야 하며, 선정적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첫 번째로 일상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소재를 숙련된 작가님들의 솜씨로 추리 미스터리 문법으로 다뤄진 '로맨스 스캠 특별 단편'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단편이 흥미로웠던 점은 다양한 시각에서 로맨스 스캠을 다루었고, 각기 다양한 결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이 단편을 쓰시는 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는지가 느껴졌고, 그저 평면적인 이야기를 넘어 입체적으로 전해지는 전율과 비애감마저 들었다.
잡지에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독특한 소재를 특별 단편으로 내세운 건 추리·미스터리 문학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앞으로 이 잡지를 챙겨볼 이유가 생겼다.

📗서브컬쳐와 밈으로 문화 읽기

서브컬쳐라고 하면 흔히들 '오타쿠들이 향유하는 문화 아니야?'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다른 문화였음을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주류에 반대되는 지점에 있으며 저항하는 장치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문화가 서브 컬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계층의 열세를 대표했던 문화는 서서히 수직적으로 변해가며 '누가 더 마이너한 문화를 아는가?', '누가 더 깊이 알고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2026년 한국의 서브컬쳐란,

사회적 소수자의 문화가 아니라 맥락을 소유한 자들의 문화다.
p163

요컨대 남들은 하지 않는 마이너한 문화를 찾기 위해 더욱 음지로, 심연으로 향하는 길은 어둡고도 힘겹다. 심연을 들여다볼 때에 그 심연 또한 바라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둡고 칙칙한 동굴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아무도 잊지 않았다 - 애거사 크리스티 서거 50주기를 맞이하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님을 생각하면 지금은 희석되어 아무렇지 않지만, 당시에 겪었던 억울한 일이 한동안 날 괴롭혔다.
당시 잘 알지도 못하던 동급생과 추리 문학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그리고 뭐시기라는 추리 소설 정말 별로더라.' 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그 친구는 내게 총을 연발로 바꾸어 매섭게 쏘아붙였다. 네가 뭘 안다고 씨부리냐고. 제대로 읽은 거 맞냐는 둥... 사실 내가 읽었던 건 여사님의 작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아닌 비슷한 제목의 일본 추리 소설이었다.

이에 대해 항변할 틈도 없이 그는 자리에서 떠났고, 난 이 일을 곱씹으며 억울함에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났다. 속으로 '아닌데. 나 그 소설 읽어본 적도 없는데. 너야말로 내가 말한 소설 읽지도 않았으면서 멋대로 씨부리지 마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특집을 읽고 소파 밑에 깔려 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어볼 마음이 들었다는 것. 그래서 조금의 억울함이 솟구쳐 올라와도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며

지금까지 계간 미스터리 2026 봄호 서평을 마무리하고 책을 덮는다. 예상과는 다르게 진입장벽이 낮았고, 원래 알고 있던 추리 문학에 대한 선입견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동시에 관심도 생겨 여름에 찾아오는 잡지도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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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파도 트리플 35
이서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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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문득 이서아 작가의 당선 소감이 생각났다.
“물론 삶은 좆같지! 그러나 오늘만큼은 네가 마음껏 웃길 바란다!”
그런 마음이 담겨 있듯 그녀의 글에는 방황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그의 전작 '어린 심장 훈련'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화자가 도망치고 갈등한다.
우리가 그녀의 작품에서 느껴야 하는 건 끊임없이 방황한 끝에 마주한 끝에 만나는 저 너머의 선이다.

어머니는 바닥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자, 이건 바다야."
그리고 어머니는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가,
쥐었다가 풀면서 말했다.
"자, 이건 파도야."
빗금의 논리 p58

그 손바닥 사이에는 가느다란 선이 길게 뻗어있다.
선 너머로 소중한 사람이 건너갔다.
우리는 죽어서 그곳에 가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죽기 전까지는 나도 우리도 모두 밀려오는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으레 바다를 아는 척할 수도 있다.

트리플 시리즈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세 편의 작품이 유기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여섯 인물이 모두 등장하며 돌아가며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고, 숨겨 왔던 감정과 비밀을 드러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일 없이 멀리 날아가는 새를 관조하듯 가만히 해변에 서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관찰하며 지나가는 세계를 넘어갈 때 일어난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선을 넘으려고 할 때, 물에 몸을 담가 다가서려고 할 때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을 대표하는 단편 '방랑 파도'를 소개한다.
화자인 '나'는 작은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요양원에 취직했다. 침대 밑을 들여다보다가 발견한 옥반지를 중심으로 '향자'라는 할머니를 알게 되고 책과 반지를 받게 된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향자 할머니에게서 받은 것을 돌려주려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선을 넘어 그녀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때 난 '선을 넘는다.'라는 말이 유독 새롭게 들려왔다.
어릴 때 벽돌로 지은 집에 추위에 떠는 1개월도 안 된 강아지 두 마리를 집어넣었다.
추울까 봐 따뜻한 밤을 보내길, 곤두서있는 털이 조금이라도 가라앉기를 바랐다.
그러나 다음 날 강아지 두 마리는 서로를 껴안으며 털이 얼어붙은 채로 발견되었다.
내 마음도 얼어붙어 한동안 몸을 가누지 못했다.
옆에 있던 형은 '묻어줘야지.'라고 말하며 뒷산으로 올라갔지만, 언 땅에 아무리 삽을 들이대도 철판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때 우리 형제는 강아지 두 마리를 껴안고 맨땅에 앉아서 해가 떠오르고 언 땅이 시간이 지나 녹기를 기도했다.
해가 점점 하늘 높이 걸릴수록 거대한 존재가 자고 있던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는 것만 같았다.
순간 그늘이 지고 우리 앞에 선 거대한 존재는 강아지 두 마리를 지켜보더니 등을 돌려 선 너머로 향했다.
그때 우리는 볼품없이 작았다.
손톱만큼 작았다.
모래만큼 작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는 뛰지 않는 심장을 품에 안고 언 땅이 녹아내리길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거대한 존재가 절을 하듯이 두 손을 바다에 댄 채 엎드려 고개를 돌렸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존재였다.
나는 볼품없이 작았다.
손톱만큼 작았다.
모래만큼 작았다.
방랑 파도 p51

이후로 이어지는 '빗금의 논리'라는 단편에서도 첫단편에 등장했던 백반집 남매가 등장한다.
그들 중 '지예'는 아이를 사고로 잃었으며 '지환'은 누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를 가르쳐준 걸 후회하지 마."
후회라는 감정은 파도와 닮았다.
그때 해변에 앉아 가만히 파도가 치는 걸 지켜보면 편했을 일을 소중한 무언가를 파도에 던졌다.
떠나간 파도 사이에서 다시 밀려온다.
소중한 무언가가 떠오르지만, 다시 잡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떠내려간다.
나는 잠시 후회한다.
"벽돌로 집을 짓지 않았다면."
그런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오다가 떠나간다.
살면서 어떤 사건을 겪은 뒤 우리는 그 사건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다.
'사건'이란 사고로만 치환할 수 있을까.

이 작품에는 화자를 비롯한 여섯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크고 작은 죄책감을 가지고 남은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러한 지점을 포착한다.
어떤 이에게는 앞으로 나아가도 돌아올 수밖에 없는 죄책감이 있다.
그럼에도 꼭 돌아오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어머니는 바닥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자, 이건 바다야."
그리고 어머니는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가,
쥐었다가 풀면서 말했다.
"자, 이건 파도야."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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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스토리보드북
박찬욱 지음, 이윤호 그림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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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는 등 화려한 계보를 이어가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여태 챙겨보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그의 영화를 미치도록 탐했고, 장면 하나 하나를 뜯어볼 정도로 해체하는 즐거움으로 그의 영화를 관람했다.

지난 작품 '헤어질 결심' 이후로 신작으로 돌아왔던 박찬욱 감독은 '어쩔 수가 없다'로 다시 한번 나를 놀래켰다.
작품에 대해 많은 걸 말씀드리기보다는 직접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어떨 때에는 구구절절 말하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관람했을 때 전해져 오는 감동이 가슴에 안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스토리보드북을 읽은 이후 이창동 감독의 '시', '버닝' 각본집을 들여다보고 이번에 '어쩔 수가 없다' 스토리보드북을 읽으며 느낀 건 영화라는 건 참 신기하다.

스토리보드북이란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전체 제작 과정을 이끄는 영화의 설계도를 담당한다.
그렇기에 영화가 제작되고 촬영이 이뤄지면 스토리보드북이 영화를 이끄는 소통창구가 되거나 인물 위치, 동선, 촬영 구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가끔 스토리보드북을 읽다보면 영화와 다른 점을 찾는 재미가 있어 웃음이 나오거나 이렇게 바뀌었구나 싶어 놀랍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극 중에서 염혜란 배우님이 맡은 아라 역이 스토리보드북에는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나와있는데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져서 약간 당황했다.
이렇듯 처음 설계한 대로가 아닌 영화가 제작되고 촬영되는 내내 이야기는 다른 흐름을 탈 수도 있고, 인물도 성격도 달라질 수도 있다.

난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넷플릭스에 들어가 '어쩔 수가 없다'를 틀어보았다.
역시 비교하면서 보는 맛에 읽는다.
방금까지 보던 만수와 미리가 이병헌과 손예진이 되어 연기를 하다니.
생생한 연기로 목소리를 부여받고 생동감 있는 몸짓으로 요리조리 춤을 추거나 도망도 친다.

더 중요한 건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장면이 있다는 것인데 이건 마치 미공개 컷을 보는 기분이라 나만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 말고는 이 장면을 본 사람은 없겠지.
영화가 제작되면서 삭제된 장면이라 대부분은 모르지만 난 책을 읽어서 다 알고 있지.
이러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등장하지 않은 장면은 없는지 계속 들여다보고 펼치는 재미를 느꼈다.
더군다나 '씬별 촬영 셋업 수'라는 것도 알려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몇 번 새로 세팅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셋업 수가 많을 수록 이 장면에 심혈을 기울였구나. 고생을 하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영화 중반부에 범모와 그의 아내 아라, 만수가 서로 대치하는 장면 등 이러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섬뜩함을 주는 장면에서 공이 많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스토리보드북을 읽으며 영화를 다시 읽는 시간이 되었고 처음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면이나 의미를 탐색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는 날 스토리보드북을 펼쳐 다시 읽어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맛이지 않을까.
그래서 박찬욱 감독의 이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꼭 추천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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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영광 새소설 22
권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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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을 남을 웃기는 일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 p147

이 책의 저자는 '무한도전'과 같은 굴지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외에도 '놀러와'를 만들고, '진짜 사나이', '아빠 어디가'를 기획한 MBC 소속 예능 PD이다.

어릴 때 안방에서 웃음을 책임지고 누구보다 앞서 달리며 누군가를 구원하는 길을 개척해나갔다.

방송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는 시청자들 앞에 그들은 말한다.

그럼 다음주에 봐요.

다음주가 되어 똑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다른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티브이에 눈을 못 떼던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이를 '무도 키즈'라고 부른다.

동시에 '1박 2일 키즈'이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에는 무한도전을 봤고, 일요일 오후에는 1박 2일을 봤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어찌 되었건 한없이 고독했던 시절을 책임지던 주역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펼쳤다. 아니 카세트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어 버튼을 눌렀다.

화자는 마흔 중반이 된 코미디언 출신 택시 운전사가 나온다.

현재 그는 택시를 몰며 손님에게 삐에로 코를 달고 작은 스케치 코미디를 보여준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루에 한 사람 이상을 웃기는 것.

한 사람이라도 웃음을 전파했다면 자신에게도 그 웃음은 전해져와 하루가 행복했다.

지금의 인생은 카세트 테이프로 따지면 SIDE A.

그는 애초에 코미디언을 할 깜냥도,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다는 생각도, 재량도 없었다.

원래 그는 작은 교회의 전도사였다.

과거로 돌아간다.

지난 인생은 카세트 테이프로 따지면 SIDE B.

A와 B를 오가는 시간대 속에서 그는 어찌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나는 코미디언이다'라고 증명해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이프에 들려오는 그 시절 방송국 코미디언 다섯 명의 18기 동기들의 웃기는 이야기.

하지만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그저 웃었다.

라고 한다면 그게 어떤 웃음인지 글로 접한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에서 울리는 웃음은 정말 즐거워서 웃기도 하며, 서러워서 웃고, 울 것 같을 때에도 웃었다.

그저 그런 성공을 달리는 책이 아니다.

그들이 달려간 끝에는 남들과 다른 성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을 웃기고 그 사람을 구원에 이르는 길.

그리고 코미디언 본인 조차도 구원에 이르는 길.

천국에는 코미디가 존재하지 않는대.

코미디의 원천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니까.

연예대상 p327

나는 천국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천국이 그 자리에 분명히 존재함을 믿고 있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곳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정말 방송국 코미디의 현장에서 뛰는 인물처럼 이리저리 스튜디오를 뛰어다녔다.

그 시절 신입 코미디언의 수칙이라는 것도 있으며, 집합을 때리고 체벌을 가하는 그런 일이 빈번히 벌어졌다.

입만 열지 않았지.

그저 묻어두고 지나간 일은 많았다.

나는 웃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에는 그런 이들의 뒷배경을 몰랐다.

그들은 모두 남을 웃기기 이전에 살아남으려고 버텼고, 끝까지 살아남아 웃기는 일에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다섯 명의 주인공.

전직 전도사 출신 최도사.

나주 카사노바 김철수.

마장동에서 고기를 팔던 마우돈.

Y대 출신에 나사 연구원 아버지를 둔 나우주.

배우가 꿈인 조은별.

이들은 모두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상경했다.

나는 그들이 꿈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떨며 책을 넘겼다.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실소와 더불어 과거에 묻어둬야만 했던 아픈 상처.

그리고 그들이 만든 코너 속에서 보여주던 케미와 개그까지 울고 웃으며 이 책을 덮었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동시에 아 이 책은 행복을 전하는 책이라고도 생각했다.

행복을 전하는 책을 나열하라고 한다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이 '코미디의 영광'이지 않을까.

영광은 남이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리라.

그건 분명 행복을 정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리라.

코미디는 이제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유튜브 숏폼을 넘겨도 우리는 소소한 웃음을 주는 코미디를 접할 수가 있다.

우리는 핑거를 누르면서 피식하고 웃는다.

그리고 손가락을 오므리며 그 시절 무한도전과 1박 2일을 보던 시절로 돌아갔다.

내일도 다음주를 기대하며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코미디가 필요하다.

어질어질한 폭소와 주체할 수 없는 실소 사이에서 우리들은 피에로 코를 달고 이곳이 마치 천국인 양 굴어보자.

이 책을 덮으며 난 혼자 중얼거려보았다.

'시간이 약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픈 일이 있어도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면 안되었다.

대신 이렇게 말해본다.

코미디는 네버 다이!

그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코미디 포에버!

나는 코미디언이다 p368

코미디는 네버 다이.

코미디는 포에버.

그리고 지나온 내게 있어서도 시간이 약이라고 치부해서도 안된다.

인생은 코미디.

코미디는 기쁨이 아니라 슬픔에서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코미디.

아무리 아이러니하고 어이없어도 그래도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난 시간이 약이라는 걸 마시고 싶지 않아 입을 떼어 말하고 싶다.

나는 네버 다이.

나는 뽀에버.

뒤가 아닌 앞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나는 행복하다.

반대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는 불행하다.

그렇기에 인생은 비극과 희극이 공존한다.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땐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먹고사는 게 절박했고

용기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많이 자책하고 후회했습니다.

나는 코미디언이다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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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트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7
문지혁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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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책📚

우리는 여행 갈 준비를 한다.
그러다 지난 여행에서 찍어둔 필름 롤이 눈에 들어온다.
무려 삼백 장 가까이 되는 분량을 아직 인화하지 않았다.
나는 주로 올림피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 사진들 속에 내 모습은 단 한 장도 없다.
아마 그럴 것이다.
에펠탑 앞에서 멋있게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찍어주고, 마르크트 광장 중앙의 동상을 담았다.

한때는 프라하행 야간열차에서 만난 그녀와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떠한 기록 장치도, 기억력도 변변치 않았다.
그녀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나는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잊어버렸다.
그 사실을 떠올린 건 일주일이나 지나서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사죄하듯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여행 내내 노트를 들고 다니며 순간을 소설로, 시로 남겼다.
장면을 물리적으로 붙잡고 싶어 아버지가 쓰던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필름 카메라는 성가신 존재였다.
찍는 즉시 결과를 보여주지도 않고, 부지런히 사진관을 찾아가 인화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손에 땀이 나도록 붙잡고 다녔다.
필름 카메라는 단순한 구조로 작동한다.
렌즈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조리개가 빛의 양을 조절하고, 셔터가 일정 시간 동안만 빛을 통과시킨다.
빛에 반응한 화학 물질은 그 순간을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필름 위에 새긴다.

노출의 정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단노출은 찰나를 선택한다.
짧은 시간 동안만 셔터를 열어 한 점의 시간을 고정한다.
장노출은 시간을 축적한다.
셔터가 열려 있는 동안 일어난 모든 움직임을 겹겹이 쌓아 수용한다.

나는 장노출처럼 그녀를 오래 담아두고 싶었다.
그녀와 다시 만난다면.
그 생각이 무섭도록 천천히 다가올 때면 나는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고 셔터를 눌렀다.
약속 장소였던 빈에 도착했을 때, 나는 플랫폼에 앉아 한참을 시간을 흘려보냈다.
손에 쥔 카메라로 빈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는 야간열차를 찍었다.
열차는 빨랐고, 셔터는 오랫동안 열렸다.
열차는 또렷했고, 배경은 빛으로 번졌다.
건물의 네온은 선이 되어 흐르고, 열차는 그 사이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빛이 번지는 건물들 사이로 나는 끝없이 전진하는 열차를 바라보았다.

필름으로 찍는다는 건 곧 암전을 감수하는 일이다.
암전 이후 찾아오는 어둠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현상되기 전까지는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했다.
혼란스럽고 흐릿했던 시간이 지나 이미지는 현상액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나는 그 사진 어딘가에 그녀가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남은 것은 세 시간의 만남과 확실한 이별이었다.

현상된 것은 사진만이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사실 또한 함께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의미가 드러나는 것처럼.
여행은 흩어진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세계를 받아들이고,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
한 번 받아들인 이상 여행 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별도 그렇다.
이미 찍혀버린 장면은 삭제할 수 없다.
셔터를 누른 순간, 되돌림은 불가능하다.
얼마나 오래 빛을 받아들이는가.
내게 빛은 치유이면서도 몽롱함이고,
흐려짐이면서도 선명해짐이다.
나는 빛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필름 위에 새긴다.

여행을 마치며📔

이 책은 오토픽션이다.
작가 자신이 인물로 등장한다.
자신에게 빈에서 구매한 은반지를 선물하며 이별을 선언한 그녀 O.
그녀와 다시 한번 이별을 하기 위해 유럽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빈에서 은반지를 던져버리기로 한다.
허구와 실제의 경계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따지기보다 그가 보여주는 사건과 행동을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또한 하나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장을 쓰며 살아간다.
퇴색되어가던 의미를 다시 꺼내 나는 소설로 재구성했다.
당신도 잊혀가던 기억을 다시 소설로 써보고 싶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세상의 속도가 빛처럼 빠를 때 우리는 소설을 써야 한다.
소설을 쓸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오래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붙잡고 싶을 때 네온 빛 사이로 지나가는 이 책을 선명히 포착하고 읽었으면 좋겠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것은 사진이었다.
인화한 필름 사진들은 마치 보호 기능이 없는 에어캡처럼
여기저기 소포 속 빈틈을 메우고 있었는데,
유독 어느 한 묶음만은 회색 종이봉투에 들어 있었고 봉투 겉면에는
독수림 그림과 함께 ‘ARMANI EXCHANGE‘라는 글자가 여전히 선명했다. - P16

그때 나는 왜 유럽에 가려고 했던 걸까?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생각한다.
90년대 후반에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럽 배낭여행이 유행처럼 번졌던 것은 사실이다. - P21

일행의 여행 최종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지만
내 최종 목적지는 여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
반지를 버리면 그때부터 나는 자유다. - P97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서 나는 맨 첫 장으로 돌아갔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 소설에 어울리는 제목은 하나뿐이었다.
노트를 덮고 나는 머리를 뒤고 기댔다.
비행기가 서해 상공에서 진입하고 있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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