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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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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나는 왜 이 바다를 읽게 되었을까.
책은 방대했고, 흑해만큼이나 깊었다.
그건 마치 깊이 잠들어있는 역사적 잔해물, 흠집 없이 보존된 난파선 같았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사실은 늘 바다를 두려워했다.
수영은 전혀 못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는 길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찰스 킹의 '흑해'를 읽으며 나는 그 두려움이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흑해는 오랫동안 세계의 가장자리에 놓인 바다였고, 사람들은 늘 이 바다 앞에서 상상과 공포, 욕망을 동시에 키워왔다.

"흑해는 '문명' 세계와 '야만' 세계가 만나는 곳이라기보다는,
그리스인과 후에는 로마인을 비롯한 외부인들이 오랫동안 해안 주변에서
다양한 생활 양식과 관습이 소용돌이치듯 뒤섞이던 과정에 스며들고,
그 일부가 된 곳이었다."

책을 펼치며📖

이 책은 하나의 바다에 관한 역사서지만, 읽는 동안 나는 자꾸만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경계를 만들어왔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흑해는 세계의 끝이었고, 그래서 신화가 태어났다.
그러나 신화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곧 상업이 들어오고, 식민지가 세워지고, 제국의 이름이 바다 위를 떠다닌다.
흑해의 이름이 시대마다 달라졌다는 사실은, 이 바다가 얼마나 자주 타인의 언어로 불려왔는지를 말해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다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설명이었다.
산소가 닿는 얕은 층에만 생명이 있고, 그 아래는 거의 죽음에 가까운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다는 이야기.
나는 이 구조가 이 바다를 둘러싼 역사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지만, 모두가 기록으로 남지는 않았다.
어떤 삶은 수면 위에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졌고, 어떤 것은 심해처럼 말없이 가라앉았다.

책 속에서 흑해는 언제나 이동의 장소였다.
스키타이인들, 로마인들, 비잔틴과 이탈리아 상인들, 그리고 오늘날의 국가들까지.
누구도 이 바다에 완전히 머물지 못했고, 모두가 무언가를 남기거나 가져가려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바다가 인간을 거부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흑해는 늘 사람을 받아들였지만, 결코 그들의 소유가 되지는 않았다.

오늘의 흑해는 다시 정치의 언어로 불리고 있다.
석유와 가스, 파이프라인, 국경.
그러나 이 책을 덮고 나면 그런 단어들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천 년 동안 반복되어온 떠남과 침묵이다.
흑해는 늘 경계에 있었고, 경계는 언제나 불안과 매혹을 동시에 품는다.

​책을 덮으며📔

'흑해'를 읽으며 나는 바다를 이해하게 되었다기보다, 내가 왜 바다 앞에서 멈춰 서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시간이며, 장소가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세계를 건너온 것인지, 아니면 늘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며 이름만 바꾸어 불러왔던 것은 아닌지. 흑해는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오래도록 남긴다.

바다의 과학조차 민족 개념의 유호글 피할 수 없었다.
한때 오스만의 멍에에서 새로 해방된 민족의 유산으로 찬양받았던 바다는
이제 소련 팽창주의의 탐욕으로부터 지켜야 할 보물로 선전됐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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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서툰 사람들 -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고선규 지음 / 아몬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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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책📚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아오키 신문’의 장편소설 ‘납관일기’를 원작으로 한 ‘굿바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은 첼리스트를 그만두고 죽은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납관일을 하게 되며 많은 이별을 마주한다.
그 속에서 마주했어야 하는 이별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별이 교차한다.
나는 죽은 이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납관사인 주인공 뒷편에는 죽은 이의 가족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히 그가 조심히 떠나기를 바랐다.
그들의 표정에는 슬픔이 물처럼 흐르고 있었고、주체할 수 없어 서로를 껴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애도하는 과정을 거쳐 떠난 이를 보내주었다.
‘굿바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때에야 이들의 슬픔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가 전국 자살로 사별한 이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결과를 열 편의 영화를 들어 설명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주고, 고통받는 이들을 따스하게 쓰다듬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비밀 보장의 원칙을 준수하면서 저자는 슬픔이 서툴지 않도록 친절하게 설명했다.

여러분 모두가 본 영화도 있을 것이며, 접하지 못한 영화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모두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어떤 이는 어떠한 감정도 새어나오지 않으며,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한 이들도 있다.
우리 모두가 상실을 겪는 것은 필연적인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 상실 앞에서 우리는 눈물을 참을 필요가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마치 수돗물을 받아놓은 대야에 물이 넘치고, 냄비에 물이 끓어 올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저 흘려보내면 된다고.
그저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위해 애도하자고.

책을 펼치며📖

우리는 슬픔을 적대시한다.
혹은 두려워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심연이라고 생각하거나, 쉴새 없이 흐르는 물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슬픔이 서툴다는 건 우리가 슬픔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건 아닐까.
저자는 영화 속 주인공을 병원 면담자로 내세워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을 진행하는 내내 그들은 천천히 종이에 잉크가 스며들고、발끝에서 머리까지 물이 차오르듯 슬픔을 마주한다.

우리는 슬픔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나는 슬픔이 괴물같다거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슬픔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를 구성하는 몇 안되는 소중한 감정이 내게 말한다.
나를 하찮게 생각하지 말고, 보고 싶은대로 보지 말고 제대로 응시해라고.
그럼에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슬픔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때가 있다.
그때는 어린아이처럼 울거나, 누가 쳐다볼까 두려워 울음을 참는다.
우리는 언제든지 슬픔에 서툰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슬픔이 서툰 우리가 상실을 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알려주기에 이 책을 추천드린다.

책을 덮으며📔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입니다.
사별자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실의 슬픔이 억눌리지 않고 관계 속에서 철철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늘 한 지점을 의식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것이 얼마나 조용하고, 얼마나 고독한지를 쓰고 싶었다.
이 욕망은 결국 나를 향해 되돌아왔고, 끝까지 마주하기에는 지나치게 힘이 들었다.
볼에 남은 흉터는 오래전의 기억이다.
그때의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떤 행동을 반복했다.
몸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 생각보다 앞서는 본능.
피가 시간의 단위처럼 떨어질 때서야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평소 슬픔을 말로 옮기지 못하는 아버지는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실까.
어머니는 아마 울음을 멈추지 못하겠지.
그 상상을 하는 순간,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았다.
그날 나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남아 있었다.
반대로도 생각해봤을 때 난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존재에게 우리가 마음을 쏟았다면、
관계에서 주고받았던 감정과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를 잃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요。
스스로 애도할 권리를 박탈하지 말자고요。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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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디자인 - 우리 시대의 프로덕트 디자이너 100
파이돈 편집부.켈시 키스 지음, 최다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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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책📚

이 책에 등장하는 100명의 디자이너는 각자가 선보이는 디자인으로 자신을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또렷한 선언이 아니라, 오래 쓰다 보니 손자국이 남은 가구처럼 선명하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우리는 삶이 풍족할 때 의자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건 마치 삶의 허전함과도 동일한 것이리라.

지금껏 수고한 내게 내리는 하나의 선물과도 같은 것.

이전에는 의자 생각도 못하다가 조금 여유로워지는 순간 포근한 의자, 몸에 딱 맞는 의자에 앉고 싶어 여기저기 의자를 알아보고 있다.

방 한켠에 놓인 의자 하나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생활을 알 수 있듯 그 곳에 한 사람의 편안함과 행복이 담겨 있을 것이다.


​책을 펼치며📖

각 시대마다 변해가는 세월 속에서 이들이 만든 의자와 테이블, 조명과 공간은 유행을 따라 움직이기보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가 나는 종종 디자인보다 사람을 먼저 보게 되었다.
어떤 가구의 각이 진 모서리와 소재에는 타협을 거부해온 삶이 느껴졌고, 필요 이상의 장식을 덜어낸 형태에서는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유의 시간이 읽혔다.
이들이 만드는 디자인은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각자의 삶과 생각이 응고된 하나의 문장처럼 보였다.

나 역시 내 삶의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 무심코 지나치는 공간들 속에 과연 나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편리함만을 기준으로 선택한 것들 사이에서, 나의 태도나 신념은 얼마나 드러나 있는지 묻게 된다.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이 삶의 결과라면, 나에게도 나의 선택들은 이미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자취하는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주변에서는 늘 맥시멈리스트라는 소리를 듣는 탓에 집에는 쓸데 없는 물건이나 책이 쌓여갔다.
지갑은 빈약했지만, 마음은 풍족했고 이들이 내 삶을 만드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정리해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방에 들어찬 물건들은 내게 말한다.
네 삶을 구성하는 날 어떻게 버릴 수가 있냐고.
내 삶을 위해 나는 물건을 버리지 않았다.
가능하면 오래 쓰고 싶어서 자주 쓰다가 그들이 지쳐가고 낡아갈 때가 찾아오면 그 날 그들을 보내주었다.
목때가 타거나, 늘어난 옷은 어딘가에서 재활용되어 다시 쓰임받기를 바랐다.
버려지는 가전제품이나 소파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보냈다.

"인터뷰에서 모리슨은 디자이너 이름은 없어도 오랫동안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물건이 내뿜는 분위기에서 자극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것들이야말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오래 쓰여 손때가 묻은 물건은 아우라가 생기고, 제가 놓인 공간을 정의하기에 이른다."

『삶을 위한 디자인』은 디자인을 통해 삶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삶이 어떻게 디자인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들의 가구와 디자인은 각자의 삶을 반영하고,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낸 흔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잘 만든 디자인’을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 각자의 삶 또한 어떤 모양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책을 덮으며📔

자 이제 내가 머무는 공간을 상상해보자.

먼저 문을 열면 방이 몇 개 보일 것이고, 주방이나 화장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먼저 어떤 공간으로 뛰어드는가?

바로 침대에 뛰어들고 싶다면 침대를 자신의 생활 리듬이나 몸 상태에 맞게 디자인해도 좋다.

혹은 책을 좋아한다면 여유로운 서재와 아담한 소파가 함께 이뤄진 나만의 독서 공간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은 어디에 가장 오래 머무는가.

이 질문의 끝에서 지금 세계를 대표하는 100명의 디자이너는 말한다.

단순히 아름다움에서 끝나는 디자인이 아닌 사용자를 생각하는 기획방식과 철학, 그리고 작업방식 속에서 삶을 위한 디자인이 만들어진다고.

누군가에게 디자인은 색이 선명하게 드러난 화려함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조명이 방을 비추고 있는 편안함일 수도 있다.

다른 이에게는 무심함처럼 다가와서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는 친근함일 수도 있다.

당신에게 있어 삶을 이루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떤 디자인을 원하며 더 나아가 내 삶에 있어 편히 쉴 수 있는 의자 하나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인터뷰에서 모리슨은 디자이너 이름은 없어도 오랫동안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물건이 내뿜는 분위기에서 자극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것들이야말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오래 쓰여 손때가 묻은 물건은 아우라가 생기고, 제가 놓인 공간을 정의하기에 이른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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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안전가옥 오리지널 47
전효원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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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책📚


이 책의 제목인 '니자이나리'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베트남어이다.

어쩌면 줄곧 말하고 있는, 혹은 어두운 공간에 갇힌 채 반복해서 말하는 동굴 속 아우성처럼 들렸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 말을 가슴에 품고 누군가에게 말한다.

상대방이 들리지 않는 곳에, 먼 곳으로 떠난 지도 모른 채 인물들은 모두 말한다.


책을 펼치며📖


극을 이끄는 주인공인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결혼을 한 '부응옥란'이라는 여자가 있다.

그는 베트남 사람이지만 보통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잘하며, 눈 감고 듣고 있자면 한국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녀는 통찰력이 뛰어났으며, 자신과 같은 이주민들이 곤경을 겪거나 위험에 처하는 일이 있다면 드라마에서 본 모든 법률지식을 동원해 그들을 도왔다.

그녀는 어디에서든지 나타나서 이주민들을 도왔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불편해하고 꺼려했다.

이 이야기는 '부응옥란'이 다른 이주민을 도와주게 되고, 그로 인해 '김유정'이라는 인물을 만나 실종된 '문소평'이라는 중국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책을 읽다가 놀란 것이 몇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다른 여느 화자와는 달리 베트남 사람. 즉 이주민을 앞에 내세워 극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그들.

작가는 이해받지 못하고, 존중도 받지 못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이들을 대변하듯 그들의 입을 통해, 혹은 사건을 통해 말한다.

'아무도 사라져서는 안되며, 찾지 않는 이름들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이 책을 절절하게 말한다.


또 한 가지는 마장동 축산물 시장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진행된다는 것인데 , 실제로 작가는 마장동에서 칼을 잡아온 작가라고 하는데 이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 특유의 찐득하고 서늘한 공기가 흐르는 곳. 그 속에 생과 사 경계 속에 고기 덩어리가 매달려 있고, 칼이 오가고 저울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곳.

그 공간이 주 무대가 되어 '문소평'이라는 인물을 찾아나간다.


이는 단순한 실종 추적극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책을 덮으며 잠시 생각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름들이 있다.

그 이름은 이주민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예흐친'일 수도 있고, '이연화'일 수도 있으며, '이위진'일 수도 있다.

마지막 종착역에는 내 이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를 애워싸는 이름들 중에도 버려진 이름과 찾지 않는 이름이 있다.

나는 여전히 내 이름을 누군가 부르면 화들짝 놀란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서.

혹은 그 이름이 내 이름 같지 않아서.

또 다른 이유로는 내 이름을 버리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이유도 있다.

여러분의 이름은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는가?

분명 중요한 건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마땅히 있는가?

나는 베트남 사람을 비롯하여 외국인을 자주 봐왔다.

'부응옥란'이 사는 시골 동네처럼 나도 시골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들은 늘 다른 사람보다 피부가 약간 까맸으며, 햇볕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 구분되지 않는 빛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웃을 때도 표정은 깊지 않았고, 말끝은 언제나 서툰 한국어가 자리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들은 말이 없었다.

사실은 말이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 번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도 없으며,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기에.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풍경. 저마다의 생각과 의견 표출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게 그들은 단순한 이주민이었으며, 아주 입체적이지도 않은 단순한 그림처럼 느껴졌다.

지금 그들을 생각하면 나는 벗겨지지 않는 비늘을 안구에 두른 것 같았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은 추적극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범인과 쫓고 쫓기는 추적극이 아닌 지나간 일은 지나간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닌 늦었더라도 잘못된 일은 바로 잡는 일.

그것이 진정한 추적극이자 피해자의 혼을 달래고, 사건을 해결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소실되어 가는 어느 존재를 찾아내어 소실되지 않게끔, 세상에 각인시켜주고 어떤 이의 집념과 원한, 분노가 마땅히 표출될 수 있도록 드러내주는 것.

나는 강변을 자주 산책하다가 멧비둘기를 마주했다.

옥수수알맹이를 던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속으로 그들을 혐오했다.

만연히 퍼진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그들을 쏘아붙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멧비둘기를 보았다.

징그럽게 생겼던 그들의 눈이 맑게 보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때 느낀 감정을 소설로 썼고, 이 이야기 또한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어떤 존재들을 조명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의 사건 전개가 그렇게 탄탄한 건 아니다.

물론 필력이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다.(약간 오글거리는 대사도 한 몫한다.)

허점은 분명히 있었고, 어쩔 수 없는 괴리감 또한 존재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소외된 이들에게 주목했고, 목격하고 드러내줬다는 것에 충실했다.

나는 그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그만큼이나 예상치 못했던 전개 속에서 특별한 매력을 가진 소설임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는 어느샌가 이주민을 향한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 잡혀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

우리가 만든 편견은 질문하지 않고 편한 분류 작업으로 세상을 보려는 괘씸한 심보일지도 모른다.


지금 보이는 것만으로도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있어.
시간 여행 같은 초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약간의 정성만 기울이면 돼.
때론 눈앞의 거짓 정보에 속지 않고 감춰진 진실을 추구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 P117

베트남 속담이에요. 늦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늦었더라도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죠.
억울한 사람은 없는지, 자기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운 사람은 없는지 확실하게 밝혀서요.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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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단어 - 늘 따라오는 것, 쫓아오는 것, 나를 숨게 하지 않는 것, 무자비한 것, 그러나 모두에게 공평한 것
김화진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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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책📚

이 책은 오십 개의 단어로 이뤄진 하나의 사전입니다.
제목만 보자면 나만 아는 단어라니?
세상에 나만 아는 단어가 존재하는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이 안내해주는 단어의 나열 그 여행을 떠난 완주자로서 말씀드립니다.
나만 아는 단어란?
바로 나만이 부여할 수 있는 의미가 듬뿍 담긴 단어라는 겁니다.
이 사전을 펼쳐 읽으면 본래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거나 벌어지거나 새롭게 담겨질 겁니다.
열 명의 소설가, 시인, 번역가
그들이 마음 속에 품어왔던 혹은 산책하며 주워 담아왔던 다섯 개의 단어를 각자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궁금한 단어가 있으면 책장에서 꺼내어 펼칩니다.
하지만 분명 우리가 알고 있던 단어랑은 차이가 있을 겁니다.
분명하죠.

책을 펼치며📖

책의 표지가 되는 방 하나와 나방이 등장합니다.
이 사전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방 한 켠에 나비와 나방이 함께 날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머릿 속에 그려지기도 합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선혜 시인의 '빠삐용'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방의 모습을 알고 계신가요?
프랑스에서는 '빠삐용'이라는 말이 나비와 나방이 함께 쓰인다고 합니다.
원래라면 자연의 순환 속에서 가느다란 빛줄기를 따라 야간비행을 하지만,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빛으로 인해 항로가 틀어집니다.
그들은 형광등 아래에 모이고, 밝게 빛나는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죠.
유선혜 시인은 관념적으로 떠오르는 나방은 나비와 마찬가지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방 안에 들어온 나방은 죽이고 싶을 정도라고 하죠.

여기서 방 안에 들어온 나방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징그러운 것일까요?
우리가 불러들인, 마음대로 들어온 나방을 내쫓아야 할까요?
일상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 한마디를 하면 그건 하나의 고유한 단어가 되는 것이죠.
그 단어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별주부전' 이야기를 아시나요?
용왕님이 알 수 없는 병을 앓자 별주부는 육지로 나와 토끼 간을 찾습니다.
뒷이야기는 다들 아실 겁니다.
저는 여기서 나오는 토끼 간이 토끼 똥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이야기도 좀 다르고요.
용왕님은 토끼가 싸지른 똥을 먹고 병이 나았다고 나옵니다.
더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토끼똥은 만병통치약이야!'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새삼 부끄러워지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령님보다 대단한, 혹은 더 위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죠.

이처럼 우리는 단어를 캄캄한 독방에 가둘 수도 있고, 창 틈을 만들어 내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단어를 하나의 나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방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으신가요?

먼저 날개는 얇고, 몸통은 대체로 짧고 통통합니다.
마치 오래된 먼지를 눌러 쌓은 작은 주머니처럼,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미세한 털들이 빽빽하게 돋아 있습니다.
그 털은 윤기가 없습니다.
이 털 덕분에 나방은 언제나 흐릿합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기억 속 사물 같은 형상이죠.

손에 닿으면 병이 옮겨질 것 같고, 역겨운 냄새가 새어 나오는 그런 존재.
하지만 우리가 내뱉는 단어 속에도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내뱉는 순간 그 말이 결정지어지는 거죠.
결정되는 말.
모든 말은 어떤 의미를 부여 받고 결정됩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죠.
이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오해하죠.
어쩌면 아주 더러운 뜻으로 오역한 상태로 말이죠.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단어란 감옥이나 방 한 켠에 가둘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겁니다.
분명한 건 이 책에 담긴 오십 개의 단어 모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외화한 단어가 문장이 되어 살을 덧붙이고 해체하고 때로는 아예 다른 말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당연합니다.
살아있기 때문이죠.

책을 덮으며📔

여러분은 '나만 아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마음 속에 겹겹이 숨겨 놓고 맞대어 생각해둔 귀중한 단어.
그 단어 속에서 당신이 살아 숨 쉴 수도 있고, 당신을 대표하는 귀중한 존재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관념 속의 나방. 괜히 빠삐용이라 불러보고 싶은 낯선 생물. 정작 내 방 안에 들어온 나방은 죽이고 싶고, 나에게는 많은 것이 그렇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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