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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영광 새소설 22
권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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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을 남을 웃기는 일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 p147

이 책의 저자는 '무한도전'과 같은 굴지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외에도 '놀러와'를 만들고, '진짜 사나이', '아빠 어디가'를 기획한 MBC 소속 예능 PD이다.

어릴 때 안방에서 웃음을 책임지고 누구보다 앞서 달리며 누군가를 구원하는 길을 개척해나갔다.

방송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는 시청자들 앞에 그들은 말한다.

그럼 다음주에 봐요.

다음주가 되어 똑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다른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티브이에 눈을 못 떼던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이를 '무도 키즈'라고 부른다.

동시에 '1박 2일 키즈'이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에는 무한도전을 봤고, 일요일 오후에는 1박 2일을 봤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어찌 되었건 한없이 고독했던 시절을 책임지던 주역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펼쳤다. 아니 카세트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어 버튼을 눌렀다.

화자는 마흔 중반이 된 코미디언 출신 택시 운전사가 나온다.

현재 그는 택시를 몰며 손님에게 삐에로 코를 달고 작은 스케치 코미디를 보여준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루에 한 사람 이상을 웃기는 것.

한 사람이라도 웃음을 전파했다면 자신에게도 그 웃음은 전해져와 하루가 행복했다.

지금의 인생은 카세트 테이프로 따지면 SIDE A.

그는 애초에 코미디언을 할 깜냥도,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다는 생각도, 재량도 없었다.

원래 그는 작은 교회의 전도사였다.

과거로 돌아간다.

지난 인생은 카세트 테이프로 따지면 SIDE B.

A와 B를 오가는 시간대 속에서 그는 어찌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나는 코미디언이다'라고 증명해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이프에 들려오는 그 시절 방송국 코미디언 다섯 명의 18기 동기들의 웃기는 이야기.

하지만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그저 웃었다.

라고 한다면 그게 어떤 웃음인지 글로 접한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에서 울리는 웃음은 정말 즐거워서 웃기도 하며, 서러워서 웃고, 울 것 같을 때에도 웃었다.

그저 그런 성공을 달리는 책이 아니다.

그들이 달려간 끝에는 남들과 다른 성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을 웃기고 그 사람을 구원에 이르는 길.

그리고 코미디언 본인 조차도 구원에 이르는 길.

천국에는 코미디가 존재하지 않는대.

코미디의 원천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니까.

연예대상 p327

나는 천국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천국이 그 자리에 분명히 존재함을 믿고 있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곳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정말 방송국 코미디의 현장에서 뛰는 인물처럼 이리저리 스튜디오를 뛰어다녔다.

그 시절 신입 코미디언의 수칙이라는 것도 있으며, 집합을 때리고 체벌을 가하는 그런 일이 빈번히 벌어졌다.

입만 열지 않았지.

그저 묻어두고 지나간 일은 많았다.

나는 웃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에는 그런 이들의 뒷배경을 몰랐다.

그들은 모두 남을 웃기기 이전에 살아남으려고 버텼고, 끝까지 살아남아 웃기는 일에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다섯 명의 주인공.

전직 전도사 출신 최도사.

나주 카사노바 김철수.

마장동에서 고기를 팔던 마우돈.

Y대 출신에 나사 연구원 아버지를 둔 나우주.

배우가 꿈인 조은별.

이들은 모두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상경했다.

나는 그들이 꿈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떨며 책을 넘겼다.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실소와 더불어 과거에 묻어둬야만 했던 아픈 상처.

그리고 그들이 만든 코너 속에서 보여주던 케미와 개그까지 울고 웃으며 이 책을 덮었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동시에 아 이 책은 행복을 전하는 책이라고도 생각했다.

행복을 전하는 책을 나열하라고 한다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이 '코미디의 영광'이지 않을까.

영광은 남이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리라.

그건 분명 행복을 정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리라.

코미디는 이제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유튜브 숏폼을 넘겨도 우리는 소소한 웃음을 주는 코미디를 접할 수가 있다.

우리는 핑거를 누르면서 피식하고 웃는다.

그리고 손가락을 오므리며 그 시절 무한도전과 1박 2일을 보던 시절로 돌아갔다.

내일도 다음주를 기대하며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코미디가 필요하다.

어질어질한 폭소와 주체할 수 없는 실소 사이에서 우리들은 피에로 코를 달고 이곳이 마치 천국인 양 굴어보자.

이 책을 덮으며 난 혼자 중얼거려보았다.

'시간이 약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픈 일이 있어도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면 안되었다.

대신 이렇게 말해본다.

코미디는 네버 다이!

그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코미디 포에버!

나는 코미디언이다 p368

코미디는 네버 다이.

코미디는 포에버.

그리고 지나온 내게 있어서도 시간이 약이라고 치부해서도 안된다.

인생은 코미디.

코미디는 기쁨이 아니라 슬픔에서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코미디.

아무리 아이러니하고 어이없어도 그래도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난 시간이 약이라는 걸 마시고 싶지 않아 입을 떼어 말하고 싶다.

나는 네버 다이.

나는 뽀에버.

뒤가 아닌 앞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나는 행복하다.

반대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는 불행하다.

그렇기에 인생은 비극과 희극이 공존한다.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땐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먹고사는 게 절박했고

용기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많이 자책하고 후회했습니다.

나는 코미디언이다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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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트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7
문지혁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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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여행하는 책📚

우리는 여행 갈 준비를 한다.
그러다 지난 여행에서 찍어둔 필름 롤이 눈에 들어온다.
무려 삼백 장 가까이 되는 분량을 아직 인화하지 않았다.
나는 주로 올림피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 사진들 속에 내 모습은 단 한 장도 없다.
아마 그럴 것이다.
에펠탑 앞에서 멋있게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찍어주고, 마르크트 광장 중앙의 동상을 담았다.

한때는 프라하행 야간열차에서 만난 그녀와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떠한 기록 장치도, 기억력도 변변치 않았다.
그녀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나는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잊어버렸다.
그 사실을 떠올린 건 일주일이나 지나서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사죄하듯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여행 내내 노트를 들고 다니며 순간을 소설로, 시로 남겼다.
장면을 물리적으로 붙잡고 싶어 아버지가 쓰던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필름 카메라는 성가신 존재였다.
찍는 즉시 결과를 보여주지도 않고, 부지런히 사진관을 찾아가 인화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손에 땀이 나도록 붙잡고 다녔다.
필름 카메라는 단순한 구조로 작동한다.
렌즈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조리개가 빛의 양을 조절하고, 셔터가 일정 시간 동안만 빛을 통과시킨다.
빛에 반응한 화학 물질은 그 순간을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필름 위에 새긴다.

노출의 정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단노출은 찰나를 선택한다.
짧은 시간 동안만 셔터를 열어 한 점의 시간을 고정한다.
장노출은 시간을 축적한다.
셔터가 열려 있는 동안 일어난 모든 움직임을 겹겹이 쌓아 수용한다.

나는 장노출처럼 그녀를 오래 담아두고 싶었다.
그녀와 다시 만난다면.
그 생각이 무섭도록 천천히 다가올 때면 나는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고 셔터를 눌렀다.
약속 장소였던 빈에 도착했을 때, 나는 플랫폼에 앉아 한참을 시간을 흘려보냈다.
손에 쥔 카메라로 빈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는 야간열차를 찍었다.
열차는 빨랐고, 셔터는 오랫동안 열렸다.
열차는 또렷했고, 배경은 빛으로 번졌다.
건물의 네온은 선이 되어 흐르고, 열차는 그 사이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빛이 번지는 건물들 사이로 나는 끝없이 전진하는 열차를 바라보았다.

필름으로 찍는다는 건 곧 암전을 감수하는 일이다.
암전 이후 찾아오는 어둠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현상되기 전까지는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했다.
혼란스럽고 흐릿했던 시간이 지나 이미지는 현상액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나는 그 사진 어딘가에 그녀가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남은 것은 세 시간의 만남과 확실한 이별이었다.

현상된 것은 사진만이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사실 또한 함께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의미가 드러나는 것처럼.
여행은 흩어진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세계를 받아들이고,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
한 번 받아들인 이상 여행 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별도 그렇다.
이미 찍혀버린 장면은 삭제할 수 없다.
셔터를 누른 순간, 되돌림은 불가능하다.
얼마나 오래 빛을 받아들이는가.
내게 빛은 치유이면서도 몽롱함이고,
흐려짐이면서도 선명해짐이다.
나는 빛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필름 위에 새긴다.

여행을 마치며📔

이 책은 오토픽션이다.
작가 자신이 인물로 등장한다.
자신에게 빈에서 구매한 은반지를 선물하며 이별을 선언한 그녀 O.
그녀와 다시 한번 이별을 하기 위해 유럽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빈에서 은반지를 던져버리기로 한다.
허구와 실제의 경계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따지기보다 그가 보여주는 사건과 행동을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또한 하나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장을 쓰며 살아간다.
퇴색되어가던 의미를 다시 꺼내 나는 소설로 재구성했다.
당신도 잊혀가던 기억을 다시 소설로 써보고 싶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세상의 속도가 빛처럼 빠를 때 우리는 소설을 써야 한다.
소설을 쓸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오래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붙잡고 싶을 때 네온 빛 사이로 지나가는 이 책을 선명히 포착하고 읽었으면 좋겠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것은 사진이었다.
인화한 필름 사진들은 마치 보호 기능이 없는 에어캡처럼
여기저기 소포 속 빈틈을 메우고 있었는데,
유독 어느 한 묶음만은 회색 종이봉투에 들어 있었고 봉투 겉면에는
독수림 그림과 함께 ‘ARMANI EXCHANGE‘라는 글자가 여전히 선명했다. - P16

그때 나는 왜 유럽에 가려고 했던 걸까?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생각한다.
90년대 후반에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럽 배낭여행이 유행처럼 번졌던 것은 사실이다. - P21

일행의 여행 최종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지만
내 최종 목적지는 여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
반지를 버리면 그때부터 나는 자유다. - P97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서 나는 맨 첫 장으로 돌아갔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 소설에 어울리는 제목은 하나뿐이었다.
노트를 덮고 나는 머리를 뒤고 기댔다.
비행기가 서해 상공에서 진입하고 있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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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달려 온
연여름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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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이 소설집은 총 여덟 편의 이야기를 이루어졌다.
아니, 여덟 개로 이뤄진 밤의 조각이라고 해도 좋다.

이 책은 동화적인 요소와 아포칼립스적인 요소, 퍼져가는 바이러스, 시간이 뒤틀린 세계, 밤과 낮이 뒤바뀐 세계, 아이가 부모를 고르는 세계, 꿈이 사라지고 만들어낸 꿈을 이식하는 세계

이러한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그 속에 SF적 상상력 위에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수성으로 풀어낸 여덟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이 작품이 다른 여타 SF 소설과는 다른 점은 이 작가가 느끼고 겪고 있는 어둠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 비판을 한 웅큼씩 집어 넣었다.

책을 읽는 우리들은 밤의 조각을 하나씩 입에 집어 넣듯 한 편씩 단편을 집어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은 제각기 다른 맛이겠지만, 내 안 깊숙한 데까지 건드리는 그런 익숙하고 그리운 맛이 있었다.

​책을 펼치며📖

1. 하품

무기력과 잠이 바이러스가 되어 전체 인구 80% 이상이 전염된 '솜누스' 사태 이후 후유증으로 꿈을 꾸지 못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 수요에 맞춰 '모프시스' 기업은 레디메이드를 비롯한 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꿈을 이식한다.
주인공은 꿈 설계사로서 '호연'에게 꿈을 이식해준다.
동시에 가족 초대 심사를 받기 위해 '윤재'와의 접견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을 꿈 이식이라는 기술이 불러오는 위험성과 중독.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온 폭력과 학대를 되돌아보게 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아이가 부모를 고른다는 설정 자체가 자극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난 이 작품은 더욱 아픔에 집중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들의 아픔이 '하품'처럼 전염될 수도 있으며 그저 하품 한 번 쉬었다고 몇 번이나 구타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사회는 편히 하품을 쉬어도 되며, 깨지 않는 악몽이 잠을 자지 않아도 떠오를 정도로 아파와도.

우리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
그리고 마음껏 하품하고 웃어도 된다.
누가 뭐라고 할 권리도 없으며, 설령 그렇다할지라도 선택하고 화를 낼 권리는 우리에게도 있다.
무기력과 잠이 바이러스가 된 배경과는 달리 현재 사회는 털 끝 하나 닿기라도 하면 기겁하며 일그러진 표정을 짓기 일쑤이다.
언제부터 이런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고 팽배해졌을까.

2. 밤을 달려 온

표제작인 이 작품은 밤과 낮이 뒤바뀐 시대를 살아가는 '온'을 중심으로 달려간다.
12년을 주기로 밤과 낮이 뒤바뀐다.
'라크'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온은 경비대장의 저택에서 시종으로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가오는 밤을 두려워하며 서둘러 불을 지필 기름을 준비하고 식량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한 손님이 찾아온다.
그 이름은 '나기'
온은 나기의 몸에 묻어난 땀을 닦아주며 어떠한 기억과 감정을 읽어낸다.
온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있었다.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닿기만 해도 슬픔이 전이되고 아픔이 찾아온다.
기쁜 기억이 전해져 내려와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곧 찾아오는 어둠이 두려움이 아닌 누구보다 밝은 어둠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하늘에 수놓은 별을 따라가면 가야할 길을 알 수 있듯 온은 찾아오는 어둠에 망설이지 않고 달려간다.
두려움은 곧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들고, 제대로 된 판단도 하지 못하도록 한다.
과거와의 작별은 영영 불가능하며 찾아온 현재는 밤이 되어 영영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늘을 보라.
별은 우리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나를 지키고 보호해줄 수 있는 곳으로.
늘 구박을 받고,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밤이면 나기의 기억 속 자그마한 등불을 떠올린다.
우리는 자그마한 등불 하나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거나 과거에 치일 때가 많다.
우리에게는 늘 자그마한 등불이 필요하다.
당신에게도 밤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등불이 마음 속에 자리하기를.

책을 덮으며📔

이 책을 읽고 서평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도 '연여름' 작가의 작품은 꼭 읽어볼 마음이 들었다.
당신에게도 밤의 조각을 꼭 천천히 음미하고, 어두움을 받아들이고 달려갔으면 좋겠다.
부디 밝은 ​밤이 함께 하기를.

나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요즘 온을 위한 등불인 동시에 호론이었다.
매일 조금씩 커진 밤의 조각이 찾아올 때도,
온은 두려움을 밀어내기 위해 나기가 들려준 밤 이야기를 떠올렸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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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 탄자니아 여행그림책
나태주 지음 / 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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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교과서에 수록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여행 시집을 읽었다.
최근의 나는 매일같이 일하고, 잠들기 전에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밤이 깊어지면 운동을 나갔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시간에 샤워를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꿈 속에서는 희미한 스케치가 그려졌다.
풀꽃이 흔들리는 이미지.
꽃들 사이에 피어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내 일상을 침식하고 있었다.
그의 시처럼 천국도 지옥도 아닌 세상.
돌아보니 천국이었던 곳이 있었고, 지옥이었던 곳이 있었다.
차라리 내가 천국이었다면, 천사였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나태주 시인은 짧고 쉬운 언어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읽는 내내 담백하게 우려낸 곰탕 한 그릇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자극적이지도, 요란하지도 않지만 천천히 숟가락을 들수록 몸 깊은 곳까지 온기가 번진다.
문장은 짧고, 여운은 길다.
간결한 말 한마디가 마음속 가장 오래된 자리까지 스며들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닿는다.

​책을 펼치며📖

그는 월드비전을 통해 마련된 비행기를 타고 탄자니아로 날아갔다.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한 소녀의 얼굴.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던 아이.
'네마 니코데무.'
더 일찍 만나기 위해 황열병 예방주사까지 맞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그를 멈춰 세웠다.
탄자니아로 가는 길도 그렇게 미뤄졌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가 소녀를 만났을 때
아이의 시간은 훌쩍 자라 있었다.
사진 속 어린 소녀는 온데간데 없고 키는 무럭무럭 자랐고, 눈빛은 여전히 맑았다.
반대로 그는 나이가 들었다.

소녀가 꿈이 의사라고 말하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의사가 되면 한국에 놀러 오렴.”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내가 살아 있다면.”

이상 기후는 계속되었다.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검은 얼굴의 아이들은 뜨거운 대지 위에서 뛰어놀다가 이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양이나 염소와 같은 짐승은 목이 말라 몸을 낮추고 열기 속에서 희미한 숨을 고르며 힘을 비축했다.
그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생수 몇 박스라도 가져올 걸."

사람이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 땅에서 그는 묵묵히 살아가는 순수한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물이 없는 곳에서 눈물이 먼저 흘러나왔다.
살기 힘든 곳이라 여겼지만 그들은 오히려 천국에 사는 천사들처럼 보였다.

그의 시를 읽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삶을 저주하고 생명줄을 끊어버리고 싶다고 말하는가.
그 순간, 소 눈망울처럼 크고 맑은 눈이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다가와 내 손을 잡는다.
이상하게도 섬뜩했다.
삶이 조용히 끝을 향해 가는 건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마냥 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성한 잡초 위에 피어난 절망 속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말하는 그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가 쉽게 갖지 못하는 희망을 끝내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이상 기후를 모른 척하고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며 자기 안으로만 숨어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두렵고 섬뜩한 일 아닐까.
그가 내민 손이 또 다른 힘든 이의 손을 붙잡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그 장면.
어쩌면 그곳이 천국일지 모른다.

책을 덮으며📔

"차라리 내가 말이야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고
누군가의 천국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천국이었을까.
내 말과 행동은 누군가에게
떳떳한 천국이었을까.
지금 우리에게 나태주 시인의 말이 필요한 이유는 잊혀져 가는 천국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천사가 되어 사흘 동안 슬피 울던 이의 등을 쓸어준다.
나흘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울다가 웃으며 말한다.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다시 앞을 보니 이곳도 천국이었네.”

끝나지 않는 건 이상기후뿐만이 아닌 이상기후를 포착하지 못하고, 포착했지만 외면하는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는 일 조차 힘겨운 일처럼 느껴지는 요즘.
우리는 작은 손 하나 내미는 일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날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만 인간의 세상
허겁지겁 서두르고 아웅다웅 다투고
넘어졌다가는 일어서기도 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세상
날마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만 보통의 사람들
너나없이 서툴고 잘하는 일 많지 않고
자기만 오로지 챙기는 이기적인 천사도 악마도 아닌 사람들
하지만 말이야, 잠시 잠깐
발을 멈추고 돌아보면
금방 떠나온 그곳이 천국 아니었을까?
고대 헤어진 그 사람 또한
나에게는 천사 아니었을까?
정말로 그렇다면 말이야
지난날에서만 천국을 찾고
헤어진 사람에게서만 천사를 만나지 말고
앞으로 오는 세상에서도 천국을 찾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천사를 만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내가 말이야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고
누군가의 천국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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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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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나는 왜 이 바다를 읽게 되었을까.
책은 방대했고, 흑해만큼이나 깊었다.
그건 마치 깊이 잠들어있는 역사적 잔해물, 흠집 없이 보존된 난파선 같았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사실은 늘 바다를 두려워했다.
수영은 전혀 못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는 길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찰스 킹의 '흑해'를 읽으며 나는 그 두려움이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흑해는 오랫동안 세계의 가장자리에 놓인 바다였고, 사람들은 늘 이 바다 앞에서 상상과 공포, 욕망을 동시에 키워왔다.

"흑해는 '문명' 세계와 '야만' 세계가 만나는 곳이라기보다는,
그리스인과 후에는 로마인을 비롯한 외부인들이 오랫동안 해안 주변에서
다양한 생활 양식과 관습이 소용돌이치듯 뒤섞이던 과정에 스며들고,
그 일부가 된 곳이었다."

책을 펼치며📖

이 책은 하나의 바다에 관한 역사서지만, 읽는 동안 나는 자꾸만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경계를 만들어왔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흑해는 세계의 끝이었고, 그래서 신화가 태어났다.
그러나 신화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곧 상업이 들어오고, 식민지가 세워지고, 제국의 이름이 바다 위를 떠다닌다.
흑해의 이름이 시대마다 달라졌다는 사실은, 이 바다가 얼마나 자주 타인의 언어로 불려왔는지를 말해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다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설명이었다.
산소가 닿는 얕은 층에만 생명이 있고, 그 아래는 거의 죽음에 가까운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다는 이야기.
나는 이 구조가 이 바다를 둘러싼 역사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지만, 모두가 기록으로 남지는 않았다.
어떤 삶은 수면 위에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졌고, 어떤 것은 심해처럼 말없이 가라앉았다.

책 속에서 흑해는 언제나 이동의 장소였다.
스키타이인들, 로마인들, 비잔틴과 이탈리아 상인들, 그리고 오늘날의 국가들까지.
누구도 이 바다에 완전히 머물지 못했고, 모두가 무언가를 남기거나 가져가려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바다가 인간을 거부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흑해는 늘 사람을 받아들였지만, 결코 그들의 소유가 되지는 않았다.

오늘의 흑해는 다시 정치의 언어로 불리고 있다.
석유와 가스, 파이프라인, 국경.
그러나 이 책을 덮고 나면 그런 단어들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천 년 동안 반복되어온 떠남과 침묵이다.
흑해는 늘 경계에 있었고, 경계는 언제나 불안과 매혹을 동시에 품는다.

​책을 덮으며📔

'흑해'를 읽으며 나는 바다를 이해하게 되었다기보다, 내가 왜 바다 앞에서 멈춰 서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시간이며, 장소가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세계를 건너온 것인지, 아니면 늘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며 이름만 바꾸어 불러왔던 것은 아닌지. 흑해는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오래도록 남긴다.

바다의 과학조차 민족 개념의 유호글 피할 수 없었다.
한때 오스만의 멍에에서 새로 해방된 민족의 유산으로 찬양받았던 바다는
이제 소련 팽창주의의 탐욕으로부터 지켜야 할 보물로 선전됐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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