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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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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께서 집필한 이 책은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한 책입니다.
일반적인 서사를 벗어나 책을 읽는 독자를 <그대>라고 부르죠.
책을 펼친 순간 이 책은 말합니다.
나보다 파격적인 녀석은 없을 걸?
맞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살아있습니다.
작가의 머릿속을 한 번 드나들고 다른 은하계로 여행을 갔을지도 모릅니다.
형체는 없고 작가의 머릿속에만 남은 채 말이죠.
지금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고요.

책을 펼치며📖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기며 스스로를 <여행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저를 소개합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
여행의 책이라니?
이건 마치 책이 살아서 말하는 것 같구나!
그런 책도 있었나.

홀로 고독한 책, 몹시 심술 궂은 책,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어 결국에는 중간도 못 가 책장을 덮게 만드는 그런 녀석도 있죠.
반면에 저를 기쁘게 하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그런 녀석은 제 서재에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근데 이 녀석은 다른 책이랑 성격이 달랐습니다.
앞에서 말한 책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죠.
이 책은 처음에는 상냥하게 손을 내밀며 함께 여행하자고 저를 꼬드깁니다.
이 녀석의 말이 얼마나 달콤한 지 손을 잡듯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죠.

아주 달콤한 말을 건넵니다.
함께 여행을 떠나자. 육체를 버리고 정신이 떠나는 여행.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 말이 예전에는 '함부로 나대지 마라.'라고 변환되어 들려왔죠.
그 때문이었을까.
본래 저라는 사람은 어딘가로 숨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아마 깊은 골짜기나 캄캄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늘 남의 시선을 신경쓴다.
이런 말을 자주 들었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그러한 경험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기억이 떠올리려고 하는 찰나에 이 녀석은 말합니다.

"이 여행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그대는 곧 돌아올 것이니,
차분한 호흡을 계속하고 있으라고
그대 육체에게 말하라.
나는 그대의 책이다."

이제 숨을 가다듬고 날아오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녀석의 말대로 해보죠. 뭐.

공기의 세계📗

그 중 첫 번째 공기의 세계를 떠다니며 산뜻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다가 폭포수에서 수련을 하던 도인을 마주하죠.
도인은 저에게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합니다.
제가 왜 바보일까요?
저는 그저 더 넓은 세상을 보았고, 인생은 그저 허깨비가 아니라고 말했을 뿐인데 말이죠.
근데 바보 같다는 게 마냥 나쁜 뜻은 아니더군요.
프랑스어 앵배실의 어원을 둔 참된 뜻의 언어로는 <발목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발목도 지팡이도 필요 없는 사람.
홀로 걷는 사람.
어쩌면 인생은 홀로 걸었을 때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홀로 걷지 않기 때문에 '바보'라는 소리를 못 듣고 자란거죠.
저는 바보입니다.
자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외쳐보시죠.
저는 바보입니다.
홀로 걷는다는 사람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전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허리를 구부린 채 두 손을 등에 모으고 걷는 어르신, 당당하게 걸어가는 어른의 모습 사이로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어린 아이의 설레는 뒷모습.
우리는 어쩌면 자신을 위한 뒷모습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오직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모습만을 보인 채 말이죠.
자 저는 이제 다음 여행지로 떠납니다.
얼른 안내해줘.
그 말에 이 녀석은 제 손을 잡고, 페이지를 넘기라고 말합니다.

​흙의 세계📙

저는 잠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대지를 밟고 세계를 딛고 일어선 제가 보입니다.
저를 맞이해맞이해주는 친구들을 마주하죠.
그들은 저를 위한 파티를 열어주고 생일을 축하해줍니다.
정말 감사하죠.
하지만 그들은 제 등을 떠밀며 혹은 저를 믿어줍니다.
잠시 쉬었다가 여행을 떠나라는 거죠.
잠시 뜨거운 눈물을 뒤로 하고 그들에게 제 뒷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전 제 몸을 뒤로 하고 정신이 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홀로 가되 독선적으로 가지 말고 안내서가 되어줄 친구를 만나라.


불의 세계📕

이 세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병이 확산하고, 죽음이 늘어나는 곳이죠.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을 마주합니다.
이 녀석은 잠시 괴팍해집니다.
어서 눈을 뜨고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뭘?
저를 가로막는 수많은 적을 말이죠.
이 녀석들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불운이 되기도 하고 죽음이 되기도 하죠.
결국에 마주할 상대는 자기 자신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잘 모르지만 상대는 저를 아주 잘 압니다.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을 배꼽 주머니에서 마구 꺼내보이죠.
저는 눈을 감고 싶어집니다.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런 유형의 여행이 아닙니다.
이 여행은 저를 마주하는 혹독한 여행입니다.
지중해로 둘러싸인 나라에 가서 유유자적 햇볕을 쬐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그를 이기기 위해 저를 마주하고 그가 꺼내는 카드보다 더 센 카드를 꺼내보이기로 합니다.
아 저는 이길 겁니다.
누구를?
저를 이길 겁니다.

혹독한 훈련을 거친 것처럼 숨을 헐떡거립니다.
아 편하게 침대에 누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는데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요?
이 녀석은 채찍을 휘두르더니 이제는 당근을 주네요.
흥. 절대 안 먹을거다.
라고 말하려는 찰나
이 녀석은 제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배꼽에서 꺼내 들이밀죠.
흥. 순순히 페이지를 넘기고 맙니다.
그는 저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물의 세계📘

사실 저는 물이 무섭습니다.
물 속에 있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잖아요. 헤엄을 치는 것도 잠시 잘못하면 빠져 죽을 수도 있죠.
그런데도 물에 들어가면 편안한 마음이 듭니다.
뼈 마디를 눌러주고 어깨를 주무르고 있죠.
저는 생명입니다.
태초에 저는 물 속에 있었습니다.
양수 속에서 어머니의 품을 느꼈죠.
가끔은 아버지의 툭 튀어나온 배꼽이 절 누를 때도 있었죠.
이 책은 제 시작을 알려주었습니다.
제 어버이가 저를 낳았고, 마름모 형태의 빛이 새어 들어와서 그 빛을 따라 머리를 집어 넣으니 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습니다.
이 빛이 저를 만들어준 생명이라는 겁니다.

책을 덮으며📔

저는 이 책을 덮으며 <안녕>이라고 말해보았습니다.
이제 영영 보지 말자는 말이 아닌 자주 보자는 말입니다.
순간 목욕을 오래 한 것처럼 때가 부풀어 올라왔고, 개운함과 동시에 피곤함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제 잘 시간이라 자야겠다.
하지만 잘 때마다 느낀 불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진정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저는 배꼽에서부터 마주한 빛, 탯줄을 끊어진 순간을 기억하며 어버이 더 나아가 행성, 은하계, 빅뱅으로 이어져 있다는 순간을 상상합니다.


당신의 여행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정신을 수행하기 위한, 혹은 나 자신을 가라앉히고, 바라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를 소개합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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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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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용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팟캐스트 〈한 사람을 위한 문학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라디오를 통해 자주 목소리를 들었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더 뵙고 싶은 작가다. 그 이유는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이야기 바깥의 공간들 선릉 주변을 산책하고, 「미스터 심플」의 인물을 떠올리며 무인 세탁소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소설이 끝난 뒤에도 인물과 장소가 현실로 이어지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가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감정이 고양된다기보다는, 마음속 어딘가가 조용히 정돈되는 느낌에 가깝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의 소설은 분명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시각적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보이게 만드는 문장들이다.

작가는 자폐를 가진 인물과 함께 선릉 주위를 맴돌고, 모두 타버린 종묘를 바라보며, 당근을 매개로 서로의 아픔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이야기를 쓴다. 이 소설들은 거창한 사건 대신, 잃어버린 것들의 흔적을 더듬는 행위에 집중한다. 무엇인가를 따라 걷고, 머뭇거리고,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인물은 자신을 조금씩 마주한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혼란 속에 있고,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망설임 자체가 하나의 진실처럼 느껴진다. 사라져가거나 이미 소멸된 것들을 붙잡으려는 시도, 혹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의 소설을 오래 남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이야기를 읽었다기보다 누군가의 걸음을 잠시 따라 걸었다는 감각이 남는다. 정용준의 소설은 그렇게 독자를 조용히 돌아보게 하는 힘이 깃들었다. 나도 모르게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걸음을 따라 걸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 「두부」 속 두부를 만날 수도 「미스터 심플」 속 미스터 심플을 만날 수도 있다. 「이코」 속 주우를 마주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어떤 만남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그들과 함께 발을 맞추어 걸을 것이다.

이 작품을 한 사람을 위해 마주 걷고 싶은 사람 혹은 나를 위해 걷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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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 탄자니아 여행그림책
나태주 지음 / 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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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교과서에 수록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여행 시집을 읽었다.
최근의 나는 매일같이 일하고, 잠들기 전에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밤이 깊어지면 운동을 나갔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시간에 샤워를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꿈 속에서는 희미한 스케치가 그려졌다.
풀꽃이 흔들리는 이미지.
꽃들 사이에 피어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내 일상을 침식하고 있었다.
그의 시처럼 천국도 지옥도 아닌 세상.
돌아보니 천국이었던 곳이 있었고, 지옥이었던 곳이 있었다.
차라리 내가 천국이었다면, 천사였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나태주 시인은 짧고 쉬운 언어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읽는 내내 담백하게 우려낸 곰탕 한 그릇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자극적이지도, 요란하지도 않지만 천천히 숟가락을 들수록 몸 깊은 곳까지 온기가 번진다.
문장은 짧고, 여운은 길다.
간결한 말 한마디가 마음속 가장 오래된 자리까지 스며들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닿는다.

​책을 펼치며📖

그는 월드비전을 통해 마련된 비행기를 타고 탄자니아로 날아갔다.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한 소녀의 얼굴.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던 아이.
'네마 니코데무.'
더 일찍 만나기 위해 황열병 예방주사까지 맞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그를 멈춰 세웠다.
탄자니아로 가는 길도 그렇게 미뤄졌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가 소녀를 만났을 때
아이의 시간은 훌쩍 자라 있었다.
사진 속 어린 소녀는 온데간데 없고 키는 무럭무럭 자랐고, 눈빛은 여전히 맑았다.
반대로 그는 나이가 들었다.

소녀가 꿈이 의사라고 말하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의사가 되면 한국에 놀러 오렴.”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내가 살아 있다면.”

이상 기후는 계속되었다.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검은 얼굴의 아이들은 뜨거운 대지 위에서 뛰어놀다가 이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양이나 염소와 같은 짐승은 목이 말라 몸을 낮추고 열기 속에서 희미한 숨을 고르며 힘을 비축했다.
그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생수 몇 박스라도 가져올 걸."

사람이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 땅에서 그는 묵묵히 살아가는 순수한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물이 없는 곳에서 눈물이 먼저 흘러나왔다.
살기 힘든 곳이라 여겼지만 그들은 오히려 천국에 사는 천사들처럼 보였다.

그의 시를 읽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삶을 저주하고 생명줄을 끊어버리고 싶다고 말하는가.
그 순간, 소 눈망울처럼 크고 맑은 눈이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다가와 내 손을 잡는다.
이상하게도 섬뜩했다.
삶이 조용히 끝을 향해 가는 건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마냥 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성한 잡초 위에 피어난 절망 속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말하는 그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가 쉽게 갖지 못하는 희망을 끝내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이상 기후를 모른 척하고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며 자기 안으로만 숨어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두렵고 섬뜩한 일 아닐까.
그가 내민 손이 또 다른 힘든 이의 손을 붙잡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그 장면.
어쩌면 그곳이 천국일지 모른다.

책을 덮으며📔

"차라리 내가 말이야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고
누군가의 천국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천국이었을까.
내 말과 행동은 누군가에게
떳떳한 천국이었을까.
지금 우리에게 나태주 시인의 말이 필요한 이유는 잊혀져 가는 천국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천사가 되어 사흘 동안 슬피 울던 이의 등을 쓸어준다.
나흘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울다가 웃으며 말한다.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다시 앞을 보니 이곳도 천국이었네.”

끝나지 않는 건 이상기후뿐만이 아닌 이상기후를 포착하지 못하고, 포착했지만 외면하는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는 일 조차 힘겨운 일처럼 느껴지는 요즘.
우리는 작은 손 하나 내미는 일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날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만 인간의 세상
허겁지겁 서두르고 아웅다웅 다투고
넘어졌다가는 일어서기도 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세상
날마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만 보통의 사람들
너나없이 서툴고 잘하는 일 많지 않고
자기만 오로지 챙기는 이기적인 천사도 악마도 아닌 사람들
하지만 말이야, 잠시 잠깐
발을 멈추고 돌아보면
금방 떠나온 그곳이 천국 아니었을까?
고대 헤어진 그 사람 또한
나에게는 천사 아니었을까?
정말로 그렇다면 말이야
지난날에서만 천국을 찾고
헤어진 사람에게서만 천사를 만나지 말고
앞으로 오는 세상에서도 천국을 찾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천사를 만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내가 말이야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고
누군가의 천국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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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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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나는 왜 이 바다를 읽게 되었을까.
책은 방대했고, 흑해만큼이나 깊었다.
그건 마치 깊이 잠들어있는 역사적 잔해물, 흠집 없이 보존된 난파선 같았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사실은 늘 바다를 두려워했다.
수영은 전혀 못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는 길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찰스 킹의 '흑해'를 읽으며 나는 그 두려움이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흑해는 오랫동안 세계의 가장자리에 놓인 바다였고, 사람들은 늘 이 바다 앞에서 상상과 공포, 욕망을 동시에 키워왔다.

"흑해는 '문명' 세계와 '야만' 세계가 만나는 곳이라기보다는,
그리스인과 후에는 로마인을 비롯한 외부인들이 오랫동안 해안 주변에서
다양한 생활 양식과 관습이 소용돌이치듯 뒤섞이던 과정에 스며들고,
그 일부가 된 곳이었다."

책을 펼치며📖

이 책은 하나의 바다에 관한 역사서지만, 읽는 동안 나는 자꾸만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경계를 만들어왔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흑해는 세계의 끝이었고, 그래서 신화가 태어났다.
그러나 신화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곧 상업이 들어오고, 식민지가 세워지고, 제국의 이름이 바다 위를 떠다닌다.
흑해의 이름이 시대마다 달라졌다는 사실은, 이 바다가 얼마나 자주 타인의 언어로 불려왔는지를 말해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다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설명이었다.
산소가 닿는 얕은 층에만 생명이 있고, 그 아래는 거의 죽음에 가까운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다는 이야기.
나는 이 구조가 이 바다를 둘러싼 역사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지만, 모두가 기록으로 남지는 않았다.
어떤 삶은 수면 위에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졌고, 어떤 것은 심해처럼 말없이 가라앉았다.

책 속에서 흑해는 언제나 이동의 장소였다.
스키타이인들, 로마인들, 비잔틴과 이탈리아 상인들, 그리고 오늘날의 국가들까지.
누구도 이 바다에 완전히 머물지 못했고, 모두가 무언가를 남기거나 가져가려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바다가 인간을 거부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흑해는 늘 사람을 받아들였지만, 결코 그들의 소유가 되지는 않았다.

오늘의 흑해는 다시 정치의 언어로 불리고 있다.
석유와 가스, 파이프라인, 국경.
그러나 이 책을 덮고 나면 그런 단어들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천 년 동안 반복되어온 떠남과 침묵이다.
흑해는 늘 경계에 있었고, 경계는 언제나 불안과 매혹을 동시에 품는다.

​책을 덮으며📔

'흑해'를 읽으며 나는 바다를 이해하게 되었다기보다, 내가 왜 바다 앞에서 멈춰 서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시간이며, 장소가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세계를 건너온 것인지, 아니면 늘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며 이름만 바꾸어 불러왔던 것은 아닌지. 흑해는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오래도록 남긴다.

바다의 과학조차 민족 개념의 유호글 피할 수 없었다.
한때 오스만의 멍에에서 새로 해방된 민족의 유산으로 찬양받았던 바다는
이제 소련 팽창주의의 탐욕으로부터 지켜야 할 보물로 선전됐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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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서툰 사람들 -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고선규 지음 / 아몬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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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개하는 책📚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아오키 신문’의 장편소설 ‘납관일기’를 원작으로 한 ‘굿바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은 첼리스트를 그만두고 죽은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납관일을 하게 되며 많은 이별을 마주한다.
그 속에서 마주했어야 하는 이별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별이 교차한다.
나는 죽은 이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납관사인 주인공 뒷편에는 죽은 이의 가족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히 그가 조심히 떠나기를 바랐다.
그들의 표정에는 슬픔이 물처럼 흐르고 있었고、주체할 수 없어 서로를 껴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애도하는 과정을 거쳐 떠난 이를 보내주었다.
‘굿바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때에야 이들의 슬픔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가 전국 자살로 사별한 이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결과를 열 편의 영화를 들어 설명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주고, 고통받는 이들을 따스하게 쓰다듬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비밀 보장의 원칙을 준수하면서 저자는 슬픔이 서툴지 않도록 친절하게 설명했다.

여러분 모두가 본 영화도 있을 것이며, 접하지 못한 영화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모두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어떤 이는 어떠한 감정도 새어나오지 않으며,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한 이들도 있다.
우리 모두가 상실을 겪는 것은 필연적인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 상실 앞에서 우리는 눈물을 참을 필요가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마치 수돗물을 받아놓은 대야에 물이 넘치고, 냄비에 물이 끓어 올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저 흘려보내면 된다고.
그저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위해 애도하자고.

책을 펼치며📖

우리는 슬픔을 적대시한다.
혹은 두려워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심연이라고 생각하거나, 쉴새 없이 흐르는 물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슬픔이 서툴다는 건 우리가 슬픔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건 아닐까.
저자는 영화 속 주인공을 병원 면담자로 내세워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을 진행하는 내내 그들은 천천히 종이에 잉크가 스며들고、발끝에서 머리까지 물이 차오르듯 슬픔을 마주한다.

우리는 슬픔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나는 슬픔이 괴물같다거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슬픔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를 구성하는 몇 안되는 소중한 감정이 내게 말한다.
나를 하찮게 생각하지 말고, 보고 싶은대로 보지 말고 제대로 응시해라고.
그럼에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슬픔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때가 있다.
그때는 어린아이처럼 울거나, 누가 쳐다볼까 두려워 울음을 참는다.
우리는 언제든지 슬픔에 서툰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슬픔이 서툰 우리가 상실을 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알려주기에 이 책을 추천드린다.

책을 덮으며📔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입니다.
사별자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실의 슬픔이 억눌리지 않고 관계 속에서 철철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늘 한 지점을 의식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것이 얼마나 조용하고, 얼마나 고독한지를 쓰고 싶었다.
이 욕망은 결국 나를 향해 되돌아왔고, 끝까지 마주하기에는 지나치게 힘이 들었다.
볼에 남은 흉터는 오래전의 기억이다.
그때의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떤 행동을 반복했다.
몸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 생각보다 앞서는 본능.
피가 시간의 단위처럼 떨어질 때서야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평소 슬픔을 말로 옮기지 못하는 아버지는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실까.
어머니는 아마 울음을 멈추지 못하겠지.
그 상상을 하는 순간,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았다.
그날 나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남아 있었다.
반대로도 생각해봤을 때 난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존재에게 우리가 마음을 쏟았다면、
관계에서 주고받았던 감정과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를 잃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요。
스스로 애도할 권리를 박탈하지 말자고요。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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