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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나 -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영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1월
평점 :
한 정신병원에 철석같이 스스로를 옥수수라 믿는 남자가 있었다..
"닭들이 자꾸 나를 쫓아다닙니다.무서워 죽겠습니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글쎄,저야 알지요.하지만 닭들이 그걸 모르잖아요?"-p12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 시작부분이다.이 작품은 시작만큼이나 끝부분도 강렬하면서 수수께끼 같다.김숨의 <국수>는 너무 섬세해서 읽는 내내 숨을 쉬기조차 힘들다.조해진의 <유리>는 내 심장이 유리에 긁힌듯 아프다.박재가 된 천재 이상 선생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개>가 그 당시에 신선하며 파격적이었던 것처럼 이상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 역시 저마다 독특함이 묻어난다.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는 특히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우화적이면서도 몽상적이고,그러면서도 풍자한듯한 느낌이 강하다.이 작품은 단편 속에 강렬한 반전의 묘미가 몇 차례 주어진다.장편적인 기법을 단편 속에 옮겨 놓은 듯한 단편답지 않은 단편의 묘미가 환상적이다.대립구도도 재미있고,꿈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하다.이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다음 글로 넘기지 못할 만큼 강한 여운을 남긴다.강렬한 시작과 강렬한 끝.그래서 시작과 끝은 연결된다.
김숨의 <국수>는 너무 섬세해서 읽는 내내 숨을 쉬기 힘들다.국수 한 그릇에 몇 가닥의 국수가락이 담겨 있었던가? 국수 가닥보다 더 긴 이야기를 풀어 놓는 작가의 묘사력이 돋보인다.국수 한 그릇에 새어머니와 나 사이의 세월의 무게만큼 쌓인 미움,사랑,갈등을 이렇게 아프게 풀어놓을 수도 있었구나! 읽는 내내 가슴을 헤집어 놓는다.국수가락처럼,엉킨 국수가 풀어지듯,국수를 만드는 과정에 맞춰 밀도높게 아픔을 풀어 놓을 수도 있다니 놀랍다.
당신이 반죽 속에 몰래 섞어 넣어 그렇게 꾹 눌러야만 했던 것.....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p237
당신이 양푼 속에서 소금물을 부어가며 치대고 치댄 것.....그것은 혹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시간이 아니었을까요.-242
한 시간이면 될까요.숙성을 위한 시간으로 말이에요.안달복달 들볶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동안,반죽은 차져지고 부드러워질 것입니다-p246
김경욱의 <스프레이>는 <위험한 독서>라는 대작으로 알게된 까닭인지 전작보다는 그 기대치가 떨어진다.하지만,막힘없는 흐름과 추리소설과 같은 묘미가 뛰어나다.우연한 실수가 큰 사건으로 번지기까지의 전 과정이 흥미진진하다.그러나 뭔가 진지함이 빠진듯 범죄가 놀이처럼 느껴져서 소설에서는 공허함이 묻어난다.어쩌면 그것조차 작가의 구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해진의 <유리>는 상처뿐인 현대인의 아픔을 잘 그려냈다.더 이상 신분 상승이 불가능해진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시간 강사의 나날은 유리 조각 위를 걷듯 아슬아슬하고,유리에 긁힌듯 상처뿐이다.현대인은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만 주변을 맴돌뿐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그런데 유리 도시에 사는 그녀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견디지 못한채 일탈을 감행한다.
이상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이상 문학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는(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상이다.당선작 모두 참신하고 기발하며 나름대로 독창적이다.하지만 부족한 부분도 보인다.<옥수수와 나>에서는 너무 유희적으로 끌고간 나머지 스토리에 진지함이 부족하고 <국수>는 너무 셈세하고 밀도가 높아 출렁이는 파도없는 바다같다.당선된 작품들에 공통분모가 있다면 그것은 현대인들의 삶을 아프게 드러냈다는 점이다.불안과 우울,스트레스가 높은 도시인들의 생활.그래서 현대인들은 때론 옥수수와 닭으로,닭들과 양계장으로,유리도시로 묘사된다.그래서 작가들에게는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한 부분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