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출판 - 북페뎀 09
강주헌 외 21명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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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번역서란 외국 서적 한 권을 한명의 번역자가 그 한 권의 책을 한국어로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그 책을 번역하는 사람들을 번역가라고 하는데 번역가는 그렇게만 일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만 번역하고 책으로 엮어내는 것 말고도 한 가지 주제 하에 그것들에 대한 외국의 다수의 책들을 모아 발췌하고 정리하여 다시 그 자료들이 맞는지 틀렸는지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다시 조사하고 검토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내는 것도 번역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일종의 기획까지 곁들인 기획번역가라고 할까.

내가 알고 있는 그 번역가는 프랑스어와 영어, 일어 등을 두루 섭렵해서 그와 관계되는 서적들을 번역하곤 했는데 가끔 그 분의 말을 듣다보면 아직 우리나라 출판계의 번역시장은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내용들도 자주 듣곤 했었다. 처음이야 다른 분야에 관계되는 사람들도 자신의 직업에 대해 안정감을 찾기가 참 어렵지만 번역가들도 비슷해 어느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미 어느 자리를 꿰차고 있는 번역가들의 뒤에 가려 자신이 번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의 신인 번역자의 위험감수를 막기 위해 이름 있는 번역가를 앞세워 출판된 책에 올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예 번역가의 이름을 빼기도 하는 등 각 출판사의 편집인의 역량에 따라 그들의 이름의 등락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어이없는 보수를 받기도 하는 등 번역역사가 제법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리고 번역 일을 하다보니 번역 책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특정 전문분야인 가령 미술 등 예술에 관계된 번역된 책을 접하다 보면 유럽 권 예술가이며 프랑스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서들을 종종 보다보면 그들이 말하는 의미와 내용의 전달이 왜곡되어 심지어 지역 명까지 미세한 디테일을 요하는 번역이 틀리게 번역되어 버젓이 우리나라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과 함께 그 이유는 대부분 유럽권의 프랑스어 또는 이태리어로 발행된 유럽서적들이 영미 권에서 번역되거나 일본어로 번역되어 그것을 다시 우리나라 번역가들이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다보니 말이 왜곡되어 독자들은 틀린 정보들을 읽게 되는 어이없는 현실도 있다고 한다.

이런 저런 번역에 관련된 정보들을 조금씩 듣다 보니 번역이라는 것이 단지 언어만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지식과 문화들을 동시에 알고 있어야 하고 언어의 다양성과 문화적 특징까지 두루 섭렵해야 정말 프로다운 프로라 할 수 있는 번역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북페뎀 09-번역출판』은 번역과 유럽의 발전이라는 글을 쓴 오철우, 최경옥, 쓰노 가이타로, 백원근, 고명섭, 김정민, 김선희, 임희근, 강주헌, 이종인, 권남희, 김선희, 조영학, 김진준, 안진환, 황보석, 박중서, 이규원, 이재형, 정창, 사이에 임희근, 양억관, 햇살과나무꾼 김은경 등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유명번역가들의 번역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과 그들만의 번역 철학과 노하우를 담고 있다.

특히 고명섭 한겨레 기자의 '번역 출판의 질은 왜 개선되지 않는가'라는 글이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았는데 '번역은 머리나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는 고전적 명제와 함께 테크닉이 중요하지만 테크닉만으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 번역이라 여기서도 원문인 프랑스어 문장을 영어로 옮기면 벌써 거기에서 1차 왜곡이 일어나 다시 한국어로 옮기게 되면 2차 왜곡이 나타난다는 문제점과 심도 있는 저작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가 번역하는 것이 정도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또한 좋은 번역을 이루는 성분은 '외국어 실력 30%, 해당 분야 지식 30%, 그리고 한국어 실력 40%'라고 이야기 하며 한국의 김석희씨가 그 좋은 예로 그의 번역문이 잘 읽히는 이유가 그가 한국어로 능숙하게 글을 쓰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사실 가장 좋은 것은 해당 분야의 1급 번역자가 충실한 번역을 하고, 또 해당 분야에 경험과 지식이 있는 편집자가 꼼꼼하게 교정교열을 봄으로써 번역의 밀도를 최대치로 높이는 것이 가장 좋은 번역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한국은 한 해에 발행된 책 가운데 번역서 비율이 29%로 세계 1위에 해당한다고 한다.(뉴욕타임스 주말판 북리뷰 2007 본문 53p)
이것은 체코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번역서 발행국가로 꼽힌 것인데 국내 도서 전체 발행종수 중 번역서 비중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5%대였으나, 번역출판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10년 사이 30%에 육박할 만큼 대폭 늘어났다.

이렇게 번역출판이 늘어난 이유는 외국에서 상품성이나 판매량이 검증되어 최소한의 수익성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고 신속한 검토와 저렴한 번역을 거쳐 빠른 시간 내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 투자금 회수가 빠르며 저작권료 부담이 국내 저자에게 지불하는 인세나 원고료 보다 저렴한 경우도 많아 단기 승부수를 던지는 출판사나 자본력, 기획력이 취약한 중소형 출판사 비중이 높은 열악한 우리 출판 현실이 반영된 결과 중의 하나이다.

번역만으로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는 우리나라 구조적 현실은 번역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자체로 평가를 해주지 않는 병폐와 손가락에 병이 나도록 자판을 두드리며 금세공하듯 번역 일을 했지만 몇 부 팔리지도 않는 인문사회과학 번역에서 돈 벌이가 쉬운 어린이 책 같은 품은 덜 들고 수입은 더 나은 책으로 번역을 돌려 지식을 갉아 먹고 있고 그나마 있는 1급 번역자마저도 번역의 중심부에서 내몰리고 있다.

번역서 강국이 곧 출판 강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번역시장은 다양한 언어와 전공의 번역자들이 더욱 풍성한 기획과 번역을 할 수 있게 되는 출판계 시장의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겠고 무엇보다 출판계 전체가 팔릴만한 번역서에 주목하는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국내 저자 발굴과 기획에 돌린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북페뎀09-번역출판』이 책은 그런 점에서 번역출판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번역을 공부하는 사람, 번역가 지망생, 출판계 내부 종사자들이 출판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고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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