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생의 반을 뚝딱 해 치우고 난 지금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애당초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잃어버린 것은 없을 것이고 그렇담 세상에 태어나 얻기만 했다는 결론?

하지만 사람들은 얻은 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모두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왜일까?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도대체 그 잃어버린 것이 어떤 것이기에.



내가 가진 것으로 평가받길 원하고 타인 속에서 나를 찾던 어리석은 시간이 있었다.


가벼워지기 위해, '나'를 만나기 위해 이제 오랜 여행을 떠나리라.

자기 안의 어린 예술가를 구하라!




작가 김영하.

소위말하는 잘 나가는 작가.

그는 한국종합예술학교의 나이 마흔의 젊은 교수였고 네 권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단편소설집을 낸 소설가이자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 진행자로 동시 다발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 재능 많은 작가이자 한 가정의 남편이었다. 말이면 말, 글이면 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재주를 가져 몇 가지 역할을 자유자재로 해 내느라 무진장 바빴던 그는 그렇게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가 그 시절의 삶은 참으로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모든 것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훌훌 다 털어버리고 당분간 지내기로 한 캐나다로 향하기 전 아내와 함께 시칠리아로 날아간다.

작가가 꿈꾸던 진정한 이탈리아를 다시 만나기 위해!




「나는 이제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쓸데없는 것들을 정말이지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잃지 않는 책들, 보지 않은 DVD들, 듣지 않는 CD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과 결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시칠리아!

그가 다시 찾아간 시칠리아에서의 첫발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사흘 내내 내리는 비로 로마에서 그들은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매야했고, 시칠리아로 떠나는 기차가 툭하면 잦은 파업과 그것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철도 역무원의 무책임한 무사태평 안일함에 하루하루를 연착해야 했으며, 결국 다른 경로로 가기 위해 탄 열차 또한 긴 여행시간과 시칠리아가 섬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게 한 여행경로 등으로 그들은 난해한 여행을 하고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리파리를 시작으로 작가의 시칠리아에서의 여행자의 여정은 시작된다.




단순한 관광이 아닌 삶의 체험을 현지인들과 같이 하는듯한 작가의 시칠리아에서의 여정은 길을 가다 현지인들과 마주치면 '본 조르노' 혹은 '차오'라고 인사부터 시작하여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사고 빵 가게에서 유명한 시칠리아 밀로 만든 값 싼 빵도 맛보며 직접 요리하고 그들과 다름없이 아침엔 일을 하고 점심 먹은 후엔 그들처럼 자고 때론 작열하는 태양을 아까워하며 빨래도 하며 5시가 넘으면 시장에 나가 장을 봐서 다시 저녁을 해 먹기도 하고 두 번밖엔 타보지 않은 스쿠터를 빌려 시칠리아 다른 곳을 곡예를 하듯 돌아보기도 하며 지내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의 현지인들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그들의 문화, 삶의 패턴, 의식주 등 모든 것이 낯설지만 낯선 것에서의 잠재적인 어떤 익숙함이라고할까!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의 작가는 시칠리아의 유적지부터 시작하여 신전, 메두사, 아케돌치 해변, 에리체, 메멘토 모리, 아그리젠토 등 구석구석을 꼼꼼히 찾아다니고 작가가 찍은 멋진 사진들과 함께 시칠리아에 대한 역사와 문화 그들의 삶에 대해 작가의 시선으로 꼼꼼히 기록하고 담아낸 여행에세이이다.

시칠리아에서 작가는 어릴 적부터 상상해온 이탈리아의 원형을 만났고, 신전과 극장, 뜨거운 햇살과 바다,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은 질그릇같은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의 신화와 전설을 만났다.

 
「하나의 문명이 사라지면 그 문명이 상상했던 것들까지도 함께 소멸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곳에 살았던 일군의 인간들이 자신을 닮은 어떤 존재들을 한때 진지하게 믿었다는 것이다. 현대의 우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듯......」



그곳에서 그는 어린 예술가를 마음속에 키우던 '김영하'를 만났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돌아보면 지난 시칠리아 여행에서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그 긴 여행에서 그 어떤 것도 흘리거나 도둑맞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 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다보니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의 비운이 떠올려졌다.

한 번도 바다 위를 구경해 보지 못한 인어공주가 자신의 15번째 생일에 물 밖을 구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바다구경을 나서는데 마침 바다 위를 항해 중이던 왕자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인어공주는 왕자의 곁에 있고 싶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는 대신 사람의 몸을 얻어 왕궁에 들어가서 시녀가 되지만 왕자는 벙어리인 인어공주가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낙심한 인어공주는 슬퍼하며 바닷속으로 몸을 던져 죽게 된다는.......


어찌보면 뜬금없는 얘기같지만 사회적인 명예, 풍요가 주는 안정과 안락함. 그것들은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마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팔아버리듯이 자신의 목소리를 '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톡톡한 댓가를 치러야 얻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져본 것이다.

물론 비하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것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뜨거운 가슴을 서서히 냉각시켜서 내 안의 뜨거운 열정을 앗아가버리는 무생물체적인 인간으로 변화해 가는 질식상태로 이끌어가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적인 성과이지만 결국 진정한 자신의 참 자아를 잃어버리게도 하는 함정이기도 한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날아가고 싶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아닌.... 나를 모르는 낯선 곳으로...

「내 안의 어린 예술가를 만나기 위해」

 

지금 내 안에서 누군가가 끝없이 이렇게 외치고 있다면!

답은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끝으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 담고 싶은 글이 있어 남기려 한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힘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을 물질이 아니라 순수한 힘으로 보았다. 힘이 승하면 어른이 되고 힘이 완전히 사라지면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죽는 것이다. 힘은 좋은 공기와 물, 자연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강해지고 반대의 경우 약해진다. 권력자는 사람들로부터 힘을 많이 받는 사람이고 또 그 힘을 잘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있어 훌륭한 인간이란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많은 것이 잘 지나가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하나의 사상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한 권의 책이 되고 한 권의 음악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 이럴 때 나의 힘은 더욱 순수하고 강해진다. 모든 것이 막힌 것 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생성하게 될 때, 인간은 성숙하고 그 '힘'은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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