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뿔(웅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원제: J'IRAI CRACHER SUR VOS TOMBES)는 흑인이지만 혼혈 혈통으로 금발에 하얀 피부를 갖고 태어나 백인처럼 보이는 리 앤더슨이 그의 남동생이 백인 처녀와 사귀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오빠와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백인들에게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 사건으로 인해 그가 살던 도시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되어 형의 도움으로 클렘에게서 일자리 소개장을 받고 형을 이따금씩 만날 수 있도록 너무 멀지 않은 곳,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단서아래 남부 지역 깊숙이 자리 잡은 도시 벅튼으로 떠난다. 그러나 리 앤더슨은 동생의 죽음을 한시도 잊을 수 없어 동생을 죽인 자들(백인과 백인 사회)에게 복수하기로 결심을 다짐한다.




그가 얻은 일자리는 벅튼의 서점 관리인. 이것이 리 앤더슨의 새로운 일자리로 1달러와 클렘의 소개장 편지, 이게 그가 가진 전부이다.

그는 서점 인수자 한센의 도움으로 서점관리에 대한 이것저것 자세한 것들을 전수받고 집까지 어렵지 않게 그가 살던 곳으로 옮기게 되는 등 돈 없는 리 앤더슨에게 한센은 돈도 빌려 주고 먹는 것까지 배려 받는 친절한 대접을 받고 혼자 사는 그를 위해 어린 여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 드러그스토어가 있다는 것까지 안내? 받는다.




그가 운영하는 서점은 책들도 제법 잘 팔리고 장사도 잘 되어 2주가 지나기 시작하면서 그의 서점에서의 일상은 너무나 순조로워 따분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스물여섯의 리 앤더슨은 끝나가는 여름 끝자락의 화창한 어느 날 드러그스토어로 발길을 향하고 그곳에서 밀크셰이크를 마시고 있는 열일곱 살가량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둘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은밀한 장소에서 관계를 가지며 비린내 나는 축축한 발정기에 접어든 빌어먹을 원숭이 같은 생활을 한다.




물론 리 앤더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지만 흑인이라는 실체에 대해 그를 아는 주변인들은 금발 머리와 분홍빛이 도는 완벽한 백인의 모습을 한 그의 피부로 인해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음은 당연하다. 어깨가 유난히 축 쳐져 있는 것만 빼고 말이다.

이렇게 그는 상류층 백인 여자들을 짐승처럼 농락하며 그의 정체를 속이며 오직 한 가지, 복수를 하는 것, 그것도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의 복수를 다짐하며 복수의 대상 찾기를 계속하고 시험대상을 물색한다.




미국 스릴러 장르의 혼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1946년 프랑스에서 버넌 설리반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후 미국 작가가 쓴 소설을 보리스 비앙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처럼 출간되었다. 그러나 버넌 설리반은 보리스 비앙의 필명이었으며, 이 작품 역시 미국에서 출간된 적이 없었다.




보리스 비앙의 어떻게 보면 날조처럼 보일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옮긴이는 책 끝머리의 옮긴이의 말에 설명하고 있다.
서브텍스트(문학작품의 텍스트 배후의 의미)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비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버넌 설리반의 이름으로 이 작품을 쓰고 자기 자신은 번역자로 소개하였다고.


보리스 비앙은 자신이 쓰는 것, 그것을 쓰는 방식에 관해 극도로 진지한 작가였다.

"이 작품은 문학적 견지에서 볼 때 거의 관심을 못 끌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 호평을 하건 악평을 하건 간에 상관없이 그들이 그것에 관해 말한다는 그 사실 자체로서 이 책은 문학적 성공을 거두는 것" 보리스 비앙은 나중에 이같이 주장한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출간된 당시의 전후 프랑스는 뉴 아메리칸 문학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시기로 이 소설은 1947년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후 내려올 줄 몰랐고 많은 문학적 논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크게 성공한 작품이었다.

보리스 비앙의 작품들은 프랑스 누아르 소설로 누아르 소설의 특징인 범죄와 폭력, 섹스에 대해 비정하고도 냉혹하게 도덕적 판단을 배제한 사건의 해결보다 행동에 중점을 둔 어떤 전후설명도 없는 간결한 문체로 거친 분위기를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에 가본 적이 없는 백인이자 프랑스인이 미국을 배경으로 쓴 이 스릴러 소설은 당시의 스릴러-탐정물 문학 장르의 법칙에 충실하게 인종차별(증오, 불관용, 차별)과 섹스(유혹, 성교, 강간), 죽음(린치, 사디즘, 고어) 같은 주제로 계급에 대한 편견, 소외의 문제를 부각시키며 맹렬히 공격함으로써, 그 어떤 미국 작가보다도 더 신랄하고 철저하게 소설로 형상화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심리적인 묘사가 거의 없는 신랄하고 거친 문체의 소설로 대화를 통한 스토리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 앤더슨의 백인여성에 대한 강박적인 살인의 결심과 그의 낮고 굵은 목소리의 블루스 음색은 어둡고 갑갑함으로 감정을 배제한 스토리 전개는 빠른 속도로 이어져(그렇다고 사건 묘사가 손에 땀을 쥐게 흥분될 만큼 빠른 구성은 아니다.) 독자들이 상상할 여지를 내주지 않는다. 그만큼 감성적으로 팍팍하며 에로틱한 장면묘사 또한 "라틴적이고 에로틱한 전통"이라고 저자의 설명처럼 에로틱함의 은은한 끈적임과 흥분도 없이 짜릿한 텍스트로만 전달될 뿐이다.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스릴러 전개로 뭔가의 메시지를 기대하며 읽는다면 실망할 소설이지만 스릴러-탐정 소설의 초기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는다면 요즘 나오는 스릴러-탐정 소설과 1940년대 후반의 프랑스 특유의 누아르 소설의 색다른 느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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