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사랑한 예술
아미르 D. 악젤 지음, 이충호 옮김 / 알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서양철학사를 보면 그리스에서 유래한 헬레니즘과 유태민족의 히브리즘에서 유래한 기독교와 만나 중세철학이 형성된다.

그리고 중세를 지나 모더니티 즉 과학의 발달, 자본주의 도래, 종교개혁 등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근대철학으로 가게 된다. 근대철학은 인식론적으로 말한다면 인간 중심주의, 주체주의로 20세기 중엽부터 근대철학의 인간중심주의가 다양한 비판을 받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레비-스트로스로 대변되는 구조주의가 등장하여 인간 주체를 중심으로 두고 사유하는 전통에 대해 논박을 하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근대철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중심주의가 현대의 여러 폐단들을 낳아 자연파괴, 즉 환경파괴와 인간주의 파괴를 낳아 제국주의, 인간 소외 등의 폐단으로 이어진다고 비판을 하며 주체주의를 넘어선 사유를 말한다.



난해한 수학원리와 과학적 개념을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쓰기로 유명한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과학저술가로 알려진 아미르D.악젤이 쓰고 현재 과학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충호씨가 옮긴 2001년 제20회 한국과학기술도서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한 『수학이 사랑한 예술』은 현대 수학의 역사와 구조주의 운동 역사에 대해 쓴 책이다.




레비-스트로스로 대변되는 구조주의개념은 레비-스트로스로 또한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의 영향으로 처음에는 언어학에서 출발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어학에서 얻은 이 개념이 인류학에 적용시키려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친족 간의 결혼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의 바탕에 깔린 구조가 수학적 분석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수학적 군의 개념으로 그에게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이 부르바키의 수학자들, 특히 뉴욕에서 만난 앙드레 베유였다.




구조주의 운동은 인문사회과학까지 수학이나 공학의 특징인 형식적-체계적 사유를 도입하였다.

구조주의 운동이 학문의 영역을 넘어 현대예술과 문학에까지 확장되어 위대한 정신적 창조의 바탕에 수학이라는 또 하나의 기둥이 있었으며 구조주의 운동은 언어학이 발견한 구조의 개념을 수학으로 형식화하여 다른 분과 학문에 적용시킨 알파벳 코드와 숫자 코드의 하이브리드 전략의 선물이었다.(진중권 문화평론가)




20세기 후반의 정신세계를 각인한 구조주의 운동이 실은 한 사람의 천재 수학자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 천재는 니콜라 부르바키!

폴데비아 과학아카데미 소속으로 20세기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수학자.

하지만 이 위대한 수학자는 실존인물이 아닌 가상의 창조된 인물이었다. 바로 '니콜라 부르바키'는 20세기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닌 당시 프랑스의 대표적인 수학자들이 대부분 모여 만든 저자 집단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1935년 열두 명의 회원으로 시작된 활동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수학자들의 모임인 니콜라 부르바키는 가명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수학자의 이름이며, 그리고 후원자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한 인물이라고 믿도록 하기 위한 시도였다.




부르바키에서 창립 회원으로 활동한 이들로는 앙리 카르탕(Henri Cartan), 클라우드 셰발리(Claude Chevalley), 장 쿨롱(Jean Coublom), 장 델사르트(Jean Delsarte), 장 듀도네(Jean Dieudonné), Charles Ehresmann, René de Possel, Szolem Mandelbrojt 및 앙드레 베유 등이지만, 여기에 포함된 인물이 전부인지는 확실치 않다. 부르바키는 1934년 말 쯤에 이미 예비 모임을 갖기도 했는데, Jean Leay와 Paul Dubreil은 예비 모임에는 참석했으나 정식 출범 이전에 탈퇴했다. 그 외에 나중에 참가한 이들 중에서 중요한 인물로는 로랑 슈와르츠, 장피에르 세르,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새뮤얼 아일렌버그(Samuel Eilenberg), 서지 랭 및 로저 고드망(Roger Godement)이 있다.




부르바키의 회원들은 1935년부터 현대 수학을 집합론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저술 활동을 시작하여 「니콜라 부르바키」라는 이름으로 책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들의 저술은 최대한의 엄밀성과 일반성을 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폴데비아 과학아카데미 소속으로 1930년대 세계 무대에 등장해 수학에 엄밀성을 도입하고 수학적 증명에 관한 현대적 관념을 창안하여 현대 수학의 기초를 열어 놓은 천재 수학자 니콜라 부르바키. 현대 수학자들 가운데 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영향력이 수학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으로 그의 이론은 구조주의 같은 인문사회과학의 사상운동은 물론이고 '울리포'를 비롯한 현대 예술의 실험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수학이 사랑한 예술』은 부르바키라는 위대한 천재 수학자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 속에 얽힌 흥미진진한 비화를 미스터리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며 부르바키의 죽음과 유산을 끝으로 구조주의 운동이 학문의 영역을 넘어 현대예술과 문학에까지 미친 큰 영향력과 그렇게 풍부한 결과를 낳는 위대한 정신적 창조의 바탕에 수학이 있었음을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책 중간 중간에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그림과 조르주 브라크, 마르셀 뒤샹 등의 그림을 실어 기존의 미술사조에서 탈피하여 회화가 과거와 단절했음을 보여주며 단순한 시각적 요소와 구조, 그리고 그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 강조한 그림들과 미술을 해체하여 새로운 분야로 재탄생시킨 현대미술 두 거장들의 수학적, 철학적 개념이 깔린 미술 분야의 혁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조각, 연극, 건축, 음악 등에서도 큰 혁명이 일어나 인류학, 언어학, 심리학, 문학, 철학으로 이어지고 20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구조주의 운동. 니콜라스 부르바키는 이 개념들을 수학에 도입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방법을 창안함으로써 20세기에 일어난 지각 변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즉 그 변화는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면서 시작된 것이다.




구조주의 몰락.

부르바키는 수학을 공리화하고 구조를 강조하고 부르바키가 등장하기 전 수십 년 동안 느슨하던 분야에 엄밀성을 강조한다는 목표를 모두 이루었다. 하지만 부르바키는 카테고리 이론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자신들의 이론 체계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쳐버리고 회원들 간의 분열과 새로운 방향으로 뜻을 모으지 못해 그로텐디크는 결국 부르바키를 떠나고 1960년대 말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던 부르바키는 수학이 등장하기 전보다 훨씬 더 엄밀하고 정확한 방법으로 공리적이고 구조적인 정확성의 영역으로 진입하여 스스로 제 갈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자 부르바키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부르바키가 혁신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르바키가 몰락하게 된 원인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쇠락하게 되었고 민족주의와 민족주의적 감정이 사그라들게 되면서 민족주의적 수학자 단체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었고 국경을 넘어선 협력이 자리 잡아 수학은 차츰 국제적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로텐디크는 부르바키 정신과 부르바키가 수학에서 추구했던 이상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신조 때문에 수학을 떠난 그는 세상과 멀어져갔다. 자신의 정치적 행동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로텐디크는 세상을 등지는 쪽으로 그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수학이 사랑한 예술』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로 예술 중심으로 수학적 개념을 비례개념과 함께 자세하게 접목시킨 책일 것이라 생각하고 책과 마주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방향이 조금 달라 다소 혼란스러웠었다. 하지만 학문의 영역을 넘어 현대의 예술과 문학에까지 확장되어 풍부한 결과를 낳은 위대한 정신적 창조의 바탕에 수학이 깔려 있고 응용수학으로도 수학 자체의 발전과 새로운 분야들을 낳았다는 것을 『수학이 사랑한 예술』에선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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