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끝까지 분하다. 너 하나 때문에 내가 죽는다는 것이 제일 분하다.”

이 글귀를 읽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악물고 피 터지는 입술 사이에 각혈하듯 토해낸 절규의 유서.

이 유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유서로 인해 사랑하던 애인에게 피해가 갈까봐 전전긍긍하고 외롭게 홀로 죽었던 박금례의 유서이다.

너무 사랑하면 상대에 대한 원망 또한 더 커져 타인이 들었을 때 귀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통렬하게 뱉어낸 상대에 대한 원망섞인 욕설이 더 신랄하고 듣기 거북한 법이다. 그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에 대한 원망은 더 커지니까...

그 마음을 변심한 사람이 어찌알까?




하지만 박금례가 그토록 사랑했던 소중했던 남자 정홍교 그 비겁한 남자는 1934년 3월 3일 이별의 마지막 날 밤, 때늦은 봄눈이 내리는 토요일 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박금례가 어색한 침묵을 깨며 떠난다는 말과 함께 부탁한 10원을 마련해 달라는 말에 “흥. 그거였군.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이왕이면 더 달라 그러지. 당신 가치가 고작 10원밖에 안 되오?”라는 냉정한 말과 함께 “이걸 어쩌나. 이 몸은 이제 겨우 실업자 신세를 면한 처지라 10원조차 마련해줄 수 없으니.”라며 한 때 절절히 사랑했던 애인 박금례의 얼굴을 빨갛게 수치심에 물들게 하곤 울컥 솟아오르는 분노에 어쩔 줄 몰라 당황하다가 결국 종로방향으로 몸을 틀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도망치듯 달리는 연인에게 마지막 종지부를 만정이 다 달아나게 찍는다. “잘 가오. 톈진에 가거들랑 좋은 사람 만나고.”라고.

“하긴, 떠나는 마당에 험한 꼴이라도 봐야 미련이 안 남지.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몰라.”

그녀는 결국 떠난다던 말을 거짓으로 돌린 채 양잿물을 먹고 자살하고 만다.

바보같이 “미스터 정... 미스터 정...” 이라고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순수함을 거의 잃어가고 있는 요즘엔 삼류소설 소재거리에도 거론되지 않을 만큼 완전 구시대적 사랑이야기.

그래서인지 실제 일어났던 사건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박금례의 처절한 죽음과 유언에 남긴 말이 오히려 참신하게 느껴진다.

 

『경성자살클럽』!

난 이 책을 읽으며 조선 근대의 자살사건을 짧은 단편의 글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 중심으로 쓰여진 경성시대의 신파조이야기를 자살이야기를 담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난 묘하게도 이 책을 읽기 전 한참을 고심하고 머리에 쥐날만큼 힘들게 읽었던 책에서 비로소 해방된 듯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물론 이 책을 기획한 저자와 출판사, 사건 주인공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말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뭔가 형이상학적인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를 좌불안석 행여 놓칠까봐 총알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흐름의 마지막 끝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스트레스가 이 책으로 옷고름 스르르 풀리듯(결혼도 안한 처자가 무슨 막말인지 모르겠으나) 온몸의 긴장이 편안하게 풀리는 느낌으로 다가온 책인 것이다.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뜨겁고 처절한 사랑이, 그들의 삶을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그들은 자신의 삶에, 자신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뜨거운 욕망과 갈망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을 것이라고 느껴지는... 본문 글에서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것일까? 아니면 좀 전에 읽었던 것은 현실 속의 나의 삶과 계속적인 연장선이기 때문이고 『경성자살클럽』에 나온 사건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 이야기로 이제는 나와는 상관없는 격동의 변화가 컸던 조선의 근대사 시대에 시대의 상황적 혼란과 변화 속에서 벌어진 것들이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어도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 그저 타고난 시대적 불운으로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방관자적 입장이기 때문일까. 그들의 자살은 오히려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마지막 종착지로 선택한 안타까운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의 사랑만큼 삶만큼 열정적이고 순수하지 않은 가슴이 뜨겁지 않은 밍밍한 내 삶의 방식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다.

말로는 온갖 근사한 말로 내 삶을 치장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경성자살클럽』은 10편의 자살들은 근대 조선의 암울하고 억눌렸던 시대에 좀처럼 흔치 않았을 것 같은 삼각연애 살인사건, 청상과부 신여성 자살사건, 윤심덕, 김우진 현해탄 정사 미스터리, 박금례 순정애사, 평양 명기 강명화 정사사건, 고학생 집단 따돌림 자살사건, 유전입학 무전낙제, 입시 지옥의 자살사건, 폭탄 투척 사건 등 가정문제, 애정문제, 심지어 동성애, 집단 따돌림 즉 요즘 말하는 속칭 왕따로 인한 자살까지 총 망라된 파격적인 실화들 로 엮여진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한 인물들도 모두 실존인물들이요, 기록된 사연들 또한 실화이다. 책장 사이사이에 보여 지는 기사화된 신문이미지들은 이 책에 나온 사건들이 결코 허구가 아닌 실제사건임을 재삼 증명하고 있다. 신문에 레이아웃 된 그림과 사진 그 시대의 문체들로 디자인된 신문 기사들은 신여성을 대표하는 단발의 permanent 한 머리와 그래픽 적으로 선과 문양을 넣어 명조 계 폰트들과 잘 어울려 전엔 무심코 봤던 이미지가 새삼 다시 신선하게 다가온다. 당시엔 일종의 가십거리 스캔들 기사였을텐데 마치 오래전 나왔던 ‘선데이 서울’(간혹 어릴 때 엄마 따라 미장원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흘끔흘끔 훔쳐봤었는데 지금도 나올까 새삼 궁금해진다)처럼 흥미롭다.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았던 그 시대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한계점으로 겉으론 개방과 변화의 물결이 흘렀지만 불행하게도 자신의 삶은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에 불과할 뿐.

 

어찌보면 시대적으로 불운한 희생양 같기도 한 그들의 자살사건.


‘그래도 자살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아름다운 자살은 없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근대 조선에는 자살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고 한다. 신문 사회면에 자살 소식이 실리지 않은 날이 드물었을 만큼 많았다니 그만큼 사연도, 사건의 유형도 다양했으리라.

저자는 철철 넘쳐나는 많고 많은 자료들로 자료부족으로 인한 고통은 적었지만 도무지 글이 풀리지 않아 착잡한 가슴을 다스리기 어려웠다는데, 피를 말리며 몇 주씩 씨름해서 자살한 영혼의 애절한 사연 하나하나를 완성하며 몸 저리고 아파하며 썼다는 『경성자살클럽』.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장난으로라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말자는, 착하게 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살아서라도 시련을 헤쳐 나갈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절대 자살은 안 된다.

 

윤심덕이 토월회의 화형 여배우로 있을 때 상대역이었던 이백수에게 종종 무심코 던진 이 한 마디가 처절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악마 같다. 나는 언젠가 한 놈은 죽이고 죽는다. 그러나 그 죽이는 놈은 아주 천진스럽고 죄 없는 지순한 남자다.......”

정말 ‘자살’이라는 유령이 배회하는 듯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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