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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그녀의 이름은 피오나 캐서린 엘리자베스 라이언(핀).
모델같은 몸매와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완벽한 외모를 가진 아가씨 핀.
메이슨-고드윈 경매회사에서 고객 자문역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살고있던 미국에서 도망치듯 나와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고 메이슨-고드윈 경매회사에 취직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메이슨-고드윈에서의 '고객 자문역'은 우아하고 교양있는 일하고는 거리가 먼 커피와 차, 비스킷 따위를 열심히 나르는 심부름꾼이기도 하다가 경매가 있는 날 밤에는 검정색 짧은 칵테일 드레스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경매에 참여할 가능성 높은 고객들의 입찰가와 주량, 주머니 사정을 미리 알아내는 임무를 하는 등 교양과 우아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자신의 일엔 똑부러질만큼 정확한 지식과 비굴하지 않은 위풍당당한 아가씨.
그의 이름은 윌리엄 필그림(빌리)! 더 정확한 공식 이름은 윌리엄 윌모트 필그림 경.
텁수룩한 옅은 금발에 햇볕에 탄 갸름한 얼굴. 몸매는 마치 올림픽 수영선수 같은 아찔할 정도로 잘 생겼다
너덜너덜한 차림에 꾀죄죄한 갈색 종이로 포장한 꾸러미를 겨드랑이에 끼고 예약도 없이 메이슨-고드윈 경매회사에 불쑥 찾아와 얀 스텐 그림이라고 우기며 그림을 즉석감정해 달라고 우겼지만 핀에게서 일언지하에 가짜그림으로 판정받고 돌아간다.
결국 그 일로 핀은 니스 남작이자 펜데니스 백작이며 커노우 영국 공작신분인 윌리엄 윌모트 필그림 경을 정중하게 맞이하지 않고 얀 스텐의 진품여부를 감정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 그림을 맘대로 감정하고 가짜로 판정하며 돌려보냈다며 신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깍듯한 예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는 철저히 무시당하며 사장 로니에게서 해고당하고 만다.
어라? 이 책 수상해.
역시 책의 첫 장에 나온 문구처럼 소설 첫 부분부터 어릴 때 읽었던 할리퀸 문고 시리즈처럼 칙릿Chick-lit냄새가 확 풍기는 『렘브란트의 유령』은 그래서 읽는 초장부터 맥이 빠졌었다. 에잇! 그렇고 그런 소설 아냐? 그런데 왜 하필이면 소재를 렘브란트를 설정한거야? 라며 투덜거리면서 렘브란트 그림을 둘러싼 얽히고설킨 팩션소설인줄 기대했다가 소설 초장부터 지루하게 풀어나가는 전개가 나에게 칙릿의 가벼움으로 집중도가 확 떨어져버리니 처음엔 소설을 읽기가 싫어져 칙릿의 공식에 맞춰진 듯한 소설 줄거리라는 실망감에 속도도 나가지 않고 자주 바뀌는 상황설정에 집중하여 읽지 않으면 줄거리 전개가 이어지지 않아 집중을 요하는 소설이어서 책을 읽는 마음가짐부터 잡고 읽어야 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그 둘의 관계는 그 상태에서 더 진전되지 않아 이제껏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하지만 어쨌든 초반엔 지루했지만 점점 가면서 뭐라고 규정짓기 어려운? 추적의 비밀을 쫓는 묘미와 렘브란트 그림에 대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하나씩 툭툭 던져 깜짝깜짝 놀래키는 등 읽는 재미를 쏠쏠히 느끼게 하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게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생부가 아니고 아버지의 제자가 핀의 친부이고 거대 해운회사 상속자라는 충격적인 말을 전해듣고 또 막대한 유산을 남겨 렘브란트 그림 한 점과 암스테르담의 대저택, 동남아 보르네오섬에 떠있는 낡은 배 한 척이 필그림과 핀의 공동유산들이고 그 유산들은 보름 안에 유산을 찾아내야 상속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은 유산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모험, 또 그 안에서 얻는 진실 등으로 갖은 고생을 하는 핀과 빌리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이 소설이 나에게 준 소득은 주인공들의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또 동남아시아로 정신없이 오가는 모험담으로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지만 저자의 박식한 지식은 '렘브란트는 공방을 하나 가지고 있었고, 12명의 도제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림에 렘브란트라는 서명을 할 권리가 있어 그것은 마치 고무도장 찍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렘브란트는 자신이 붓질 한 번 하지 않은 그림에 자기 이름을 남긴 화가'라는 것 등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내가 렘브란트에 기대가 너무 컸었나? '자신이 붓질 한 번 하지 않은 그림에 자기 이름을 남긴 화가'라는 이 말은 조금 충격적이다. 그래서 또 그림을 둘러싼 위작의 논위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또 하게 되고...
이 책의 저자 폴 크리스토퍼 교수는 미국 아이비리그의 한 대학에서 근세사를 가르치는 교수이며 미술품 절도와 위조,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 각지에서 행해진 미술품 강탈과 관련된 여러 책을 썼으며 세계 곳곳에서 이 같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유엔과 뉴욕 경찰 미술관련 부서에서 자문역을 맡고 있기도 한 폴 크리스토퍼는 그는 소설을 쓸 때만 필명을 쓴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런 모험가득한 책을 쓰다니....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녹아져 있는 『렘브란트의 유령』.
이 책은 점에서도 다분히 매력적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