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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
마르틴 우르반 지음, 김현정 옮김 / 도솔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믿음이란 무엇인가? 새삼 사전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정의되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사전을 찾아봤다.
위키백과사전에 의하면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철학,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념이라 하며, 종교에서는 신앙, 신심, 신앙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아는 단어이지만 사전에 풀이되어진 글을 읽노라니 웬지 규정되어진 확실함(?)때문인지 막연히 아는 것과 근거있는 자료와 데이터로 인한 앎은 많은 차이점이 있구나 하고 새삼 생각해 본다.
이렇게 우리는 근거있는 확실함이 보장되어진 것을 좋아하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그 점에 관해 인간의 지적인 부분과 영성부분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인간의 심리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부족한 정보를 바탕으로 확실한 해석을 찾아내는 능력을 발달시켜왔다고 한다.
고대 암흑시대부터 쌓여온 그 '대답들'은 우리 무의식으로 스며들어 환경이 바뀌어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라고 저널리스트이면서 과학에세이스트인 마르틴 우르반은 말하고 있는데 그는 이 책을 통해 종교와 정치 비판서, 고대부터 인간이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무의식적인 요인에 대해 다양한 데이터를 근거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할까?』라는 제목을 읽으며 처음엔 내가 평소에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 달라 의아해 했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엔 사람들은 원래 의심과 두려움이 많아 처음부터 담박에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생소한 것들을 내 눈앞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여부에 의해서 또는 익숙한 것으로 의해 그것을 믿고 안 믿기 때문에 제목이 원래는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의심부터 시작할까?』라는 제목을 붙여야 하는 것 아니야?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훑어보면서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한 분석과 인간의 영성활동에 대한 분석과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 심리학과 행동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풀어놓아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 수긍이 갔다.
책의 내용 중 흥미로웠던 부분을 소개하자면 무엇이든 잘 믿는 사람과 잘 믿지 않는 사람을 두고 실험해 보았더니, 잘 믿는 사람은 ‘거짓된 것’도 강한 암시에 따라 실제로 믿는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영혼의 경험(접신의 경험)은 간질 환자의 상황으로 연결시켜 ‘뇌의 측두엽에서 발작이 일어나는 간질 환자들은 흔히 ‘영적 환상’에 대해 진술하는데 이런 현상은 측두엽은 해부학적으로 기능적으로 해마, 편도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그런 현상이 나온다고 한다.’ 또 명상을 하는 승려나 기독교 수사들의 경우를 보면,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는 뇌의 한 부분이 거의 작동하지 않아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감마파라는 고주파가 많이 나타나게 되어 이런 점들을 들어 라마찬드란은, ‘종교적인 경험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저자는 최고의 과학자들은 이미 신을 믿지 않는다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세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본다면 좀 더 현명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운이 좋은 사람은 세상을 좀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규정짓는데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과연 보통사람들이 ‘운’에 대해 예상치 못한 어떤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에도 과학자처럼 근거 있는 분석과 해석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인가보다. 어쩌면 철학자 마티아스 융의 말처럼 ‘방관자’적인 사고방식일까?
어쩌면 우리는 무한한 자유를 꿈꾸지만 저자의 말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종교라는 안정감과 소속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속박 속에 우리 자신을 내버려두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