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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우광훈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서양 미술가들 중에 빛을 가장 잘 이해한 화가 베르메르. 그의 그림은 일상적인 듯 하지만 그의 생애는 수수께끼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베르메르는 렘브란트와 동 시대를 살았던 화가로 렘브란트만큼 인정을 받진 못했지만 활동할 당시에는 인정받은 화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그의 명성은 점점 잊혀져 갔고 그의 작품들은 다른 화가의 이름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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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철저히 농락한 위작 화가’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라고 책소개가 되어 있지만 난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세상의 돈과 타협하여 팔아버린 잃어버린 영혼, 불쌍한 베르베르라고 말하고 싶다.
“가브리엘이 재능있는 화가로는 성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잘 팔리는 화가는 결코 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구나. 그는 분명 범인과 다른 재능을 갖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유연하지 못해. 대중의 취향을 맞추지 못하는 화가의 작품은 결코 팔리지 않지.”
“아니, 그에게서 재능을 발견했던 것은 사실이야. 사물의 형태를 원형 그대로 재현해 내는 천재.”
그에 대한 화상의 평가는 불행하게도 그러했다.
만약 베르메르가 가브리엘 이벤스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베르메르보다 더 베르메르답다는 베르메르의 예술혼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감쪽 같은 위작을 대면했을 때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대면하게 될까? 불쾌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통렬히 비난하고 죄질을 묻고 처벌로 생각을 마감할까? 아니면 대중 앞에선 그럴지라도 자신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 아니면 자신의 작품이 위작될 정도로 자신의 인기가 자랑스러울까?
또 가브리엘 이벤스는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작하고 있을 때 그의 진정한 속내는 어떤 것이었을까? 어쩌면 순수 창작은 아니지만 그 위작품이 또 다른 창작이라고 합리화시키며 그렸을까? 아니면 단지 당대의 명성 없는 화가가 그리는 풍속화 등 사실적인 구상화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자연의 복사 화가라는 철저한 무시됨에 분노하여 베르메르를 훌쩍 뛰어넘는 작품으로 세상의 편견과 아집에 조롱하고 세상에 분노하고 성공하기만 간절히 갈망하는 그림을 그렸을까?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 순수한 열망 하나만으로 인한 간절한 몸부림이었을까?
그는 진정한 화가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영혼을 작품에 쏟아부어 세상과 소통하려는 순수한 화가가 아닌 세상에 인정받고 싶어 세상과의 타협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렸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비록 작업에 대한 열망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돈 때문에, 자신의 처지에 시대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비열함을 세상은 용서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달란트를 그는 세상과 타협했다.
그는 단지 화상의 농간에 의한 작가의 명성, 그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변덕스런 단세포 같은 존재(?)인 대중의 수족이요 꼭두각시가 된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인간 가브리엘 이벤스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의 행위가 안타까울 뿐이다.
연민이 생길 정도로 안타까운 그의 삶이 현대도 별다를바없어 창작의 의미에 물음표를 달 뿐이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중섭, 박수근의 위작 사건!
그분들의 순수한 영혼의 산물인 작품들이 세인들에 의해 평가되고 위작품을 진정성을 가지고 바라보기 보다 단지 세상의 이슈로만 전달되어지는 듯한 모습에 과연 순수 창작의 진정한 기준점이 무엇인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중섭, 박수근의 위작사건과 성격은 다르지만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은 있었지만, 자신만의 작품세계가 없어 비참한 인생을 살다간 가브리엘 이벤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야. 현명하게 판단하길 바라” 라는 진심 어린 충고를 그는 어리석은 선택으로 대답해 버린 그는 예술의 빛과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