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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흰색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했다. 색이 아니면서도 모든 색을 품는 색…. . 자신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그 위에 세상의 모든 현란한 색을 받아들이는 색이었다. (1권 220쪽)
신윤복을 색깔로 표현하자면 어쩌면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웃는 것인지 슬퍼하는 것인지… 아름다운지 고혹적인지… 알 수가 없구나.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아름답다! 아름다울 뿐이다….”
김홍도는 미인도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흰색과 신윤복의 미인도를 표현한 김홍도의 말이 오버랩 되면서 신윤복을 그렇게 가슴에 그렸다.
알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답고 닿을 수 없기에, 건널 수 없기에 더욱 더 애타고 꿈꾸게 되는 신윤복!
그녀는 여인임을 감추고 낳아주신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양아버지 신한평과 함께 가문의 명성과 도화서의 화원의 거래를 한다. 그래서 여자임을 비밀로 하고 도화서를 들어가게 된다.
“그림이 뛰어난 것은 그리는 자의 사랑이 깃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 눈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평생을 감추며 살아왔지만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던 바로 저 자신의 모습입니다. 저는 평생을 이 여인과 사랑했으며 앞으로도 여인된 저를 사랑하며 살 것입니다.”
김홍도의 마음을 한없이 끌어당겼던 힘을 지닌 여인 신윤복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김홍도의 곁을 떠나갔다.
바람의 화원! 바람처럼 소리없고, 바람처럼 서늘하며, 바람처럼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던 그리고 보이지 않는바람을 찾아 떠났던 신윤복…
이 책을 읽는 내내 설레이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기 전부터 그들의 천재적 기질에 탐복했고 그림의 당당함에서 오는 도도함과 당돌함, 도발적이기까지 한 신윤복의 그림, 행동과 언행은 긴 장편소설을 엮어갈 만한 충분한 소재거리였다.
동시대에 활동한 화가지만 화풍은 전혀 달랐던 김홍도와 신윤복. 단원이 서민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면, 혜원은 양반들의 위선적인 면을 주로 그렸고 단원이 주로 남자들을 그린 반면, 혜원은 여자들을 그렸다. 그리고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 단순히 갈색 바탕의 배색에 힘 있는 먹선 위주로 그렸다면 혜원 신윤복은 세련되고 섬세한 필치로 화려한 채색화를 그렸다. 당시 채색화는 도화서 양식엔 어긋난 것이었다.
이렇듯 신윤복은 도화양식을 거부하고 기존의 모든 것을 뒤집어버릴 만큼 뛰어난 화가였다.
또 그림에 담긴 숨은 뜻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숨은 그림찾기가 연상될 정도로 아주 흥미를 이끈다.
그림은 보이는데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고 들었다. 선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를 굳이 부여하고 작가의 출생, 삶 등을 거론하고 끼어맞추다 보면 제대로 그림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고 하지만 역시 사람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인간 신윤복, 김홍도 두 사람의 그림은 초등학교 때부터 익히 배워서 익숙하지만 저자의 엄청난 설정이 나를 당황스럽게도 한 책이다. 진실일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이 책을 덮은 순간 머리속을 스쳐갔고 네이버를 검색하게 한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비교 평가.. 그림에 대한 대화 들. 다른 점에 대한 설명과 또 베일에 둘러싸인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신윤복의 신분…
신윤복의 여자라는 설정, 사랑.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 김홍도의 신윤복에 대한 애틋함과 질투, 그리움, 신윤복의 사라지고 난 후의 베일에 싸인 뒷이야기…
이정명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쓴걸까?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 얼굴에 관한 아주 길고도 비밀스런 이야기를. 가르치려고 했으나 가르치지 못한 얼굴, 뛰어넘으려 했으나 결국 뛰어넘지 못했던 얼굴, 쓰다듬고 싶었으나 쓰다듬지 못한 얼굴, 잊으려 했으나 잊지 못한 얼굴……. 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원과 동시대에 살았으면서도 역사 속에서 완벽하게 사라져버린 신윤복. 도화서 화원으로 속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도화서에서 쫒겨났다는 한 화가에 대한 호기심과 연민이 작가로 하여금 그를 완벽하게 재현시키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