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안단테 - 여행이라기보다는 유목에 가까운
윤정욱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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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몽골을 여행한 적이 없다. 주변 국가에 가 본 적도 없지만 궁금한 적도 없었다. 미디어에서 본 몽골인들의 생활은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나 초원에 지어진 게르에서 자연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은 도시에 익숙한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여행한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지내 보는 것이니까. 편안한 여행을 원하는 나는 유목은 할 생각이 없다.

강력하게 몽골 여행은 반대하는 내가 왜 윤정욱 작가의 <몽골, 안단테> 에세이를 집어 들었을까. 그건 가지 않을 여행에 대한 환상에 가깝다. 아예 안 갈 생각이니 편안하게 다녀온 사람의 여행기를 읽으며 방구석 여행을 하는 것이다. 가지 않을 여행지, 갈 수 없는 여행지, 가지 못한 여행지에 대한 아쉬움을 채워주는 작업이 바로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 아니겠는가.

저자 윤정욱 작가는 연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제2회 카카오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만큼 글이 부드럽고 문학적이며 동그랗다. 순둥순둥한 몽골인을 닮았다. 몽골 여행자를 위한 정보는 하나도 없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는 글이다. 한없이 펼쳐진 사막을 지나는 동안 차에서 일어난 소소한 에피소드를 적고, 갑자기 고장 난 버스가 수리될 동안 사막의 광활함을 찍고, 조용하고 까만 밤이 지나는 동안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즐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어라, 몽골 여행도 해볼 만한데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사막을 찾아 몽골로 떠났다. 어린 왕자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으로 말이다. 그러나 몽골은 사막뿐 아니라 초원, 호수도 있었다. 어딜 가든 크고 넓고 광활했다. 저자는 그 광활함을 보며 몽골을 부유하는 여행에 곧 적응했고, 매번 놀라운 모습의 노을을 보며 황홀해했다.

한국살이는 참 바쁘다.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살려면 나도 바쁘게 살아야 한다. 바빠야 잘 사는 것 같다.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빠듯하게 보내는 삶을 살다 보면 느리게 느리게 사는 몽골 여행이 어색하다. 하루에 몇 시간씩 버스를 타야 하는 여행, 인터넷이 안되어 핸드폰도 할 수 없는 여행에서 도시인들은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곧 알게 된다. 우리는 핸드폰 없이도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고,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고, 유유자적 여유로운 삶에 금방 익숙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바쁘게 사는 일상에서도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몽골, 안단테>는 나에게 하루의 여유를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숨을 고르고 느리게 읽고 느리게 생각하는 시간을 주었다. 일상의 여유가 필요한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나처럼 느긋해질 수 있는 자유를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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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 뛰고 싶다면 브라질 - 여행과 일상에서 마주한 브라질 소도시의 빛나는 순간들
전소영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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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삼바, 카니발, 축구, 치안. 대부분 이 정도 떠오를 것이다. 어쩌면 슈퍼모델 지젤 번천도. 뜨겁고 정열적인 나라, 브라질은 널리 알려진 키워드 외에 자세한 정보는 떠오르지 않는다. 비행기로 30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나라를, 치안도 위험하다며 말리는 나라를 선뜻 찾아갈 용기와 시간과 돈이 없던 나는 브라질을 잘 몰랐다.

쉽게 갈 수 없는 나라라서 잊고 살았는데, 각종 매체에서 브라질 여행기가 들려왔다. 특히 트래블러 아르헨티나는 남미 국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는 꼭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다. TV로 봤던 아르헨티나의 자연 경관이 너무 멋져서 브라질이라는 나라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담출판사에서 나온 전소영의 <다시 가슴 뛰고 싶다면 브라질> 도서를 펼쳤다. 아르헨티나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경치를 선물할지, 브라질에 대한 선입견이 바뀔지, 브라질을 탐험하는 기분은 어떨지 기대하면서.

저자 전소영은 남편을 따라 5살짜리 여아와 갓 돌 지난 남아를 데리고 브라질로 향했다. 언어도 안 통하는 낯선 땅 브라질에 적응하려고 사람을 만나다 보니 생각보다 친절하고 따뜻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 덕분에 브라질이 좋아지고 브라질의 매력을 알게 되고 브라질에 푹 빠지게 되었단다. 3년 반 동안 브라질에 거주하면서 브라질의 34개 소도시를 여행하고 블로그에 올린 글이 <다시 가슴 뛰고 싶다면 브라질>이란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3년 반이란 시간은 육아하고 남편 뒷바라지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브라질에서 받은 사랑을 그냥 흘려보내기 싫어 시간을 쪼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느낀 점을 기록하며 고마움을 남겼다. 저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다녔던지, 34개 소도시를 여행하고 쓴 글에는 브라질에서 찾은 34가지 매력이 듬뿍 묻어있다. '브라질에 뭐, 있나?'라며 편하게 책을 펼쳤다가 저자가 소개하는 브라질 소도시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브라질은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다양함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흑인들의 피와 땀에 기대어 농장주는 부유해졌고, 도시는 화려하게 번성했다. 살바도르의 번영에 그들의 아픔이 서렸고, 아픔을 리듬으로 달랬다. 그렇게 이곳에서 삼바가 만들어졌고, 훗날 카니발이 완성되었다.

<다시 가슴 뛰고 싶다면 브라질> p.71


화려한 카니발과 흥겨운 삼바의 이면에 슬픈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슬픈 역사도 문화로 바꾸어 나라에 큰 영향을 준 이들이 바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브라질의 첫 번째 수도 '살바도르'에서 진짜 브라질을 보게 된다. 브라질이 가장 찬란했던 시절 빛나던 모습과 반짝거림을 위해 착취당한 흑인 노예들의 아픔을.


불안한 치안 때문에 브라질을 경험할 기회를 포기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브라질은 보고, 또 봐도 늘 새롭고 신기한 나라다.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자연환경과 식생활, 사람들이 성향마저도 우리와는 참 많이 다르다. 게다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땅을 가진 나라여서 지역마다 생활 모습과 문화가 매우 다르다.

<다시 가슴 뛰고 싶다면 브라질> p.303


브라질에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야외 미술관도 있고, 금을 채굴했던 광산도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동물원과 독특한 모양의 성당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커피와 싸고 맛있는 고기, 간식으로 딱인 빵들 그리고 당도 높은 과일이 가득하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한 이 나라 브라질은 봐도 봐도 매력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브라질 사람들이 여유롭고 화끈하고 긍정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브라질에 축구, 삼바, 카니발만 있고 치안이 불안해서 여행할 수 없다는 선입견을 내려놓았다. 방구석에서 브라질의 여러 도시들을 돌며 내가 몰랐던 브라질을 알게 되니, 브라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브라질에 가겠냐고 물어본다면 선뜻 그 기회를 잡으리라.

브라질을 잘 모르시는 분,

저처럼 브라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으셨던 분,

브라질 여행을 계획 중인데 어느 도시를 가야 할지 모르겠는 분,

브라질을 그리워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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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넌 도일 - 셜록 홈스를 창조한 추리소설의 선구자 클래식 클라우드 20
이다혜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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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국내 최대 인문기행 프로젝트인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20번째 도서, <코넌 도일 x 이다혜> 도서가 출간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는 저자의 설명을 들으며 거장이 살았던 곳을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나도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몇 권 읽었다. 잘 모르던 거장을 알아가는 즐거움, 이미 알던 거장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읽는 재미로 한 권씩 섭렵하고 있다. 거장을 만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레지만 이번에 나온 20번째 도서만큼 기다렸던 적은 없다. 탐정소설의 기반을 다졌으며, 경찰 조사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쳤고, 어린이들에게 탐정의 꿈을 심어준 작가이자 셜록 홈즈를 만든 코넌 도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이라니.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도일에게는 뭔가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가득 숨어있을 것 같지 않은가.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탐정이 되고 싶었던 에세이스트 이다혜 작가는 거장 코넌 도일 보다 셜록 홈즈를 먼저 찾아갔다. 코넌 도일이 쓴 추리 소설 속 캐릭터 셜록 홈즈는 살았던 집도 있고 누구나 알아차릴 외모의 동상도 있고 범인을 잡으러 돌아다녔던 길도 있으며 죽었다는 장소도 있다. 어떤 소설 속 캐릭터가 이보다 생생할까. 이다혜 작가를 따라 베이커스트리트 거리를 거닐다 보면 나도 홈즈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코넌 도일이 의사로서 가진 지식을 소설에 쏟아부었다는 점, 포경선 선원과 전쟁 참전 그리고 정치계 입문 등 다양한 경험이 있다는 점, 과학적 수사를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냈으나 심령술에 빠져 말년을 보냈다는 점은 셜록 홈즈만 아는 이들에게 몰랐던 정보이다. 코넌 도일의 다이내믹한 삶은 집필 활동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거장을 찾아가는 여행인만큼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도 넉넉히 들어있다. <코넌 도일 x 이다혜>편에는 코넌 도일의 흔적이 남겨진 영국과 스위스의 멋진 여행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셜록 홈즈, 코넌 도일, 영국, 스위스 그리고 이다혜 작가의 에세이 중 하나라도 좋아한다면 이 책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코넌 도일을 알게 됨으로 셜록 홈즈 소설이 더 흥미로워지는 경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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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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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일가족이 사망한 사건이 뉴스에 나왔다. 자세한 경위는 밝히지 않았던 해당 사건의 상세 내용이 뒤늦게 인터넷에 떠돌았다. 한 경찰관이 회원제 비공개 커뮤니티에 사건 현장 및 아버지 전과 등 수사 내용을 유포한 것이었다. 뉴스는 최초 유포자인 현직 경찰관의 부주의에 대해 보도했으나 댓글에는 전과자인 아버지를 욕하는 글이 난무했다. 세상은 아버지가 왜 전과자가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범죄 기록을 들먹이며 고인을 두 번 죽이고 있었다. 사회는 전과자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낙인찍힌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살아야 할까. 이 답이 없는 질문에 고민하던 찰나, 범죄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여 살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이상적인 답을 보여주는 소설 <플라주>를 만났다.


플라주는 월세 5만 엔, 청소는 교대로, 세 끼 식사를 제공하는 완벽한 셰어하우스이다. 방문이 없고 전과자만 입주 가능하다는 조건만 빼면. 그래도 실수로 각성제를 복용하고 감옥에 갔다가 집행유예로 풀린 다카오에게는 다른 선택은 없다. 게다가 입주자 중 미인들도 있으니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고. 물론 입주자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플라주에 들어왔는지 입주 전에는 모르지만. 다카오는 셰어하우스에 적응하고 사회 복귀를 이룰 수 있을까. 그는 다른 입주자들의 전과를 알게 되고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과연 셰어하우스 플라주는 전과자나 범죄자의 완충지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세상이 좋아지길 원한다. 그래서 범죄 뉴스에 범죄자가 바뀌길 바라며 범죄자를 비난하고 꾸짖는 댓글을 단다. 차갑게 매도하고 거부하며 선을 긋는 일이 범죄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이라는 걸 애써 모르는 척하면서 말이다. 사회는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교화시켰다며 세상에 다시 내보내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변화 가능성에 보다 범죄 기록이 더 커 보이니까.


결국 범죄자는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다. 세상이 처벌받은 그들을 차별 없이 수용해 주었다면, 다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기회를 주었다면, 열심히 사는 모습을 인정해 주었다면 하는 후회만 남을 뿐.


이런 후회가 줄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혼다 데쓰야 작가는 전과자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만든다. 그곳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제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소설로 담았다. 각성제 사용, 교통사고, 상해, 살인 등 듣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정작 공포와 잔인함은 보이지 않고 따스함만 가득하다. 물론 장르 소설 독자를 놀라게 하는 기막힌 반전도 빠지지 않는다.


범죄자가 주인공인 장르 소설은 어둡고 무서운 줄 알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전과를 가진 사람은 범죄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전과자는 전과자일 뿐 죄를 뒤집어썼다는 발상은 하지 못했다. 이 책의 초반을 읽을 땐 작가가 깔아둔 복선이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하여 범죄 사건이 발생할까 봐 읽는 내내 쫄깃했고, 유쾌한 결말에 웃음이 지어졌으며,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박수가 나왔다.


이전에는 잔혹한 소설로 독자들에게 인상을 남겼다는 혼다 데쓰야 작가,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


"여기가 다카오 군의 발판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해. 이곳을 발판 삼아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면 그걸로 됐어. .... 그래. 잘 풀리지 않을 때 오히려 멈춰 서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 멈춰 서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힘드니까. 몸을 움직이다 보면 분명히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를 거야."

p.134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사람을 달라 보이게 한다. 얼굴도 몸도 목소리도 동작도 웃는 얼굴도 눈물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는데 근본부터 인간이 달라 보인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고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아니, 인간이 가진 말이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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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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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아주 가정적이며 성실하고 친절한 남자이며 바위 같은 남자이다. 아내 집안의 유전병이 아들에게 나타났을 때나, 아내가 임신하자 병이 유전될지도 모른다며 지우려 했을 때나, 아내가 결혼 전 자기 집안에 내려오는 병에 대해 말했을 때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이름은 미야모토 다쿠미. 다쿠미는 아들의 병세가 심각해지자 아내에게 이십 년 전에 아들 도키오를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병실에 버젓이 누워있는 아들을 그것도 태어나기도 전에 만났다니 가능한 일인가.


시간을 거슬러 아들이 찾아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는 다쿠미의 성격, 행동과 전혀 딴판인 한 남자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제멋대로에 기분파이며 쉽게 일자리를 때려치우곤 했다. 어느 날 그를 잘 아는 것 같은 청년 도키오가 그에게 다가간다. 도키오는 어째서 그를 잘 아는 것일까 싶은데, 이 남자가 바로 도키오의 아빠, 즉 젊은 시절의 미야모토 다쿠미였다.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젊은 다쿠미와 아빠 다쿠미는 다르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는데 다른 사람 아닐까 하고 포기할만한데 도키오는 다쿠미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여자친구에게 상냥하게 대하라고 조언하고 반듯하게 살라고 권하며 친모를 찾아가라고 압박한다. 다쿠미는 도키오의 조언을 무시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쓰인다.


수수께끼 같은 청년 도키오가 다쿠미의 일상에 스며들 즈음 여자친구 지즈루가 갑자기 사라진다. 변하지 않는 다쿠미에게 실망한 지즈루는 편지까지 남기고 떠났지만 다쿠미는 그녀의 변심을 믿지 않는다. 이상한 남자들이 지즈루의 행방을 요구하자 지즈루가 걱정되어 찾으러 나선다. 다쿠미가 친모를 만나 변하길 바라는 도키오는 다쿠미를 친모에게 데려가고자 따라간다.


다쿠미는 지즈루를 찾아 떠난 이유를 듣게 될까. 도키오는 왜 다쿠미가 친모를 만나길 바라는 걸까. 친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다쿠미가 과연 친모를 찾아가게 될까. 천방지축으로 살았던 과거를 청산하고 착실한 다쿠미로 완벽 변신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 답은 아들 도키오와 사라진 여자친구를 찾아가는 여정을 읽어보면 알게 되리라.


"앞으로도 형은 여러 사람을 좋아하게 될 텐데, 그건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잖아."

도키오가 말했다.

p.383

아이는 부모의 격려를 받고 자란다. 부모는 자녀의 응원에 힘을 낸다. 망나니였던 사람도 자녀에게는 좋은 사람이길 원한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담배도 끊고 나쁜 습관도 고친다.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자녀 때문에 달라지는 걸까.


이 책은 미래로부터 온 아들이 아버지를 변하게 하는 소설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장성한 아들이 젊은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설정부터 흥미로운데, 철부지 아버지를 사람 만드는 과정은 더욱 유쾌하고 인간미가 넘친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렇게 케미가 좋을 수 있을까 싶어 놀랍다. 내게 도키오와 같은 능력이 있어서 과거의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진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가장 즐겁게 써 내려간 소설이라며 다쿠미와 도키오의 달콤살벌한 여행, 변하는 다쿠미를 볼 수 있는 감동적인 여행, 미래의 아들과 가까워지는 놀라운 여행, 그 여행 속으로 초대한다. 그 초대에 응하여 23살 아버지와 19살 아들의 기적 같은 시간 여행을 함께 즐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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