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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믿지?
송순진 외 지음 / 폴앤니나 / 2020년 11월
평점 :
언니들의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엄마이며,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누나이거나 동생이었다. 한 명의 여성이라면 하기 힘든 일, 헤쳐나가기 어려운 문제를 '언니'가 있기에 이겨나간다. 그 모습에서 나를 보고 나의 엄마를 보고 내 주위의 여성들을 보았다. 나를 일으키고 끌어당겨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던 나의 여성연대, 언니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언니 믿지?>는 여덟 명의 여성 작가가 '여성'과 '언니'라는 테마로 쓴 단편소설을 엮어낸 소설집이다. 여덟 명의 여성 작가들이 살면서 여성에게 느낀 유대감을 적어내려갔다. 이야기는 거침없다. 현실을 제대로 담았다. 여성들의 힘겨운 삶의 현장을 말이다.
8개의 단편선 중 제일 와닿았던 이야기는 '우리들의 방콕 모임'과 '언니네 빨래방'이었다.
'우리들의 방콕 모임'라는 손자를 돌보던 엄마가 팔을 다쳐 주인공 여성의 집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갑자기 엄마랑 같이 살게 되면서 살림은 편해졌지만 사소하게 부딪히는 일도 발생한다. 따로 살기에 숨길 수 있었던 초라한 모습, 힘든 일이 같이 살면서 드러나고 사소한 일로 폭발한다. 엄마랑 살게 된 이야기가 내 마음에 꽂힌 이유는 엄마가 생각나서이다. 엄마는 일찍 일어나시고 삼시 세끼를 챙겨줄 의무를 가지신 분이시고 가족 눈치를 보시고 나의 살림살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바꿔놓으신다. 딸네 집에 와서도 굳이 손수 밥을 차려주시고 쉬지 않으시고 계속 뭔가를 하시려는 분, 고맙고 감사하지만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며 안 맞는 부분도 있다. 나의 이중적인 감정은 늘 엄마한테 들켜서 엄마는 매번 "나이 들면 부모가 자식이랑 같이 못 살아. 너희가 살던 습관이 있고 우리가 사는 방식이 다른데 어찌 같이 사니?"라고 말씀하신다. 엄마랑 같이 살고 싶은데 엄마랑 부딪히는 부분 때문에 같이 살기 힘들다는 엄마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할 일이 생긴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한 소설이 '우리들의 방콕 모임'이었다.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 생기겠지만 더 친해지고 더 돈독해지는 시간이 되기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언니네 빨래방'은 유쾌하지 않은 사건을 유쾌하게 펼쳐낸 이야기이다. 경자 아줌마의 둘째는 늦게 결혼했다. 노처녀 딱지를 떼면서 한 결혼이지만 훤칠하고 문제없는 사윗감을 데려왔기에 동네에서 주선하라는 요청이 많았다. 오지랖이 넓은 경자 아줌마의 주선으로 몇 명이 결혼했다. 그러나 둘째도, 주선으로 결혼한 은주도 이혼했다. 은주는 내려와 빨래방을 열고, 주선한 죄(?)로 경자 아줌마는 은주네 빨래방을 돕는다. 경자 아줌마가 은주를 도와 단단한 배후를 만드는 모습에서 여성연대를 만드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은 출간 전에 기획자이자 소설가인 김서령 작가의 소개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덟 명의 여성 작가가 함께 주제를 정하고 스토리를 점검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밌어 보였다. 무엇보다 즐겁게 작업했다는 말에 꼭 읽고 싶었다. 가치관의 차이로 손을 들어주지 못한 소설도 있지만, 단단한 배후가 되어주는 언니들을 만나 든든해졌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