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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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일가족이 사망한 사건이 뉴스에 나왔다. 자세한 경위는 밝히지 않았던 해당 사건의 상세 내용이 뒤늦게 인터넷에 떠돌았다. 한 경찰관이 회원제 비공개 커뮤니티에 사건 현장 및 아버지 전과 등 수사 내용을 유포한 것이었다. 뉴스는 최초 유포자인 현직 경찰관의 부주의에 대해 보도했으나 댓글에는 전과자인 아버지를 욕하는 글이 난무했다. 세상은 아버지가 왜 전과자가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범죄 기록을 들먹이며 고인을 두 번 죽이고 있었다. 사회는 전과자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낙인찍힌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살아야 할까. 이 답이 없는 질문에 고민하던 찰나, 범죄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여 살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이상적인 답을 보여주는 소설 <플라주>를 만났다.


플라주는 월세 5만 엔, 청소는 교대로, 세 끼 식사를 제공하는 완벽한 셰어하우스이다. 방문이 없고 전과자만 입주 가능하다는 조건만 빼면. 그래도 실수로 각성제를 복용하고 감옥에 갔다가 집행유예로 풀린 다카오에게는 다른 선택은 없다. 게다가 입주자 중 미인들도 있으니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고. 물론 입주자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플라주에 들어왔는지 입주 전에는 모르지만. 다카오는 셰어하우스에 적응하고 사회 복귀를 이룰 수 있을까. 그는 다른 입주자들의 전과를 알게 되고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과연 셰어하우스 플라주는 전과자나 범죄자의 완충지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세상이 좋아지길 원한다. 그래서 범죄 뉴스에 범죄자가 바뀌길 바라며 범죄자를 비난하고 꾸짖는 댓글을 단다. 차갑게 매도하고 거부하며 선을 긋는 일이 범죄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이라는 걸 애써 모르는 척하면서 말이다. 사회는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교화시켰다며 세상에 다시 내보내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변화 가능성에 보다 범죄 기록이 더 커 보이니까.


결국 범죄자는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다. 세상이 처벌받은 그들을 차별 없이 수용해 주었다면, 다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기회를 주었다면, 열심히 사는 모습을 인정해 주었다면 하는 후회만 남을 뿐.


이런 후회가 줄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혼다 데쓰야 작가는 전과자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만든다. 그곳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제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소설로 담았다. 각성제 사용, 교통사고, 상해, 살인 등 듣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정작 공포와 잔인함은 보이지 않고 따스함만 가득하다. 물론 장르 소설 독자를 놀라게 하는 기막힌 반전도 빠지지 않는다.


범죄자가 주인공인 장르 소설은 어둡고 무서운 줄 알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전과를 가진 사람은 범죄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전과자는 전과자일 뿐 죄를 뒤집어썼다는 발상은 하지 못했다. 이 책의 초반을 읽을 땐 작가가 깔아둔 복선이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하여 범죄 사건이 발생할까 봐 읽는 내내 쫄깃했고, 유쾌한 결말에 웃음이 지어졌으며,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박수가 나왔다.


이전에는 잔혹한 소설로 독자들에게 인상을 남겼다는 혼다 데쓰야 작가,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


"여기가 다카오 군의 발판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해. 이곳을 발판 삼아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면 그걸로 됐어. .... 그래. 잘 풀리지 않을 때 오히려 멈춰 서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 멈춰 서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힘드니까. 몸을 움직이다 보면 분명히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를 거야."

p.134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사람을 달라 보이게 한다. 얼굴도 몸도 목소리도 동작도 웃는 얼굴도 눈물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는데 근본부터 인간이 달라 보인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고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아니, 인간이 가진 말이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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