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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ㅣ 국내 미출간 소설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현석 옮김 / 현인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갱부>와 <도련님>이 한 권에 합본되어 있다.
<갱부>는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관념의 흐름을 극단적으로 세밀하게 쪼개어 묘사하는 게, 어떤 부분에서는 단지 원고지 장 수를 늘리는 것 같았지만 - 소세키는 이 소설을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고 있었다 - 뒤로 가면서 소설적인 내러티브는 내팽개쳐 두는 것 같고 상황 전체가 뭐랄까 청춘의 암굴에 대한 기괴한 비유가 되어서 다가오는 듯한 이색적인 탁월함도 감지되었더랬다.
가라타니 고진 말대로, 이 분의 소설은 어떻게 매 작품이 다 스타일이 다를 수 있을까 하는 놀라운 점이 있다. 박현석 번역자의 치밀한 문장도 대개 마음에 들었지만, 일본 전통의 복식이나 광산 구조에 대한 명칭 등을 대부분 일본어 음차로 옮겨서 덜 와닿은 점이 있었다. 번역불가능성의 깐깐함을 고집하지 말고 그냥 의미상의 번역으로 바꿔서 옮겨도 될 법한 데도 제법 있었던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내 취향인지도 모른다.
8년 만에 다시 읽는 <도련님>이야말로 쿨하지 않은 귀여움의 최고봉이었다. 귀염이 절절 흘러넘쳐 손가락 사이로 새버려 도무지 잡을 수 없는 물체였다. 그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조직 생활의 부조리가 더 현실감 있게 와닿았다. 호모같이 살랑살랑 미풍이 부는 것같은 친절한 말을 해놓고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꼭 그런 놈이 있다. 뭐 조직에 크게 개입해본 적은 없는지라 피눈물이 날 정도는 경험 해본 적이 없다.
결국 고슴도치와 되련님은 교감과 그의 꼬붕을 사적으로 체벌(주먹찜질)한 대신 학교에 사표내고 나와버리는 걸로 일단락 짓는데, 8년 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이놈들(교감과 그의 꼬붕)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의뭉하게 잔대가리로 음모를 꾸며대며 끊임없이 남을 끌어내리는 걸 취미생활 하는 주제에, 지가 때를 잘못 만나 벽촌에 쳐 박힌 제갈량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되는 줄 알겠지?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고, 소세키 선생의 냉정함은 여기서도 보이는 구나 싶었다. 마흔 살이 되서 근엄한 콧수염을 달고 이런 귀여움이 넘쳐 흐르는 물건을 쓰고 있는 그 분의 자세를 상상하자 어딘가 음침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