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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의 제국 ㅣ 산책자 에쎄 시리즈 1
롤랑 바르트 지음, 김주환.한은경 옮김, 정화열 해설 / 산책자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향락 비평, 혹은 미식 비평의 오리지널한 첫 장이라고 할 만한 그것이다. 비평 대상이 되는 일본 풍경이라는 원본과의 정밀한 일치 따위는 첫 문장에서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다. '만일 내가 허구의 어떤 나라를 상상한다면, 나는 그 나라의 이름을 짓고 그것을 소설적 객체로 선언하고 새로운 가라바니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환상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 실제의 어떤 나라와도 타협하지 않게 할 것이다.' 사실상 그의 정신적 자서전이다.
역자는 첫 문장에서 명백하게 선언된 이런 뉴웨이브를 몰라보고, 책 뒤에 구닥다리같은 잔소리를 용감하게 지껄여놓은 덕분에, 전량회수하여 불싸지르지 않는 이상, 자기 얼굴에 다트를 던지는 기록으로 남는 바보가 되었다. ‘ ..이 책에서 바르트 역시 일본문화를 서구 문화에 철저히 대비되는 것으로만 파악하고 있으며 두 문화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는다. 일본 문화에 대한 무조건 숭배하는 듯한 태도도 역겹다‘고 까지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기호의 제국>은 일본여행기가 아니라,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시선은 끊임없이 미끄러져 차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애무 하듯 보고 있는 방법적 나르시즘의 괴서라고 보는 쪽에 한 표 던진다.
바르트는 일본 방문 직후 신문 기사에 실린, 흑백프린트된 자기 얼굴을 3인칭으로 지칭하며 이렇게 말한다. “ 이 서양연사는 자신이 <고베 신문>에 인용되면서 일본화된 것을 발견한다. 일본식 인쇄술 덕택으로 그의 눈은 실제보다 더 길어지고 동공은 검은 색으로 변했다.” 사실과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건 뭣도 아닌 개소리지만 만렙 선생께서만이 할 수 있는, 미소의 입꼬리조차 보여주지 않는 애교의 한 방인 것이다. 물론 양키들도 이런 번역될 수 없는 ’에스프리‘를 파악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아메리카화한 정화열씨의 발문을 봐도 역시 그렇다. 더욱이 양키 워너비들인 조국의 좌우파 스트레이트들이 녹여 삼켜서 양분으로 삼을 리 만무한다. 남조선에서 엔터테인먼트되고 재사용되려면 족히 20년은 더 걸릴 것이다. 아니 역사는, 적어도 문화사는 진보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