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지 1~10 + 전국지 가이드북 세트 - 전11권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일본 전국시대에 관한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고

읽은 것 중엔 시바 료타로, 야마오카 소하치, 사카구치 안고가 쓴 것들도 있다.

이 책 <전국지>가 그 중에서 질적으론 최하라고 할만 하다.

요점부터 말하면 이 물건은 인간성에 대한 통찰에서나

처세의 냉정한 조건을 살피기 보다는, 중일전쟁을 정당화하는 조잡한 프로파간다물이다.

허공에다 사다리놓기 식의 열변투성이. 이글을 쓰는 나는 

어설픈 민족 감정으로 일본에서 나온 것들을 죄다 서투르게 비하하는 

독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별 다른 선입관 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뒤늦게 저자나 책의 탄생과 관련한 배경들을

검색해봤다가 내린 결론이다.

 

 

1권은 서두부터 난데 없이 중국에서 시작된다.

도기 기술을 배우러 중국에 온 일본인 기술자와 중국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이가 있는데, 

아이의 아비가 되는 그 기술자가 마침 귀국하려고 하는 시점부터 묘사가 된다.

아이 엄마인 중국 여자는 고국에 남게 되고 아이만 남자가 데리고 떠난다.

그때 여자가 남편, 아이와 이별하면서 내놓는 말이라는 게 가관이다.

 


“오랫동안 당신의 생활태도나 하인들에게 대하는 것을 보면

일본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이나라에서는 당신의 나라 사람들을 ‘왜노’라거나 ‘동양귀’라고 하며

두려워하지만 그것은 남쪽 해안이나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왜구만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년 동안 당신의 마음 속에서 살아 본 결과,

당신은 아무리 중국식 옷을 입고 중국 여자와 중국식 집에 살아도 

피는 전혀 변하지 않는 일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인정과 의리가 강하고 무예도 뛰어나고 용맹하며,

게다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뒤에 가서는, 중국에서는 왕조가 자꾸 바뀌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데 비해

일본은 하나의 왕조가 교체없이 계속 내려왔고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서

탁월하다는 말까지 늘어놓는다.

바야흐로 일본 전국시대의 피비린내 나는 한복판을 동시대로 살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내놓는 것은 가히 정신분열적이다.

한 나라의 작가가 자기 나라의 처지를 어느 정도 싸고 돌 수 있음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사실과의 불일치라는 점에서 괴리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작품에서 냉철한 정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1권으로도 충분히 보여준다.

중국여자에게서 난 아이는 창작해넣은 가공의 것이 분명하다.

히데요시가 아직 동네 개구쟁이 ‘히요시’였을 시절,

이 기력약한 반중국인 꼬맹이를 다른 친구들의 놀림과 핍박으로부터 종종 보호해주었다.

그런데 히요시가 원숭이라고 놀림 받을 때에는 ‘배은망덕하게도’

다른 얘들 속에 섞여서 히요시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다. 히요시는 당당하게

이 어린 시절 친구에게 그 사실을 지적한다.

이 꼬맹이는 곧 스토리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버리니

이야기적으로는 필연성이 없는 인물인 것이다.

 

 

이 책의 작가 약력과 씌어진 시점을 검색해 보았더니 역시나,

요시카와 에이지는 중일전쟁이 터진 후 1938년 종군기자 자격으로 중국으로 건너갔고,

이 소설이 씌어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당시 일본은 총력전 체제로 돌입하고 있었고

문화 예술작품의 검열은 물론이고,

대본영의 노선에 협조하면서 선전선동에 일정 정도 기여할 수 있는

작품들만 출판이 허용되는 시기가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 같은 데카당한 작가도, 일본으로 유학 온 루쉰이 

일본 근대화에 대해서 일방적인 찬탄을 늘어놓는다는

따위의 소설을 이 시기에 쓴 적이 있었다. 물론 작품으로서의 퀄리티도 떨어졌다.)

 

 



*

 

게다가 소위 영웅으로서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전국지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유교적 도리에 기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설정되어 있어서

설득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인물 묘사도 딱딱하기 그지 없다.

전국시대 인물들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토요토미 히데요시나 아케치 미츠히데가 부자간의 인륜, 군신간의 의리 따위에 

목숨을 건다던가 도리에 관한 길고 긴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면들에서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은 갖 스물이 된 히데요시의 독백.


‘군신의 길이 없는 곳에 어찌 나라가 견고할 것이며

부자가 서로 다투고 의심하니

그들의 백성들이 어찌 그들을 신망하겠는가...

천혜의 자연 속에 물은 깨끗하고 여자들도 아름답지만

문화적으로 모든 게 썩었다!’


 

 


사이토 도산이 아들을 공격하는 것을 목숨걸고 막겠다고 나서는 대목에서

아케치 미츠히데의 웅변.

 

 


“부자지간에 칼을 휘두르며 피를 흘리는 것은 

인륜을 저버리는 것이니,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이기고 지든 동족 간에 피를 흘리는 일입니다.”



인용한 대목들은 모두 1권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이 시점에서 책읽기를 접었어야 했지만,

횡재했다는 기분으로 대학로 중고알라딘에서 이 물건을 건져온 데서 미련이 남아

2권 중간까지 더 끌었다.

이 책은 번역 상태나 제책 편집 디자인 등이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인 단죄로서가 아니라 작품 자체가 저질이다.

군부 밑에서 돈 벌려고 어쩔 수 없이 썼다는 가정 정도가

내가 얼굴도 본 적 없는 이 작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상상일 것이다.

이 책에 붙어 있는 저 위 수많은 100자평, 비록 기대평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호의 일색의 리뷰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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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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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용은 흥미롭지만 1981년에 처음 내놓은 번역 문장은 어처구니 없이 옮긴 데도 종종 보이고 가독성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러나 한길사의 사전엔 개정번역판이란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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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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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정갈하지만, 개념 작업장 고유의 통찰보다는,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 하나로 퉁치고 요약될 수 있는, 일관되게 단조로운 훈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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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로부터의 자유 - 무엇이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을 조종하는가?
마이클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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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에서 자유의지나 책임의 문제를 결정론과 양립시킬만한 언어적 nexus를 못집어내겠다고 손을 들고 말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의 주된 논지가 명쾌하지 못한 건 뇌과학에 관한 지식 부족 때문이 아니라 단호함의 부족 때문이다. 번역도 모호하게 내버려둔 문장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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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줘 2016-01-19 0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자 후기도 책의 문제의식과 동떨어진 상투적인 말들 뿐이어서, 뭘 이해하면서 이 책을 번역했는지 믿음이 안간다. 누구에게도 이 물건을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양동근 4집 - But I 드려
양동근 (Madman)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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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따 실하구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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