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의 삶 - 개정판
디팩 초프라 지음, 정경란 옮김 / 행복우물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개정판이지만 여전히 손질해야 할 오타 오역 또는 역자 스스로 이해되지 않아서 방치한 듯한 어색한 문장들이 적지 않다. 책 내용자체도 수월하게 흡수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세계관에 기초해 있지 않지만 번역 문제가 더 난해하게 만들었다. 더 공들일 수 있는데서 다시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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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체험 - 임사 현상의 탐구
칼 베커 지음, 이원호 옮김 / 생각하는백성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임사체험의 과학적 연구 가능성, 일본 정토종 문헌과 티벳사자의 서에 나온 임사 현상, 자살시도자 말기환자 카운슬링을 연결한 흥미로운 책이지만 번역이 엉망이다. 특히 고유명사 옮김의 무분별함은 번역자와 출판사 편집진이 얼마나 무성의한지 그대로 들여다보게 해준다. (별점은 번역퀄리티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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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86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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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스캔들없이 지워지고 훼손되고 몽롱해지다가 스킵하고 쫄아들면서 번복하는 것들을 신변을 그 자신처럼 보이는 프레임의 내부를 각 내서 보는 방법, 그러니까 음악 보다는 철학.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져도 그게 불만이 될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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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종말 - <테레즈 테케루> 15년 후의 이야기 펭귄클래식 107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조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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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는 근사했는데 갈수록 시시해진다. 테레즈가 3년 만에 본 딸 마리와 대화를 나누고서부터 이상할 정도로 볼품이 없어진다. 딸 마리를 통해 종교적인 깊이도 없고 변덕스럽고 요란하고 치기어린 '요즘 젊은이'를 묘사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테레즌 여자였지만 또 그저 여자다운 여자가 아니기도 해서 어떻게든 고립된 아웃사이더로서 그 내면에 넓이와 깊이를 -그것도 전작 <테레즈 데케루>에서! -마련할 수 있었겠지만, 이 작품에서 두 모녀가 나누는 대화는 리얼리티도 떨어지고 좀처럼 납득이 안된다.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지 전작에서 셋팅된 상황 설정을 주저리주저리 입으로 주워섬기는 게 상당히 어색했고 대가 답지 않아 보였다. 무서운 청년 뉴웨이브 시절, 싸르트르가 평문을 통해 통렬하게 까댔던 작품도 이 작품이었다. 개인의 자유로움을 회개와 운명론 운운하는 대목으로 자기기만 하는 게 싫어서 그랬겠지만 특별히 이 작품을 지목했던 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겠기도 했고, 정말 흠 잡히기 좋게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테레즈의 내적 수다도 사람을 질리게 하는 데가 있다. 마치 꿀을 너무 많이 간직한 꿀벌이 그러하듯이 하강(몰락)을 한다던 짜라투스투라처럼, 전작에서 이미 성녀전의 반열에 오른 마흔 다섯의 여자 테레즈는 이제 하산하여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든다. 첫 제자는 마리의 남친 조르주, 첫눈에 테레즈에게 반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그건 단순히 남녀간의 염정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다른 한편 여전히 인간이기 때문에 테레즈는 오랜만에 사랑받는 독신 노처녀처럼 흔들리고 재잘대고 피해망상에 사로잡히고, 딸을 통해서 (끈적끈적한 모성애가 아닌) 무조건적인 헌신을 실천하려 하고, 이 혼란통의 수습이 조화롭지 않아 보인다. 심리적인 암시의 달인 답게 간혹 날카로운 디테일들이, 통찰들이 눈에 띄지만 페허에 흩뿌린, 끈떨어지고 조각난 보석 가루들 같다.



모리악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선 깊이 감동했기 때문에 더욱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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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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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앞으로도 자서전을 쓸 것 같지는 않고, 그러니까 아마도 가장 정색을 하고 자신의 지난 삶을 글쓰기 작업이라는 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반추해본 글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불우하게 출발하지도 않았고 기묘한 체험을 수두룩하게 겪었다거나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젊은 시절을 열심히 살았다. 왜 카버에게 공감했는지도 이해가 갈 것 같다. 소설가, 예술가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 성실함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쭉정이 같은 내 삶과 자연스럽게 비교되면서 진심으로 부끄러워졌다. 



운도 좋았지만 외곬수로서 하기 싫은 건 일절 안하고 제 굴만 파고 살면서 얻는, 지극히 폭좁은 구심력을 가진 충만함인데 그 안에서 밝아지고 환해졌다,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자기 관리는 자동으로 따라 온다. 달리기와 규칙적인 집필 습관. 대외적 행사 멀리하기. 모가 나서 은둔을 고집하는 염세적인 포즈가 아니라 그저 마이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자기분석적인 대목들이 더 튀어 나오면서 느낀 것은 하루키는 분석적인 글을 잘 못쓴다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글쓰기를 기피하는 경향도 농후하다. 비평이나 사회과학, 심리분석 류의 책들도 별로 안 읽은 듯하다. 얼마 전에 타계한 가와이 하야오를 추모하는 꼭지를 쓰면서 하루키는 하야오의 책은 딱 한 권 읽었고, 융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고백도 아니다. 아마 <해변의 카프카>와 관련해서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을 듯하다.) 



역시 깔끔하고 경쾌하게 쓰여져서 이 책도 금세 읽힌다. 하루키를 읽고 나면 밀린 설거지를 한꺼번에 해치우고 났을 때의 산뜻하고 정돈된 끝맛이 남는다. 요즘에는 그 여운이 그리 길지 않게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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