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하루키가 앞으로도 자서전을 쓸 것 같지는 않고, 그러니까 아마도 가장 정색을 하고 자신의 지난 삶을 글쓰기 작업이라는 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반추해본 글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불우하게 출발하지도 않았고 기묘한 체험을 수두룩하게 겪었다거나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젊은 시절을 열심히 살았다. 왜 카버에게 공감했는지도 이해가 갈 것 같다. 소설가, 예술가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 성실함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쭉정이 같은 내 삶과 자연스럽게 비교되면서 진심으로 부끄러워졌다.
운도 좋았지만 외곬수로서 하기 싫은 건 일절 안하고 제 굴만 파고 살면서 얻는, 지극히 폭좁은 구심력을 가진 충만함인데 그 안에서 밝아지고 환해졌다,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자기 관리는 자동으로 따라 온다. 달리기와 규칙적인 집필 습관. 대외적 행사 멀리하기. 모가 나서 은둔을 고집하는 염세적인 포즈가 아니라 그저 마이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자기분석적인 대목들이 더 튀어 나오면서 느낀 것은 하루키는 분석적인 글을 잘 못쓴다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글쓰기를 기피하는 경향도 농후하다. 비평이나 사회과학, 심리분석 류의 책들도 별로 안 읽은 듯하다. 얼마 전에 타계한 가와이 하야오를 추모하는 꼭지를 쓰면서 하루키는 하야오의 책은 딱 한 권 읽었고, 융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고백도 아니다. 아마 <해변의 카프카>와 관련해서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을 듯하다.)
역시 깔끔하고 경쾌하게 쓰여져서 이 책도 금세 읽힌다. 하루키를 읽고 나면 밀린 설거지를 한꺼번에 해치우고 났을 때의 산뜻하고 정돈된 끝맛이 남는다. 요즘에는 그 여운이 그리 길지 않게 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