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 런치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1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전세재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마약'이라는 말을 누가 붙여주고 만들었을까? 비마약중독자. 플러스 비마약중독자를 정상normal이라고 생각하는 꼰대square들이.

같은 논리로 '빨갱이'는? '마녀'는? '호모'는? '양키'는? '껌둥이'는? 명백히 이 용어들은 그 대상의 타자들이 사용하는 말들이다. 반면에 이 소설은 그 당사자가 자기 자신의 세계에 대해서 쓴 것이다. 어떤 용어를 사용했을 때 그 용어에 깃들어 있는 편견과 정치적 함의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번역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최소한의, 문학적 섬세함이라고 생각한다. 이 번역서는 그런 점에서 기본조차 안되어 있다.

어떤 도둑놈이 다른 도둑놈 동료에게 "우리 도둑질하러 가자"라고 말하겠는가? 그런데 이책이 그런식으로 번역되어있다. drug과 '마약'은 어감이 아주 다르다. 영어로는 감기약도 drug이지만 한국에서 마약은 엄청난 형량과 사회적 매장, 사악한 범죄의 냄새를 풍긴다.

어떻게 그런 기본적인 실수가 저질러지고 있을까? 이책의 역자가 기본적으로 모범생적 정상의 입장에서, 에버랜드 사파리 코스의 두터운 유리벽 뒷쪽에 서서 사자 들을 보듯 관찰자 시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놓구서, 후기에 다른 번역자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버려둔 걸 자기가 다시 맡아서 완수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약물중독자를 뜻하는 '정키'junkie 라는 말의 원래 뜻이 뭔가? 정크, 즉 쓰레기라는 말 아닌가. 그 편견과 경멸의 차별적인 어의가 가득 스며있는 용어를 자기 자신에게 태연하게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후폭풍도 10년전에 지나간듯한, 낭만적인 곡선과 감상주의 금지, 제3자적으로 유체이탈해서 자기모순을 두려워 하지 않는, 그래서 거의 진지하지 않은 느낌 스스로에 대한 조롱, 납조각을 핥은 듯한 까칠까칠함, 절망감을 배반하는 절망감, 기괴한 유머감각, 자기모멸, 자조 자학 명멸하듯 구심점을 잡을 수 없는 신경 다발 단위로 해체된 신체에 대한 자기 감각이 이 번역본에서 거의 안느껴진다. 구정물에 새끼발가락 하나 담궈보고 얼룩 이라는 개념을 총체적으로 이해해버린 - 개념은 일종의 교차로니까 안될것도 없지..- 아기철학자처럼 초연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관찰자연하기 때문이다. 그게 가장 안전하고 유리하기 때문이다. 왜 그걸 간과하는가. 이런 물건에서 그것 빼면 뭐가 남는가. 이 번역본을 읽고 독자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고들 하는 건가 고개를 갸웃 하는 것도 절대 무리가 아니다.

 

이번역본은 웃기게도 온갖 차별적인 용어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순화되어 있다. 참 정치적으로 올발라서 여러사람 배려해주셨다. '호모'를 '동성애자'로, 정키는 '마약중독자'로. drug은 '마약'으로.

이책을 호기심에 일독하려드는 대부분이 '마약중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즉 마약 세계의 외부인이라는 것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마약중독자'라는, 일견 편견을 제거한 것인 양 가치중립적인, 유사 의학용어적 입장을 취하듯, 유사 법률용어를 적용하듯, 그렇지만, 그뒤에 '외부인'이라는 불균질성을, 차이를, 심연을, 자연스러운 포장으로 뺑끼칠해놓은 단어를 적용하였고, 결과적으로 이 번역본은 이책의 가장 훌륭한 부분인 감정적인 핵심을 파괴해버렸다. 

기본적인 문장 구문을 한국말로 재구성하는 부분에서는 비교적 충실했다고 보인다. 원문과 일일이 대조해보지는 못했지만, 사소하지만 쉼표들로 연속병렬된 구문 중에서 실수로 몇개 빼먹은 게 보이기도 하고, 'superego를 쳐들었다'고 원문에서 표현한 걸 자만심으로 가득차 머리를 쳐들었다..라고 윤색한 것처럼, 역자 스스로 납득이 안가는 비유법들을 무난하게 발라놓은 부분들도 좀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번역서는 공문서나 세계명작 소설 등에서 보는 의고적이고 품위가 넘쳐보이는 물건이 아니었단 걸 망각한 번역기획이었다는 것을 지적해야 겠다. 구어, 즉 입말을 살리고, 시에 가깝게, 좀더 광폭하게 리드미컬하게 옮겼어야 했는데 욕심이 너무 많은가.

첫 출간된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이 물건이 이땅에서는 이정도다. 대한민국처럼 따분하고 꽉막힌 꼰대들의 동네에서는, 아니 좀더 시민단체스러운 구문으로 다시 발라 기술해보면 '소수취향자들의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판에서는 아직 이책이 순환하고 유통될만한 환경이 아니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영화 얘기하는데 애국심을 운운하는 사회. 박찬호 김병현 최경주가 나온다는 이유로 해외 경기를 생중계해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분위기가 지배하는 이런 동네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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