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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러시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솔출판사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소년 유미나가 카즈키는 유복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은 집 구석에서 자란 14세 중학생이다. 이 녀석은 애늙은이다. 학교에도 거의 안간다. 맞부딪치는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서 속으로 나름대로의 코멘트를 끊임없이 단다. 잠언으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멋진 문장으로 말이다. 소년은 그런 멋찐 독백을 하는 그 자신을 ‘멋찐 놈’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문제점은, 고통을 고통으로 의식하고, 대결하거나 해결해야할 몇 개의 대상으로 명료하게 양각화시키고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겉보기엔 멀쩡하고 집에 돈도 많고 머리도 잘돌아가는 소년은 명백히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에겐 조건없이 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데 보다시피 그 집구석은 콩가루다.
소년은 우발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다. 바지를 벗고 있는 아버지의 뒷통수를 꽃병으로 내리치고, 당황하며 뒷통수를 움켜쥐고 있는 아버지의 어깨에 칼집을 낸다. 몇백년 전에 만들어진 장식장의 닛폰도로 말이다. 천만엔쯤 하는 아버지의 수집품이다. 아버지는 지하실 마루를 뜯어 그안에 쳐넣는다. 별다른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기표상 ‘아버지’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그 이름에 합당한 의미내용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버지가 부재한 지금 어떻게 거대기업을 탐욕스런 어른들의 손으로부터 보호해서 운영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왜냐하면 소년에겐, 통념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그만의 대안적인 가정 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저택에 소년과 가정부이자 연인 교코, 교코의 단짝 친구이면서 소년의 아버지의 심복 딸인 요코(여배우지망생), 그리고 죽을 때까지 보호해야할 히데키, 이렇게 넷이서 말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부지할 수 있을까, 소년의 머리 속에 지어져 있는 놀이공원과도 같은 가상현실은?
"왜 살인을 하면 안된다는 거죠? "
이 소설의 결점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엔 유미리는 소년의 내적인 아노미를 형상화하기엔, 구태의연한 의미에서 지나치게 도덕적이었다. 그녀의 불우했던 과거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의심하지 않은 전제들을 끌어안고 나아갈 정도로 건전한 데가 있는 것이다. 아니 통념으로 볼땐 ‘건전’이지만, 결국에 가서는 답답한 꼰대들에게 직설적인 신경질을 부리는 듯한, 어딘지 모르게 통하지 않을 ‘건전한 항의’라는 뜻에 가깝다. 소년들의 일탈에 대해서는, 소년의 스피드 복용이나 여고생 윤간의 리얼한 묘사를 통해서 확실하게 보여주었지만, 소년 카즈키만은 굳이 친구들을 말리지 않으면서도 또 그렇다고 윤간 플레이 동참하지 않으면서 관찰하기만 한다.
오히려 작가 유미리가 발군의 묘사력을 보여준 곳은, 모처럼 실력발휘하는 카나모토의 듬직한 등짝이라든가, 소년의 아버지가 없어지자 경영권을 둘러싸고 그 밑의 쥐새끼같은 측근들이 어떻게 아무 말썽 없이 사이좋게 기둥뿌리를 갉아치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서로의 속을 떠보는 부분 등에 있었다. 그리고 경찰이나 형사들의 사무적이면서도 유들유들한, 능구렁이같은 면모를 탁월한 필치로 그려냈다.
라스콜리니코프적 회개에는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미심쩍어하고 혼란스러워 하지만, 어쨌거나 자수하기로 결심한 소년은, 교코, 형 히데키, 이렇게 셋이서 마지막으로 동물원에 간다. 동물원에서 코끼리 우리를 들여다 보다가 세계가 붕괴하는 대형 지진의 환상이 소년을 덥친다.
그렇다. 지진은 기적의 다른 이름이었다. 현실에 있는 모든 것들의 붕괴는 유폐된 자의 뒤틀린 희망이다.
[인상깊은구절]
“소년은 태양열에 뇌를 태우고 미쳐버리고 싶었다. 제아무리 자신으로부터 헤어나려 해도 헤어날 수가 없다. 미칠 수도 자살할 수도 없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우리 안에서 초죽음 상태와 같은 고뇌를 견디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자신이라는 죄에 포로가 되어 사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지진이 일어나면 지상의 모든 존재는 용서받는다. 대형 지진에 비하면 인간이 저지른 죄 따위는 너무도 사소하여 죄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죽든 살아남든, 기왓장 아래 깔린 자의 죄는 사하여 지지 않는가. 그렇다고 벌을 면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적어도 대지가 흔들리는 15초에서 20초 만큼은 용서받아도 좋을 것이다. 죄없는 자도 죄많은 자도 평등하게 고루 흔들리고, 죽음에 직면한다는 벌을 받는 몇십 초간, 소년에게 지진은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