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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브레이크 호텔
서진 지음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하트 브레이크 호텔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읽은 듯한 기시감을 느꼈는데, 어디서 본 건지 떠오를 듯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었다. 별것도 아닌데 생각이 날듯 말듯 하면 더 궁금해지는 법이라 책을 몇 번 덮었다 폈다 했었더랬다.
작가의 말인 즉, 2005년 자비출판으로 <하트모텔>이라는 소설을 펴냈다가 6년만에 '모텔'에서 '호텔'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세 편의 단편을 새로 써서 출간했다고 한다.
내가 이전에 출간 된 <하트모텔>을 읽었다는 뜻?? 그럴리가...!!
이제 앞 부분만 봐도 아, 이 책 내용은 이렇게 흘러가겠군..을 읽어내는 초능력자도 아니고, 전에 알아오던 작가도 아니고, 내가 겪은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었는데 왜 그런 생각이 자꾸 든 건지..원.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굳이 하나를 연결시켜 말을 하자면, 아마도 여름 쯤에 재미있게 읽었던 <최제훈의 일곱개의 고양이 눈>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뫼비우스 띠를 돌 듯 처음과 끝이 이어지는 이야기, 같은 일을 바라보는 등장인물들의 다각도적 시각교차,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다른 이야기들...그러고 보니 공통점이 많구나!!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다면 2011년 한국 문단에 나름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독자에게 각인시킨 최제훈의 방식을 모방한건 아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을것이다. (내가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럴수도 있다. ㅠ)
그러나, 이 책의 원작이 먼저 나와 있었다고 하니(..이번엔 최제훈을 의심??--;;) 그럴리는 없고 거 참, 아무래도 모를일이다.
각설.
부산의 황령산 드라이브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도쿄, 마이애미, 위싱텅DC,라스베가스, 뉴욕을 거쳐 다시 부산의 황령산 드라이브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모두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라는 공통적인 장소와 연결되어 있다.
지독하게 현실적이다가 어느 순간 환상의 세계로, 몽환적이면서 환각상태이다가 아무도 모르는 미래의 어느 시간까지 우리는 하트브레이크 호텔의 공간을 유빙하며 천천히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는 그 길들을 걷게 된다.
다른 듯 같은 장소인 하트브레이크 호텔은 지나간 기억을 찾는 곳이자 잃어버린 시간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내가 누군지 모를때도 떠나간 사람이 못견디게 보고 싶어 찾아갈 때도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을 꿈꿀 때도 하트브레이크 호텔은 그들의 의식을 누이고 의식이 침잠하는 깊은 곳으로 데려가 새로운 의식을 하게 하는 묘한 장소이기도 하다.
장자몽에서처럼 내가 꾼 나비의 꿈인지 나비가 된 내가 꾼 장자의 꿈인지 어느것도 확연히 드러나는 것 없지만, 하트브레이크의 꿈속에서 누군가는 위로받고 누군가는 꿈꾸던 사랑을 만나고, 누군가는 구원을 얻는다.
Heartbreak와 Hotel ..묘한 역설이 주는 야릇한 호기심을 담은 책이다.
각각의 단편으로 떼어 보자면 하나 하나가 갖고있는 특이한 소재와 캐릭터들의 개성, 배경이 달라지는 도시들을 탐색하는 재미가 있다. (이 작가는 여행을 많이 다녔거나 외국에 거주할 일이 많았구나..싶어 은근 부러웠다.^^) 다른 도시는 가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휠 오브 포춘에서의 라스베가스는 내가 걸었던 길들이 그림이 되어 살아와 왈칵 반가웠다. 책 속에서 책 밖의 기억 떠올리기..이래서 기시감이?? 그 놈의 기시감, 참.
재밌게 읽었지만, 어쩐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면 이것도 죽일놈의 기시감 때문일까?
하트브레이크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하나의 문을 통과해 또 하나의 문을 건너가 마지막 문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초대된 느낌이었다.
특이한 소재와 생각치 못한 캐릭터의 신선함은 분명 있었지만, 죽으면 죽었지 절대 죽지 않는 좀비의 등장과 미래 귀환을 종용하는 목소리, 미래에서 걸어 와 과거와의 조우...돌아나갈 길을 표시할 실을 가져 오지 않은 나여서 그런지 미로에서 길을 잃기를 몇 번했다.
그러나, 누군가 책 속의 하트브레이크에서 나를 초대한다면 기꺼이 응할 생각이다.
비록 사랑은 깨어질 지언정 내 의식속에 침잠되어 있는 거부할 수없는 운명이 분명 기다리고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