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들꽃이 핍니다 ㅣ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35
김근희 글.그림 / 한솔수북 / 2012년 4월
평점 :

시골에서 자란 나는 돌보지 않아도 피고 눈만 뜨면 지천으로 보이는 들꽃에게 관심도 없고 친절하지도 못했다.
토끼풀은 토끼 식량으로, 자운영은 논의 지기를 북돋는 거름으로, 민들레는 심심할 때 후~ 날려 보내는 심심풀이 식물로 까맣게 익으면 제법 맛있어 자꾸 먹게 되는 까마중에게도 별처럼 생긴 하얀꽃이 있으리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꽃마리가 피었으니 이제 봄이 오기 시작하겠구나, 뱀딸기가 익을 때니 따먹으러 가야겠다, 민들레가 지천인 곳에 염소를 매어 두어야지....'아침이니 학교에 가야겠다'처럼 아무런 의미 없이 시간이 되었으므로 정해진 규칙대로 흘러가는 풍경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민들레가 백만 볼트의 환한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햇님을 닮은 꽃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후였다.
'어! 민들레가 피었네..'하면서 무심이 민들레 한 송이를 아이의 손에 건네는 순간, 아이의 얼굴에 어리는 환한 빛을 보는 순간!
이 작은 풀꽃 한 송이가 이렇게 환한 빛을 내게 하는 힘이 있었구나...를 느끼면 세상의 모든 들꽃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시골에서 본 비슷비슷했던 들꽃들이 각자의 색깔과 향기와 생김새가 다 달랐음을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알게 된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로움이 작은 풀꽃이라고 다르지 않음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김근희 작가의 <들꽃이 핍니다>는 자꾸 쓰다듬게 되는 책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들꽃이 얼마나 이뿌고 아름다운지 돋을새김 해 놓은 것 같다.
작은 들꽃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 이렇듯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책으로 만들었구나..싶은 생각과, 들꽃을 천으로 옮겨 수 놓는 정성이 내게도 전달되어 만지면 천의 까슬한 감촉과 실의 부드러움이 내게로 전해 질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개미가 좋아하는 열매, 제비꽃
너무너무 작아 누을 크게 떠야 보이는 열매, 꽃마리
새빨간 사탕처럼 향긋한 열매, 뱀딸기
까만 구슬 열매, 까마중
흔들면 사랑사랑 초기 나는 열매, 나팔꽃
까만 꼬투리 속 빨간 열매, 자운영
바람을 타고 나는 민들레..
그러고 보니 보랏빛 제비꽃이 시들고 나면 작은 세 갈래의 주머니 안에 깨알보다 작은 열매가 총총히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이걸 개미가 좋아하는 구나... 이제야 그걸 알게 되다니!!
기골서 뱀딸기가 많이 나는 곳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대로일까..회상에 젖어 슬며시 웃는다.
까마중은 한약재로도 쓰인다는 말에 입이 까맣게 되도록 먹었었지.
나팔꽃 열매의 '사랑사랑' 소리!!! 아, 나는 왜 한 번도 그게 '사랑사랑'소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
기회가 오면 아이의 귓가에 이 소리를 꼭 들려주고 말리라!
자운영의 열매는 콩 꼬투리 같아 소꿉장난할 때 많이 쓰였었고,
민들레는 언제나 시골아이들의 꿈을 실어 나르는 좋은 장난감이었지..
어린날의 행복한 순간들이 오버랩되고 다시 들여다 보게 되는 새로운 사실들을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아이보다 내가 훨씬 행복해 졌다.
한 페이지에 한 두 줄 뿐인 책을 한 참만에 다 보고 다시 앞으로 돌려 쓰다듬어 넘기며 또 본다.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이 땅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들꽃들을 중심으로 봄비가 내리는 봄에서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땅속으로 들어가 잎을 피우기를 기다리며 잠드는 과정을 실로 나타내었다.
들꽃들과 친한 개미, 다람쥐, 개구리, 지렁이... 곤충과 동물을 함께 등장시켜 귀여움과 친근함을 더 한 것도 돋보인다.
저 개미들...
책 장 속에서 종종종 열을 마춰 기어나와 내 거실로 줄지어 나 올 것만 같다.^^

이제는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것들 말고 직접 손으로 만든 모든 물건들에게 특별히 더 애정이 간다.
퀼트로 만든 옷을 입고 가는 사람을 만나거나 직접 손으로 뜨게질한 옷을 입은 아이를 보면 한 번 더 돌아보고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그 옷에서 느껴지는 사랑과 따뜻한 아우라가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곤 한다.
부럽기는 하되 내가 할 수없는 일이라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본 친구집의 커튼이 너무 이뻐 감탄을 연발하니..어렵지 않다고 도와주겠노라 해서 올 초 부터 수 놓기를 시작했다.
생각만큼 이뿌게 나오지 않고 부족한 부분만 눈에 보여 속상해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만난 <들꽃이 핍니다> 이 책은 나에게 얼마나 많은 감동과 용기를 주었는지 모른다.
아이가 책을 받고 수놓을려고 주문한 책이야? 물었으니까!^^

어머니와 남편과 딸을 위해, 이름 모르게 피고 지는 들꽃이 어떻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지 전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책 <들꽃이 핍니다>.
우리에게 이런 마음으로 책을 만들어 주는 작가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
아이들 책이지만, 아이들이 책에 담긴 세세한 뜻까지 다 읽기엔 무게감이 있는 책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보면서 추억과 행복한 기억이 오버랩 될 때 이 책의 가치는 더 빛날 것이다.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어린시절을 얘기하며 읽는다면 하루밤에 다 읽기란 불가능한 책이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가가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수놓는 동안에 든 생각이나 들꽃에 대한 작은 기억들을 담은 작가 이야기를 첨부 했었더라면 읽는 독자에겐 더 없는 기쁨이 었을 것이다.
마음이 환해 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