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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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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소설가는 많겠지만 현존하는 달리는 소설가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는 단연 하루키다.
'달린다'는 말은 말 그대로 사람이 육체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활동을 말하는 거다.
술을 앞에 두고 '죽을 때까지 달려보자!' 거나 '어제 좀 달리셨네요?'할 때 그 달리기가 아니다.
그는 묘비명으로도 정해 놓았다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랑 일맥상통하는 마라톤 매니아이자 명실상부한 러너다.
(그래서 어느날 뜬금없이 나도 마라톤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데는 하루키의 영향이 없지않다. 시작한지 3년쯤 됐는데 사람들이 왜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지 알겠더라. 달릴수록 힘들고 달릴 때마다 힘들고 달린다는 생각만으로도 힘들어지는 게 마라톤이다. 그런데도 또 달리고야 마는게 마라톤이기도 하다는....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달려보니 안 달리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어 달릴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키를 알게 된 건 1998년의 여름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까지 일본소설에 별 관심이 없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아니면 일본 소설은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었다.
동생 친구가 하루키 매니아라서 동생이 빌려 온 친구의 책을 읽다가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하루키빠가 되어있었다. 한국소설에서는 느낄 수없는 가벼우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중시하고 허무를 극복하지 못해 (대부분의 주인공 주변 사람들이)자살을 택하지만 이 세상이 아닌 만들어 낸 환타지적 세상에 나도 빠져들어 있었다.
그의 언어들이 체 올라 앉은 깨알처럼 윤기가 나고 고소하다는 생각을 하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 없듯 어느순간 부터 그의 문체와 주제가 비슷비슷해 아삭거리는 신선함보다는 오래 먹어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밥같아 빵도 좀 먹어봐야 겠군 하며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치만 오래 먹어 온 건 맛을 구별할 수 없을 지라도 안먹으면 뭔가 허전해 진다. 다시 그를 탐독하기 시작한 건 1Q84때 부터가 아니었나한다. 와락은 아니어도 손을 꼭 쥐어 줄 만큼은 반가웠다. 여러가지 잡곡이 많이 들어간 밥이어서 맛있기도 했고.
그후에도 몇 편의 단편모음집과 에세이들이 나와 계속 읽었지만 잡곡의 종류만 달라진 여러 종류의 밥이었다. 때론 맛있게 때론 생각없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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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나 하루키 책들을 보이는대로 모아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터무니없이 적다. 책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먹는 거라 누가 먹은 것도 아닐거고...빌려주고 못 받은 책은 몇 권 생각나지만 아무래도 수상하다. 아무말 없이 빼가서 읽지도 않고 돌려주지도 않는 조카 이모양, 한번 가져가면 절대 돌려 보내지 않으면서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더라 망발을 해대는 김모씨 내가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 받아 오고야 말테니 각오하고 계시길..
잡설이 길었다.
[기사단장 이야기]를 하자.
(잡설이 길어진 건 이 책에 대해 크게 이야기 할 게 없다는 말과도 같다.ㅠ)
누가 그러더니 이건 여태껏 펴 낸 하루키 소설들을 한 권에 버무려 놓은 잘 비벼진 비빔밥같은 소설이라고-
정확히 봤다 아니다라고 잘라 말할 순 없지만, 거의 동의에 한 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가 해마다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오늘의 하루키가 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이야기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에 있다고 본다. 애들 보는 동화도 아니고 염세주의도 아니고 고속도로 비상구를 통해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으로 갔다가 우물을 통해 그림속으로 들어갔다가 마음에 안들면 목을 메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왜 열광하는지를 생각해 보니 하루키는 복선의 달인이다.
내가 여기서 이 얘기를 왜 꺼내는지 아냐? 다음 장을 넘겨! 거기에 써 놨으니..이런식이다.
호기심을 바짝 부추키고 호기심을 적확히( 정확이 아니다. 유달리 하루키 번역 작품엔 적.확.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찔러 독자가 마지막 장을 보지 않고는 베기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능력이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소설 속에 권총이 나왔으면 발사되어야 해!'하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그가 무언가 이야기를 할 땐 그에 대한 복선을 깐 거라고 보면 된다.
(그치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게 [기사단장 죽이기]의 멘시키 집 어딘가엔 푸른수염의 방처럼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방이 있다고 했는데 그 방에 대한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 마리에 엄마의 목이 달려 있지는 않아도 뼛가루라도 뿌려진 방이 열려지길 바랬는데...^^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도 아쉽긴 마찬가지. 역시 발사되지 못한 사람 중 하나다.)
또 하나,
심각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시니컬하고도 유머스러한 대답들. 하루키 수필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는 무척 유머스럽고 심각하지 않은 사람이다. 대체로 인건적이고 재밌다. (수필집을 너무 자주 많이 내어 이제 그의 독자들은 그가 기상해서 취침하기까지 무슨일을 할 시간이고 어떤 장소에 가 있을 것이라는 걸 대부분 예상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그의 소설을 읽는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19금 장면이 꼭 있다는 거다. 성애의 묘사 한 장면 쯤은 그럴듯 하게 넣어 주어야 책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지!하는 걸 아는 사람이다. (하루키씨 이번엔 좀 약했어요.ㅎㅎ)
칭찬을 했으니 이젠 깔 차례!
(깐다는 게 뭘 알고 까는건 아니고 그냥 충실한 그의 독자로써 솔직한 감상평이라 생각하시면 되겠다.)
문장에 방점들이 지나치게 많다. 하루키 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작가가 의도한 바를 놓치지 말고 읽어 달라는 메세지이기도 해서 눈에 힘을 주어 읽었다. 이전에도 지금에도.
소설 흐름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늠 문장이기도 했고 새겨 두면 좋은 말이 될 수도 있겠구나..싶은 문장들이었지만, 이게 계속 눈에 힘을 주어 읽다 보니 피로감이 아주 그냥---노안 앞당기는데 이런 촉매제가 없구나 싶었다.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나, 지나친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 듯, 지나친 방점은 소설 흐름을 끊는데 일등공신이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해 주시길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는 무지랭이 독자가 감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앞서 얘기했듯,
이름만 다른 자기복제가 가능한 주인공들이 난무한다는 거다.
하루키를 쭈욱 읽어 온 독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기시감이 포진해 있다.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통로(우물인 경우가 많다), 평범하면서도 무기력해 보이나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공, 신비한 힘을 가진 평범하지않은 소녀이거나 여자, 재력과 재능을 겸비한 평범하지 않은 조력자, 이 세상과 환타지의 세상을 사력을 다해 오가지만 종래엔 그렇게까지 용 쓸 건 없었거만... 싶은 허무한 결말!
의지대로 행하는 자만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가르치고 교화하는 교훈적이지 않은 결말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아니면 말고 식의 허무감을 주는 결말들이다. 그를 정식으로 비평한 비평가의 말마따나 자신이 없어서인가 예술적인 승화를 위한 여백인가? 나도 궁금하다.
이제 정리다.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지만 하루키는 부인할 수 없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가 말했듯 비평가의 말은 냄새나는 마굿간 같은 거다. 일부러 그 냄새를 확인하려고 마굿간 문을 열 필요는 없다.
그는 그의 색채를 가졌고 그의 색채에 물든 사람은 실증날 때 까지 그 색채를 즐기면 된다.
좋은 소설을 쓰기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의 정도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독자다. 한 사람을 속이기는 쉬워도 여러 사람을 속이기는 어렵고 여러 사람을 동시에 속이기는 더 어렵다는 말처럼 독자층이 두껍다는 건 그가 심혈을 기울여 글을 쓰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화가들과 많이 만나고 그림 공부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달리기를 그만 두고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런 말만은 말아주시길...내가 당신을 좋아해 뭐라도 따라 하고 싶지만 그림엔 젬병이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페어 플레이어다.
'그냥 동그라미만 그리면 그게 내 얼굴이야, 쉬워!
잡풀 속 구덩이 속인가? 펭귄 열쇠고리를 돌려 주러 온 얼굴없는 사자의 목소리가 막 들리는 것 같다.
역시, 중독성 하나는 끝내 주는 하루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