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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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이름을 바꾸어 새로운 책을 낸 다는 건 독자가 봤을 때도 아슬아슬하지만 개인적으로 큰 모험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예가 문학사에 종종 있지만,' 낭중지추'거나 '모 아니면 도'로 나는 봤다.

'낭중지추' 이름자가 무슨 필요있냐? 작품으로 승부하면 되는거지!의 경우라면 탄탄한 문장력이나 작가 스스로의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모 아니면 도'의 시도라면 잃을 게 없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 시간이 있다면 해리포터를 쓴 조엔 롤링이 필명으로 낸 쿠크스 롤링의 예를 검색해 보기로 하자.)

박생강 (본명 박진규) 작가가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가 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인지도가 대중들에게 높지는 않다. 작품이 나빠서라기 보다는 작품이 많질 않아 대중에게 알려 질 기회가 적었던 까닭이라 생각한다. 내로라 하는 출판사의 소설상을 탄 작가이니 이 경력이 작품 활동을 해 나가는데 좋은 비빌 언덕이 되리라 사료됨에도 굳이 이름을 바꾸어 작품 활동을 해 나가는데는 충동적이었다고는 하나 나름의 절치부심 심오한 뜻이 있으리라 본다. (책 안쪽 날개 작가 사진도 바뀌었다. 더 젊어 보인다.^^)


10년 전 쯤 수상한 식모들을 읽었었다. 재밌게 읽었다는 생각 뿐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단군신화에서 사람이 되지 못한 굴을 뛰쳐 나온 호랑이가 호랑아낙이 되어 현대사회의 식모로 잠입 가정을 해체해 나간다 그런 얘기였는데 무거운 주제와 달리 가볍게 읽혔고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 같은 작가(이름은 다른) 의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를 읽었다.

멤버십으로 이용할 수있는 대한민국 상류층 1퍼센트 남자 사우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당연히 갑과 을이 존재하고 여러종류의 인간 군상들에 대한 관찰과 묘사와 감상을 사우나 매니저로 일하는 태권의 눈으로 적어 나간 이야기다.

주제는 무겁지 않고 재미는 뭐... 그냥 읽을 만 했다.(회식이나 계모임 때, 배터지게 먹고 나서 마지막 물 한 잔 마시면서 '물이 제일 맛있네!'하는 인간들이 꼭 있는데 내가 그런 인간이 된 것 같아 좀 죄송하긴 하다.)


소설이 주제 의식이 있어야 하고 뒷통수를 치거나 가슴 묵직히 내려앉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세계명작 할애비라 죽기전에 읽지 않으면 눈도 못 감을 필독서라 해도 내 취향 아니면 덮어버리면 되고 쓰레기 잡 지식이라 해도 내게 맞으면 양서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JTBC 안 봐요]는 끝까지 읽히게 하는 재미의 요소는 분명 있다. 대한민국 1%만 가는 사우나를 살아 생전 가 볼 일이 없을 거 같은 나 같은 사람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와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서라도 읽게 되었다. 보통 동네 목욕탕에서 수건 갈아주고 청소해 주는 사람들을 사우나 매니저라는 직책으로 부른다는 것도 생소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거 모르는 바 아니나 [JTBC 안 보는] 사람들의 속내와 엽기적 행각을 기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이 도를 넘을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대 놓고 갑질을 하는 것 조차 품위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이렇다 할 이슈라고는 없이 벗고 입었다.

1%들이야 사회적 체면과 포지션이 있으니 서민들의 동네 목욕탕 마냥 시끄럽고 무례한 행동과 말이오갈 수 없다면 나머지 99%에 속하는 사우나 매니저 그들의 삶에 대해 좀 더 충실히 스케치를 해야 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다들 비슷하게 힘들고 비슷한 사연들로 모여서 1% 시다바리 역할을 해 가긴 한다만 남 밑에 일하는 게 다 그렇지 뭐, 달리 해 줄 말은 없네. 그래서 시다바리도 고만 둔다. 책도 여기서 끝!

그런 느낌이었다.

그대로 끝내긴 찝찝했던건 나만이 아니었나보다. 사우나 매니저를 그만 두고 소설가로 돌아 온 태권과 여전히 사우나 매니저인 태권이 맥주 집에서 술을 마시며 성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박봉에 착취 당하는 인간의 고뇌가 없었던 건 아니었냐고? 장소를 너무 관념적으로 생각하며 비판하지 않아 자의식 없는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고 사우나 매니저는 소설가 를 탓한다. 

소설가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벽과 벽 사이에 끼어 흐르는 어떤 존재로 느껴진 그 순간들이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지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부끄럽지도 않았고 두꺼운 관념의 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빈틈이 보이면 무너진다는 걸 1%들은 모르고 있기 때문에 관념의 링 속에서 계속 돌고 있는 거라고.

끄읏-하고 덮어 버리지않고 주제를 정리해 준 건 고마우나, 사실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ㅠ


그러나, 계속해서 유수의 문학상을 섭렵해 가고 있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며 골치 아프고 억지로 주입하려는 주제의식 따위 다 필요없으니 그만이 그릴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 독자를 인도해 가는 글로 자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말에서 전작 [수상한 식모들]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귀를 드나들며 꿈을 갉아먹는 쥐를 모티브 삼아  수상한 사우나 매니저, 알고 보니 쥐였지]가 초고의 제목이었다고 해서 하하하 웃었다. 쥐를 좋아하시는 듯.^^

출판사의 말을 듣길 잘 했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속상한 건 소설도 좋아하지만 [작가의 말] 엄청 재밌게 읽는 사람인데 "그래서 이 소설에 등장하???"책이 여기서 끝나 버렸다.

쥐가 먹은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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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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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소설가는 많겠지만 현존하는 달리는 소설가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는 단연 하루키다.

'달린다'는 말은 말 그대로 사람이 육체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활동을 말하는 거다.

술을 앞에 두고 '죽을 때까지 달려보자!' 거나 '어제 좀 달리셨네요?'할 때 그 달리기가 아니다.

그는 묘비명으로도 정해 놓았다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랑 일맥상통하는 마라톤 매니아이자 명실상부한 러너다. 

(그래서 어느날 뜬금없이 나도 마라톤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데는 하루키의 영향이 없지않다. 시작한지 3년쯤 됐는데 사람들이 왜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지 알겠더라. 달릴수록 힘들고 달릴 때마다 힘들고 달린다는 생각만으로도 힘들어지는 게 마라톤이다. 그런데도 또 달리고야 마는게 마라톤이기도 하다는....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달려보니 안 달리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어 달릴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키를 알게 된 건 1998년의 여름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까지 일본소설에 별 관심이 없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아니면 일본 소설은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었다.

동생 친구가 하루키 매니아라서 동생이 빌려 온 친구의 책을 읽다가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하루키빠가 되어있었다. 한국소설에서는 느낄 수없는 가벼우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중시하고 허무를 극복하지 못해 (대부분의 주인공 주변 사람들이)자살을 택하지만 이 세상이 아닌 만들어 낸 환타지적 세상에 나도 빠져들어 있었다.

그의 언어들이 체 올라 앉은 깨알처럼 윤기가 나고 고소하다는 생각을 하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 없듯 어느순간 부터 그의 문체와 주제가 비슷비슷해 아삭거리는 신선함보다는 오래 먹어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밥같아 빵도 좀 먹어봐야 겠군 하며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치만 오래 먹어 온 건 맛을 구별할 수 없을 지라도 안먹으면 뭔가 허전해 진다. 다시 그를 탐독하기 시작한 건 1Q84때 부터가 아니었나한다. 와락은 아니어도 손을 꼭 쥐어 줄 만큼은 반가웠다. 여러가지 잡곡이 많이 들어간 밥이어서 맛있기도 했고.

그후에도 몇 편의 단편모음집과 에세이들이 나와 계속 읽었지만 잡곡의 종류만 달라진 여러 종류의 밥이었다. 때론 맛있게 때론 생각없이 먹었다.

갑자기 생각나 하루키 책들을 보이는대로  모아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터무니없이 적다. 책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먹는 거라 누가 먹은 것도 아닐거고...빌려주고 못 받은 책은 몇 권 생각나지만 아무래도 수상하다. 아무말 없이 빼가서 읽지도 않고 돌려주지도 않는 조카 이모양, 한번 가져가면 절대 돌려 보내지 않으면서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더라 망발을 해대는 김모씨 내가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 받아 오고야 말테니 각오하고 계시길..


잡설이 길었다.

[기사단장 이야기]를 하자.

(잡설이 길어진 건 이 책에 대해 크게 이야기 할 게 없다는 말과도 같다.ㅠ)

누가 그러더니 이건 여태껏 펴 낸 하루키 소설들을 한 권에 버무려 놓은 잘 비벼진 비빔밥같은 소설이라고-

정확히 봤다 아니다라고 잘라 말할 순 없지만, 거의 동의에 한 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가 해마다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오늘의 하루키가 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이야기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에 있다고 본다. 애들 보는 동화도 아니고 염세주의도 아니고 고속도로 비상구를 통해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으로 갔다가 우물을 통해 그림속으로 들어갔다가 마음에 안들면 목을 메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왜 열광하는지를 생각해 보니 하루키는 복선의 달인이다.


내가 여기서 이 얘기를 왜 꺼내는지 아냐? 다음 장을 넘겨! 거기에 써 놨으니..이런식이다.

호기심을 바짝 부추키고 호기심을 적확히( 정확이 아니다. 유달리 하루키 번역 작품엔 적.확.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찔러 독자가 마지막 장을 보지 않고는 베기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능력이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소설 속에 권총이 나왔으면 발사되어야 해!'하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그가 무언가 이야기를 할 땐 그에 대한 복선을 깐 거라고 보면 된다.

(그치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게 [기사단장 죽이기]의 멘시키 집 어딘가엔 푸른수염의 방처럼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방이 있다고 했는데 그 방에 대한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 마리에 엄마의 목이 달려 있지는 않아도 뼛가루라도 뿌려진 방이 열려지길 바랬는데...^^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도 아쉽긴 마찬가지. 역시 발사되지 못한 사람 중 하나다.)

또 하나,

심각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시니컬하고도 유머스러한 대답들. 하루키 수필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는 무척 유머스럽고 심각하지 않은 사람이다. 대체로 인건적이고 재밌다. (수필집을 너무 자주 많이 내어 이제 그의 독자들은 그가 기상해서 취침하기까지 무슨일을 할 시간이고 어떤 장소에 가 있을 것이라는 걸 대부분 예상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그의 소설을 읽는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19금 장면이 꼭 있다는 거다. 성애의 묘사 한 장면 쯤은 그럴듯 하게 넣어 주어야 책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지!하는 걸 아는 사람이다. (하루키씨 이번엔 좀 약했어요.ㅎㅎ)


칭찬을 했으니 이젠 깔 차례!

(깐다는 게 뭘 알고 까는건 아니고 그냥 충실한 그의 독자로써 솔직한 감상평이라 생각하시면 되겠다.)

문장에 방점들이 지나치게 많다. 하루키 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작가가 의도한 바를 놓치지 말고 읽어 달라는 메세지이기도 해서 눈에 힘을 주어 읽었다. 이전에도 지금에도.

소설 흐름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늠 문장이기도 했고 새겨 두면 좋은 말이 될 수도 있겠구나..싶은 문장들이었지만, 이게 계속 눈에 힘을 주어 읽다 보니 피로감이 아주 그냥---노안 앞당기는데 이런 촉매제가 없구나 싶었다.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나, 지나친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 듯, 지나친 방점은 소설 흐름을 끊는데 일등공신이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해 주시길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는 무지랭이 독자가 감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앞서 얘기했듯,

이름만 다른 자기복제가 가능한 주인공들이 난무한다는 거다.

하루키를 쭈욱 읽어 온 독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기시감이 포진해 있다.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통로(우물인 경우가 많다), 평범하면서도 무기력해 보이나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공, 신비한 힘을 가진 평범하지않은 소녀이거나 여자, 재력과 재능을 겸비한 평범하지 않은 조력자, 이 세상과 환타지의 세상을 사력을 다해 오가지만 종래엔 그렇게까지 용 쓸 건 없었거만... 싶은 허무한 결말!

의지대로 행하는 자만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가르치고 교화하는 교훈적이지 않은 결말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아니면 말고 식의 허무감을 주는 결말들이다. 그를 정식으로 비평한 비평가의 말마따나 자신이 없어서인가 예술적인 승화를 위한 여백인가?  나도 궁금하다.


이제 정리다.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지만 하루키는 부인할 수 없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가 말했듯 비평가의 말은 냄새나는 마굿간 같은 거다. 일부러 그 냄새를 확인하려고 마굿간 문을 열 필요는 없다.

그는 그의 색채를 가졌고 그의 색채에 물든 사람은 실증날 때 까지 그 색채를 즐기면 된다.

좋은 소설을 쓰기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의 정도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독자다. 한 사람을 속이기는 쉬워도 여러 사람을 속이기는 어렵고 여러 사람을 동시에 속이기는 더 어렵다는 말처럼 독자층이 두껍다는 건 그가 심혈을 기울여 글을 쓰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화가들과 많이 만나고 그림 공부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달리기를 그만 두고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런 말만은 말아주시길...내가 당신을 좋아해 뭐라도 따라 하고 싶지만 그림엔 젬병이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페어 플레이어다.


'그냥 동그라미만 그리면 그게 내 얼굴이야, 쉬워!

잡풀 속 구덩이 속인가? 펭귄 열쇠고리를 돌려 주러 온 얼굴없는 사자의 목소리가 막 들리는 것 같다.

역시, 중독성 하나는 끝내 주는 하루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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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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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지만 소설같지 않아서 '소설이어서 참 다행이다'싶은 소설들이 있다.

너무 적나라해서 너무 생생해서 이걸 작가의 힘으로 봐야할지 경험에서 나온 묘사인지 헷갈려서 그렇다.

실화가 아닌데도 실화처럼 느껴져 불편해지는 소설, 그게 김이설의 소설들이다.


[나쁜 피]이후 나온 작가의 소설들을 쭈욱 읽어 왔다.

최근에 나온 [선화]에선 조금 완곡해졌긴 했지만 어느 때 나온 어느 여자의 이야기를 읽어도 삶의 지난과 신산이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처럼 어두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인격 따윈 애초에 없었고 몰상식과 파렴이 판치는 세상 한 가운데를 그녀들은 그녀들 방식대로 의연히 때론 비굴하게 살아간다.

누구에게 위로 받을 곳도 마땅찮고 도움 받을 곳은 더더욱 없는 온정의 사각지대에서 버티고 견디어 가는 삶들이다.

몰상식엔 몰상식으로 대처하고 파렴엔 더한 파렴으로 뒷통수를 친다. 이기는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 남는 놈이 이기는 놈이라는 게 전쟁터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라는 걸 김이설은 지독하고 질긴 여인들을 통해 말한다.

[환영]은  [나쁜 피]를 읽은 여운이 너무 진해 그 환영(幻影)을 지우기 위해 읽었던 책이었다.

결국 안질에 고춧가루 뿌린 격이 되고 말았지만.


남편은 공부하는 무직자, 장애를 가진 딸과 지지리 가난하고 제각각으로 돈이 필요한 병든 아버지와 동생들이 있는 서윤영은 남편 공부 바라지를 위해 왕백숙 집에서 일한다.

왕백숙 집이 도심에서 떨어진 호수 주변에 있음에도 손님이 끊기지 않는 이유는 백숙과 함께 몸을 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윤영은 백숙 집 남은 반찬을 덜어 오는 걸 묵인해 주는 것으로 백숙 사장과 관계를 갖고 그걸 알고 협박을 하는 사장 아들 앞에서도 치마를 걷고 돈만 준다면 누구와 하는 여자로 변해간다.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고 무슨 짓을 해도 돈은 남지가 않는 악순환의 생활고 앞에서.

악순환의 굴레에서도 윤영이 하는 말은 참는 건 누구보다 잘 하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각오다.

참고 견디어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굴레라면 좋겠는데, 지독하고도 고독한 윤영의 삶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불편하고 안쓰러웠다.


책 뒷 표지에 정이현 작가의 이 책에 대한 얘기가 글이 짧은 내 얘기를 대신해 주는 것 같다.


김이설의 그녀는 생에 대하여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기대도 절망도 없다. 어슬픈 환상도 어쭙잖은 환멸도 없다. 입구도 출구도 없이 끝없이 이어진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여자, 그러고 보니 언제 우리가 그 여자를 한번 눈여겨본 적이나 있었던가? 식당에서 마트에서 기계처럼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이는 여자, 들꽃도 풀꽃도 되지 못하는 여자, 낭만적 반동도 윤리적 각성도 할 틈이 없이 고단한 그 처자의 맨 얼글을. 그 여자는 적어도 비겁하지 않다.아무 데로도 도망치지 않는다 . 지독하고 또 지독하게, 여기 그 여자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준 작가의 진심을 나는 믿는다. -정이현(소설가)


책 안의 그녀들에게 빠지거나 작가 김이설에게 빠지거나 그게 그거다.

한 번 이 작가에게 혹은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빠지면 연달아 모두 찾아 읽게 된다.

아픔을 잊기 위해서 더 큰 아픔을 가지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위로가 힘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다시 말하지만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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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중학 수학 사전 - 중학 수학 3년, 개념을 꿰뚫는
심진경.EBS MATH 제작팀 지음, EBS 미디어 기획 / 가나출판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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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말이나 어휘가 나오면 사전을 찾곤했다. 그러면서 '아, 이게 이런 말이었구나' 깨닫고 문장에 숨은 뜻가 글을 이해하는 기쁨을 알아 갔던 것 같다. 그러나 수학을 공부하며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역시 나는 수학하곤 안 맞아' 슬며시 책을 덮었다.

그땐 이런말이 없어 사용하진 않았지만 나도 학창시절 수포자였다. 지금도 숫자만 보면 머리부터 아프다. 산수에서 딱 그친 내 숫자 개념이 아이한테까지 유전이 될 줄 몰랐다. 나는 바담풍으로 말해도 아이는 바람풍으로 따라 하길 바랬던 기대부터가 잘못되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이야!!

중학 3년 1학기가 끝나는 지금까지 수학 점수가 평균점수를 넘어 본 적이 없으니....ㅠ

내가 안되었던 걸 아이에게 강요하는 건 잘못된 보상심리라는 걸 알면서도 과외도 시켜보고 학원도 보내보고 인터넷 수강도 시켜봤지만 다 남 좋은 일만 시키지 않았나 싶다.

하느라 하지만 점수가 안나오니 자신감을 잃고 자신감이 없으니 할 의욕도 없어진 악순환의 계속이다.


다른 과목도 수학과 비슷하다면 아, 얘는 공부 기술이 없는 애구나 애먼한 고생 시키지 말고 하고 싶은 기술 교육으로 진로를 돌려야 겠구나 생각할 것인데 수학 빼곤 전과목이 상위권이니 더 속상하다.

초등학교땐 수학도 곧잘 해서 선행학습을 시키거나 학원을 하나도 보내지 않은게 후회 되기도 했지만 차근차근 따라 갈 줄 알았는데 음, 3학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중하위권이니....스스로도 수포자의 대열에 합류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다고 격려도 하고 학원도 보내고 있지만 아이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학창시절 수학을 못했을 때 개념의 이해 없이 문제만 풀어보려다 실패한 경험을 기억해 내고 수학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개념은 보면 알겠는데 문제를 풀다보면 응용에서 힘들어진다는 거였다.

보면 알겠는데 응용이 안되는 수학! 대략 난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 단어의 뜻을 알고 문장을 이해해 가는 기쁨을 알았듯이 수학도 개념을 확실히 알면 문제를 풀어 해답을 알아가는 기쁨을 알지 않을까 얘기하던 중 만난 책이 [중학 수학 사전]이다.

국어 사전은 당연히 있는 줄 알았지만 수학 사전이 있으리라 왜 생각을 못했는지 아이에게 미안하고 정보력 부족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개념을 꿰뚫는 중학 수학 사전이라는 제목답게 중학 수학의 모든 영역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쉬운 개념해석과 풀이의 예를 실어 수학적 사고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EBS에서 기획한 책이어서 믿음이 가고 기초가 부족한 우리 아이같은 학생들에게 기초적 수학 근력을 붙여 줄 수있는 책이었다.

쭉 훑어보던 아이도 개념정리와 예시된 문제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다는 평가였다. 수학의 영역도 다양해서 어떤 영역에선 자신이 있는데 어떤 영역은 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 답답한 적이 많았는데 이 책을 진작 알았다면 도움이 많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늦은 시작은 없고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걸 다시 강조하며 방학 동안 수학에 대한 애정을 되살리는 시간이 되자고 했다.


저자의 말처럼 매일매일 흥얼거릴 만큼 재밌지는 않아도 호흡하듯 자주 반복해 읽다보면 수학이 친근해지고 어느새 수학 곁으로 다가가 어깨동무하며 걸을 수 있는 친구가 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는 책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국어 개념이 떨어지면, 국어사전!

수학 개념이 떨어지면, 수학사전!

이제라도 만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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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기사단 추리파일 - 상징과 기호로 봉인된 중세 미스터리 150 추리파일 클래식 시리즈 5
팀 데도풀로스 지음, 임송이 옮김 / 보누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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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화책을 좋아한 탓인가?

동화 같은 삶을 꿈 꾼 탓인가?

중세시대 이야기는 로맨틱한 정서가 함께 흐르는것 같다. 중세 기사와 아름다운 여인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기승전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라는 같은 결말일지라도 우리가 아직 아이였을 때, 한 번쯤은 다들 읽어보고 들어 보았던 잠자는 숲속의 공주나 라푼젤같은 동화를 통해(그 양반들은 기사가 아니라 왕자였나?) 언젠가는 나를 잿빛 투성이 아궁이가 아닌 그 곳, 뾰족 지붕 위 깃발이 휘날리고 사시사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정원이 있는 성으로 데려 갈 백마 탄 기사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면 기사 이야기에서 쉬- 벗어나기란 힘들다.

어쩌자고 기사들은 하나같이 늠름하며 잘생기고, 용감하고도 친절하기까지 한 것인지.


내가 막연한 동경으로 알고 있는 일반?기사와 템플 기사단의 차이는 무엇일까? 막연한 호기심에 친절로 따지자면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네이버 친구에게 물어보니..

 '템플 기사단은 중세 십자군 전쟁 때 성지 순례자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서방 교회의 기사 수도회로 붉은색 십자가가 표시된 흰색 겉옷을 입었으며, 대부분 십자군전쟁의 격전지에서 활동하였다. 성전 기사단의 비밀 입단식에 대한 루머가 만들어지면서 이단으로 의심을 받아 체포당한 뒤, 고문을 통해 거짓 자백을 강요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1312년 클레멘스 교황은 결국 굴복하여 기사단에 해산령을 내렸다.'는 것이 요지다.

아, 이 양반들 삶도 파란만장 호락호락 하지 않았구나...잠깐 낭만의 장막을 올리고 경의와 애도를 표하게 되더라.


[템플 기사단 추리파일]은 기사들의 전쟁 이야기나 사랑 이야기와는 약간 거리를 둔 템플 기사들이 질곡과 신산의 세월을 건너는 동안 겪었을 만한 난제들을 이야기를 입혀 흥미로운 퍼즐과 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약간 시각을 달리하면 추리문제를 기사단의 몸을 빌려 풀어나가게 하는 형식이랄까?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결부시켜 문제를 풀어가는 구성이었다면 개인적인 취향에 더 맞았겠지만, 내가 구성한 책이 아니니 뭐...^^


 책 속의 문제들은 템플 기사단의 삶처럼 하나같이 만만한 게 없다.

그나마 쉽게 풀수 있었던 것이 틀린그림 찾기 정도다.

대수학, 기하학 문제부터 논리와 직관을 시험하는 문제까지 신중하고 세심하게 가려 모아 탐험을 통한 정신적 만족을 느끼게 하려 한다는 저자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문제를 풀어보면 알 수 있다.

창의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한 평범한 나 같은 사람에겐 아주 어려운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아, 이래 갖고 템플 기사단의 말 꽁무니나 따라 갈 수 있을런지 원...풀면서도 한심스러웠다.


 자, 어떤가? 답이 금방 나온다면 당신은 바로 기사단에 입단할 자격이 있는 걸로!^^


혼자서 풀다가 힘들어 아이와 함께 풀어 본 문제도 있고 둘 다 못 풀어 슬쩍 해답을 들추어 본 문제가 더 많았다.(다행이 해답이 실려 있어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그렇지만 뜬금없는 답도 있고 뭔가 봐도 이해가 안가는 답도 있었다.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만.)수수께끼같은 문제는 해답을 보면 이렇게 쉬운 문제를 몰랐다니 서로 어이없이 쳐다보며 허탈해 하기도 했지만, 기하학과  대수학이 가미된 문제는 해답을 보고도 뭥미? 했던 문제도 많았다.

웃으며 시작했다 죽도록 매달린 꼴이 되었다.

그러나, 한 문제 한 문제를 풀어 나갈 때 마다 수수께끼를 통해 기사단의 암호와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기쁨은 분명 있었다.

자신없는 문제는 제쳐두고 우리가 잘 풀 수있는 문제 먼저 풀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 여기며 풀다보니 은근 중독!

 실린 그림이 이국적이라 외국 동화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든 것도 재미있었다.

 

그저저나 템플 기사단 이양반들 이단으로 의심받고 거짓자백을 강요당해 화형해 처해진 것도 모자라 해산당했다니...

이런 퍼즐로 나마 그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행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휴가지에 가져가서 핸드폰에만 머리를 박고 있는 아이들에게 건네주며 문제를 풀게 하면 창의력도 길러지고 대화도 풍부해 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문제가 어려워 성질 급한 아이들은 책을 던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음도 넌지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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