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 모든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스칼릿 커티스 지음, 김수진 옮김 / 윌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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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엄마가 케이블 방송을 통해 「보고 또 보고」라는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었다. 이 드라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 방영했던 드라마로, 당시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본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드라마였다. 벌써 22년 전이라니, 세월이 느껴지면서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드라마를 보았다. 유행이 한참 지난 헤어스타일과 화장도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이 드라마는 지금 다시 보기에는 불편한 점이 너무도 많았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 상황, 아버지와 남동생의 식사를 챙겨주어야 했던 자매, 결혼 후에는 당연히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던 여성과 '시집살이'란 다 그런 거라며 사소한 것들로 트집을 잡아대며 괴롭히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모습. 이 드라마가 방송되던 98년도에는 이 모습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 모습이 너무도 불편한 지난 세대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우리 뇌리에는 꼬꼬마 때부터 여자아이들은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온갖 파괴적인 메시지가 주입되었다. 그 대부분은 여성들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수용할 수 있는 강하고 통합적이며 즐거운 여성들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부디 명심할 것이 있다. 당신은 당신이 존경하는 다른 누구만큼 드넓고 다채로운 내면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중에서

내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네이버 책문화에 소개된 한 카드 뉴스를 통해서였다. 출산 7시간 만에 풀 세팅한 모습으로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은 영국 왕세자비에 대해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의 글이었다. 인류에게 '출산'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일이기에 '우리의 고통, 찢어지는 몸, 젖이 새어 나오는 가슴, 걷잡을 수 없는 호르몬을 모두 감춰야' 했던 외적으로 포장된 여성의 몸에 대하여. 그리고 떠올렸다. 출산할 때 고통에 몸부림쳐도 자연 분만이 좋다며 제왕절개를 끝까지 반대했던 시어머니와 남편의 이야기를 하던 내 친구들의 목소리를. 여성의 몸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자라오면서 수많은 불합리한 상황들에 처한 적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몰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면서부터 그 불편함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 모두 각자의 성별에서 관습적으로 배우고 습관적으로 행해온 수많은 불평등의 모습이 있을지 모른다. 그것을 인지하느냐, 인지하지 못하느냐가 앞으로의 우리의 삶을 바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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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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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를 비하하는 단어가 놀림거리로 사용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보통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아파트 브랜드를 따서 '휴거지(휴먼시아 거지)', 빌라에 사는 아이들을 '빌거지(빌라 거지), 혹은 주택 소유 형태에 따라 전세는 ‘전거지’, 월세는 ‘월거지’로 불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부모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아이들에게만 존재할까? 최근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파크뷰자이’의 경우 일반가구가 사는 동과 임대가구가 사는 동 사이에 출입문 없는 높은 벽을 설치함으로써 임대가구 주민들이 다른 동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러한 행동과 태도를 어른들에게 배웠음이 틀림없다.

최근 지인은 오랫동안 청약 저축에 저금하여 임대 아파트에 당첨되었는데, 축하의 말에 걱정어린 말을 쏟아냈다. 이제 곧 학교에 입학할 아이가 혹시나 임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지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임대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동안 돈을 더 모을 수 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무리하게 대출을 받더라도 다른 아파트로 가야할 것 같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대부분 결혼하지 않은 직장 동료들은 '나라면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라는 반응이었다. 수많은 학원을 다니게 하기보다는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임대 아파트에 살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게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3학년 8반 남토. 아이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게 남일동 토박이의 준말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하고,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따져 물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가 남일동에서 중앙동으로 온 것이 아니고, 중앙동에서 남일동으로 온 경우였다고 해도 그 애들이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까 나는 그 당시에는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p.100)

『불과 나의 자서전』의 '나'는 태어나 오랫동안 달동네 남일동에 살았다. 부모는 경매를 통해 내집 마련을 하고 남일동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행정 편입상 남일동의 일부가 부촌인 중앙동으로 변경되며 중앙동의 주민이 된다. 내 부모는 원래 중앙동에 살았던 듯 남일동에 살았던 시절을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학창 시절학교 친구들로부터 남토(남일동 토박이)라 불리며 은근한 멸시의 눈총을 받았다. 졸업 후 여행사에 취직한 작은 회사에서 운좋게 입사한 동료가 따돌림을 당하자 이를 변호하며 함께 해주었으나, 그가 퇴사하자 동료들의 따돌림은 자신에게 향하고 견디다 못해 퇴사한다. 그즈음 남일동으로 이사 온 주해와 그녀의 딸 수아를 우연히 만난다.

주해와 수아는 남일동 달산 아래 낡은 집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을 놓고 마을버스를 들여오며 남일동에 잘 적응하고자 한다. 나는 남일동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삶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내는 그들을 보며 자신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수아는 남일동 아이는 학부모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중앙 초등학교로 배정되지 못하고, 어렵게 입학 후에는 남민(남일동 난민)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해는 수아를 어떻게 키우고 싶었을까? 남일동 달산 아래 살아도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을 세우고 마을버스를 들여온 것처럼 부족한 것들은 하나씩 채워가고 바꿔가면서 성장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학부모들도 과거에는 내 친구들처럼 '나라면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라며 기성 세대를 비판하고, 어떻게 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지 고민하지 않았을까? 결국 주해가 남일동 재개발 사업에 집착하며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벌버둥을 치게 된 것은 우리의 편견과 배제가 만들어낸 절박한 욕망인지 모른다.

지금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만들어낸 욕망의 결과물이다.

"여기 사는 한 그런 마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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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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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이탈리아-중국 청년협회'(UGIC) 페이스북 계정에 한 남성이 'Je Ne Suis Pas un Virus(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옆에 두고 '1인 시위'를 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아시아계 혐오 정서는 이탈리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계 중국인 루첸광은 트위터를 통해 "저는 중국인이지만 바이러스는 아닙니다! 모두가 바이러스를 무서워하는 건 알지만 제발 편견을 없애주세요."라는 문구를 올렸고, 이후 인종차별과 혐오에 항의하기 위해 SNS에서 'Je Ne Suis Pas un Virus(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후 유럽에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며 이탈리아가 확진 및 사망자 수 2위를 기록하자 사람들은 #PrayforItaly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아시아에서의 확산과 유럽 내 확산에 대해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199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은 미국 내에서 영향력이 커져가자 미국의 주류 사회는 생색을 내며 "백인에 대한 책은 언제 쓰실 건가요? 어째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쓰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다. 때로는 '중심부'의 백인들이 "당신은 글을 꽤 잘 씁니다. 원한다면 중심으로 올 수 있을 겁니다. 주변에 머물 필요가 없어요."라며 회유했다.⠀


더불어 토니 모리슨은 "우리는 훨씬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바란다"고 말하는 흑인 독자들과도 여러 번 마찰을 겪었다. 토니 모리슨은 말했다. "누구를 위한 긍정적인 이미지일까?" 독자들이 그런 질문을 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타자, 주류, 백인 세상이라는 것. 토니 모리슨은 그런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p.163)


코로나19로 느꼈던 인종 차별에 대하여 무력감을 느끼던 중 토니 모리슨의 일화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토니 모리슨은 당당하게 '주변부에 머물며 중심부인 당신들이 나를 찾게 만들겠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그가 느끼던 현실에 대한 자조가 아닐 수 없다. 여성이라는 것, 아시아인이라는 것, 백인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주류'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주류가 아닌 것들을 향한 차별은 당연시되었고,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 모욕적인 발언들 또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토니 모리슨, 도리스 레싱, 마거릿 애트우드, 프리다 칼로…… 내가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일은 즐겁다. 이들은 태어난 시기도, 살았던 장소도, 쓴 글의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여성'이란 어떠해야 한다는 편견과 여성의 글은 허영에 들뜬 취미에 불과하다는 무시에 맞서 가장 나다운 나로 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결혼, 임신, 출산, 양육, 돌봄 노동, 배우고 싶지만 학교에 가지 못했고, 출중한 능력을 갖추었지만 직업을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그 시기에 이들에게 '쓰고 싸우고 살아남는' 행위는 주류가 아닌 스스로가 각자 세상에 맞서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들이 남긴 생각과 철학, 삶은 기록되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기에. 내가 비주류임을 마주할 때마다 무력해질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주류의 세계와 맞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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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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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에서 만큼은 믿고 구매하는 김화영 번역가, 김화영 번역가는 카뮈 전공자에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도 받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최고의 번역가입니다. 카뮈의 작품을 다 좋아히만 지금 현 시대를 돌아보기에는 이만한 책이 없네요.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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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조의 말 - 영어로 만나는 조의 명문장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공보경 옮김 / 윌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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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매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학교에서는 '장래희망'을 적어서 제출하도록 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해보고 싶고 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학생이었다. 그때마다 오랜 내 단짝 친구는 자신의 장래희망을 '현모양처'라고 적었다. 어느 날은 진지하게 물었다. "정말 현모양처가 되고 싶어?" 그러나 친구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잘 양육하는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당시 장래희망을 '현모양처'라고 적어내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여전히 주도적으로 전문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여자는 많지 않았고, 맞벌이를 하는 여성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편 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탓에 결혼 후 직업을 유지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자유롭고 자유분방했던 엄마는 집안일만 도맡아 하는 것을 답답해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아빠는 "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부족하냐!"는 말로 경제활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작은 아씨들》 중에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조 마치는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여성이 등장하면 꼭 결혼으로 글을 마치라'는 말을 듣는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성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야 행복한 마무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대사를 듣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온 동화의 결말들은 늘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마무리 되었고, 신데렐라가, 백설공주가 행복해졌다는 사실이 늘 기뻤다. 우리가 자라오면서 얼마나 많은 암시들을 통해 여성들의 행복이 '결혼'으로 귀결되었는지 알 수 있다.


"저는 모든 걸 혼자 힘으로,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해내고 싶어요."

I’d rather do everything for myself, and be pefectly independent. (p.137)


어릴 때부터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이나 닮고 싶은 어른들의 모습을 곧잘 따라했다. 그 중 동화로 읽었던 《작은 아씨들》 속 '조 마치'는 내가 닮고 싶었던 언니 중 한 명이었다. "너희가 짊어져야 할 작은 짐에 대해 조언을 해줄게. 때로는 짐이 버거울 때도 있겠지만, 짐은 우리에게 유익한 거야. 짊어지는 방법을 깨달으면 점점 가볍게 느끼게 돼." 라고 조언해주는 사람, 삶을 진지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 내 기억 속 '조 마치'는 내가 닮고 싶어하는 모습을 지닌 사람이었다.


나는 이미 몸도 마음도 성인이 되었지만 때때로 꿈과 이상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 힘들 때, 철없다고 평가하는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고 위축될 때,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로 '자기답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작은 아씨들, 조의 말》을 읽는 동안, 시종일관 당차고 씩씩하던 조 마치를 머릿속에 그리며 나또한 씩씩하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래서 언젠가 힘든 날이 찾아올 때를 위해, 늘 나답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고 느끼도록 ‘조의 말’ 하나하나를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넌 세상에 맞춰 살아. 난 세상의 모욕과 야유를 즐기면서 내 뜻대로 신나게 살 거니까."

You will get on the best, but I shall have the liveliest time of it. I should rather enjoy the brickbats and hooting, I think.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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