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헤이트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최인철 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평점 :
이 책을 읽는 동안, 치열하게 내 안의 편견들과 싸워야 했음을 고백한다. 문화에 우월함과 저급한 것이 없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 문화적 차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싶기도 했고, 그들 모두의 생각이 같지는 않아도 다수는 같기 때문에 똑같이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고 싶기도 했다.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는 '혐오'를 주제로 심리학, 법학, 미디어학, 역사학, 철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자들이 APoV 컨퍼런스에서 Bias, by us(우리에 의한 편견)에 대해 강연과 토론한 내용을 엮었다. 이 책을 읽고 컨퍼런스 영상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고, '혐오'에 관한 다른 강연들과 기사들도 살폈다. 평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혐오'라는 주제, 그리고 내 마음 안에 혐오심과 정직하게 마주하고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에서 아시안 혐오가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코로나19가 '차이나 바이러스'라며, 이 모든 책임이 중국에 있다고 수차례 발언했다. 전염병으로 인하여 우리의 많은 일상은 불편을 겪었고, 많은 것을 바꾸었으며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들이 죽거나 직장이나 사업장을 잃어 고통을 겪었을지 모른다. 언제 나아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자신이 억울하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억울함은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대상을 찾아 비난하고 싶게 한다. 이러한 일은 역사적으로 늘 반복되어 왔다.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우물에다 독을 타서 페스트가 번졌다고 믿었다. 이후 19세기 미국에서 천연두가 유행하자 그 원인을 중국인으로 지목하였고, 스페인 독감이 퍼져나갈 당시에도 외국인과 이주자들로 인하여 전염병이 퍼졌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는데, '혐오'는 대부분 국가, 정치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혐오로부터 누가 이득을 취하고 누가 이런 혐오를 공급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들이나 권력자들은 자신들에게 향하고 있는 분노를 이용할 때,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스페인 독감 이후 퍼트려진 외국인에 대한 혐오는 나치 정권의 발판이 되었고, 현재 유럽 복지국가로서의 위기와 불안은 이주자나 난민, 무슬림 혐오로 둔갑되었으며, 트럼프는 백인 남성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성별, 인종,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퍼트려 지지를 얻기도 했다. 대부분의 혐오는 만들어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도 스스로 계속 넘지 못했던 혐오는 '무슬림'에 대한 혐오였다. 과거 IS 무장단체에 의해 한국인이 참수되었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갔던 파키스탄은 여성 혼자서는 대문 밖을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곳이었고, 거리에는 남자들만이 거닐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야샤르 케말의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에는 납치혼과 명예살인이라는 전통에 희생되는 인물들이 등장했고, 결혼을 거부한 소녀를 가족들이 죽이는 명예살인을 여전히 최근 기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문화는 그저 다를 뿐이라지만, 이렇게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대부분의 혐오가 만들어진 것이라면 의도적으로 퍼트려진 모습이 아니라 진짜 모습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속해있는 많은 집단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 내 뿌리인 안동 김씨, 내가 학업한 대학, 내가 근무하고 있는 출판사, 지금 내가 거주하고 있는 종로 등등. 그렇지만, 내가 속한 집단이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듯이 내가 혐오하는 대상 또한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들이 태어난 나라, 그들의 종교, 그들의 직업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듯. 그래서 좁은 의미의 집단 정체성에 우리 자신을 가두는 것을 지양할 필요가 있고, 보편적 인류애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시간되시면 유튜브 강연도 보셨으면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