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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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이탈리아-중국 청년협회'(UGIC) 페이스북 계정에 한 남성이 'Je Ne Suis Pas un Virus(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옆에 두고 '1인 시위'를 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아시아계 혐오 정서는 이탈리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계 중국인 루첸광은 트위터를 통해 "저는 중국인이지만 바이러스는 아닙니다! 모두가 바이러스를 무서워하는 건 알지만 제발 편견을 없애주세요."라는 문구를 올렸고, 이후 인종차별과 혐오에 항의하기 위해 SNS에서 'Je Ne Suis Pas un Virus(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후 유럽에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며 이탈리아가 확진 및 사망자 수 2위를 기록하자 사람들은 #PrayforItaly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아시아에서의 확산과 유럽 내 확산에 대해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199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은 미국 내에서 영향력이 커져가자 미국의 주류 사회는 생색을 내며 "백인에 대한 책은 언제 쓰실 건가요? 어째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쓰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다. 때로는 '중심부'의 백인들이 "당신은 글을 꽤 잘 씁니다. 원한다면 중심으로 올 수 있을 겁니다. 주변에 머물 필요가 없어요."라며 회유했다.⠀


더불어 토니 모리슨은 "우리는 훨씬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바란다"고 말하는 흑인 독자들과도 여러 번 마찰을 겪었다. 토니 모리슨은 말했다. "누구를 위한 긍정적인 이미지일까?" 독자들이 그런 질문을 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타자, 주류, 백인 세상이라는 것. 토니 모리슨은 그런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p.163)


코로나19로 느꼈던 인종 차별에 대하여 무력감을 느끼던 중 토니 모리슨의 일화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토니 모리슨은 당당하게 '주변부에 머물며 중심부인 당신들이 나를 찾게 만들겠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그가 느끼던 현실에 대한 자조가 아닐 수 없다. 여성이라는 것, 아시아인이라는 것, 백인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주류'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주류가 아닌 것들을 향한 차별은 당연시되었고,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 모욕적인 발언들 또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토니 모리슨, 도리스 레싱, 마거릿 애트우드, 프리다 칼로…… 내가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일은 즐겁다. 이들은 태어난 시기도, 살았던 장소도, 쓴 글의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여성'이란 어떠해야 한다는 편견과 여성의 글은 허영에 들뜬 취미에 불과하다는 무시에 맞서 가장 나다운 나로 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결혼, 임신, 출산, 양육, 돌봄 노동, 배우고 싶지만 학교에 가지 못했고, 출중한 능력을 갖추었지만 직업을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그 시기에 이들에게 '쓰고 싸우고 살아남는' 행위는 주류가 아닌 스스로가 각자 세상에 맞서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들이 남긴 생각과 철학, 삶은 기록되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기에. 내가 비주류임을 마주할 때마다 무력해질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주류의 세계와 맞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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