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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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를 비하하는 단어가 놀림거리로 사용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보통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아파트 브랜드를 따서 '휴거지(휴먼시아 거지)', 빌라에 사는 아이들을 '빌거지(빌라 거지), 혹은 주택 소유 형태에 따라 전세는 ‘전거지’, 월세는 ‘월거지’로 불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부모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아이들에게만 존재할까? 최근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파크뷰자이’의 경우 일반가구가 사는 동과 임대가구가 사는 동 사이에 출입문 없는 높은 벽을 설치함으로써 임대가구 주민들이 다른 동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러한 행동과 태도를 어른들에게 배웠음이 틀림없다.

최근 지인은 오랫동안 청약 저축에 저금하여 임대 아파트에 당첨되었는데, 축하의 말에 걱정어린 말을 쏟아냈다. 이제 곧 학교에 입학할 아이가 혹시나 임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지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임대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동안 돈을 더 모을 수 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무리하게 대출을 받더라도 다른 아파트로 가야할 것 같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대부분 결혼하지 않은 직장 동료들은 '나라면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라는 반응이었다. 수많은 학원을 다니게 하기보다는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임대 아파트에 살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게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3학년 8반 남토. 아이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게 남일동 토박이의 준말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하고,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따져 물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가 남일동에서 중앙동으로 온 것이 아니고, 중앙동에서 남일동으로 온 경우였다고 해도 그 애들이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까 나는 그 당시에는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p.100)

『불과 나의 자서전』의 '나'는 태어나 오랫동안 달동네 남일동에 살았다. 부모는 경매를 통해 내집 마련을 하고 남일동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행정 편입상 남일동의 일부가 부촌인 중앙동으로 변경되며 중앙동의 주민이 된다. 내 부모는 원래 중앙동에 살았던 듯 남일동에 살았던 시절을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학창 시절학교 친구들로부터 남토(남일동 토박이)라 불리며 은근한 멸시의 눈총을 받았다. 졸업 후 여행사에 취직한 작은 회사에서 운좋게 입사한 동료가 따돌림을 당하자 이를 변호하며 함께 해주었으나, 그가 퇴사하자 동료들의 따돌림은 자신에게 향하고 견디다 못해 퇴사한다. 그즈음 남일동으로 이사 온 주해와 그녀의 딸 수아를 우연히 만난다.

주해와 수아는 남일동 달산 아래 낡은 집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을 놓고 마을버스를 들여오며 남일동에 잘 적응하고자 한다. 나는 남일동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삶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내는 그들을 보며 자신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수아는 남일동 아이는 학부모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중앙 초등학교로 배정되지 못하고, 어렵게 입학 후에는 남민(남일동 난민)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해는 수아를 어떻게 키우고 싶었을까? 남일동 달산 아래 살아도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을 세우고 마을버스를 들여온 것처럼 부족한 것들은 하나씩 채워가고 바꿔가면서 성장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학부모들도 과거에는 내 친구들처럼 '나라면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라며 기성 세대를 비판하고, 어떻게 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지 고민하지 않았을까? 결국 주해가 남일동 재개발 사업에 집착하며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벌버둥을 치게 된 것은 우리의 편견과 배제가 만들어낸 절박한 욕망인지 모른다.

지금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만들어낸 욕망의 결과물이다.

"여기 사는 한 그런 마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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