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사이 북멘토 가치동화 58
박슬기 지음, 해마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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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이름을 가진 단짝인 두 소녀가 우정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이야기이다. 단짝이었던 이 두 소녀가 멀어지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가을이는 단짝 친구라면 일거수일투족을 알아야 하고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신중한 성격이기에 친구를 만들면 그만큼 오래간다. 하지만 여름이는 이제는 다른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한다. 실은 자신과 취향이 달랐던 가을이와 지내며 자신의 다른 생각들이 숨을 못 쉬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여름에서 가을이 되기 전, 여름 방학부터 둘 사이는 틀어진다. 일방적인 여름이의 선언으로 가을이는 내내 여름이가 사과해오길 기다리다 자신도 친구를 만들어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러다 여름이가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편지를 학교에서 받으면서 이야기는 끝을 알 수 없어진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친구가 중요해지는 건 부모로부터 더 넓은 사회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이다. 나의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주는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기에 용기를 내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친구를 사귀면서 그동안 옳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도 한다. 비록 처음에는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우정이라는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 간다. 그 과정에서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상처받는 것은 자연스럽다. 여름이와 가을이가 서로에게 잘못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우정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걸 천천히 깨달았을 뿐이다.

이야기의 중간 즈음에 이르러서 여름이가 아빠와 대화를 나눌 때가 기억난다. 여름이의 아빠는 여름이와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며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말해준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닿지 않는 것을 보여주며 만약 저 정도의 간격이 없을 정도로 사이가 너무 가까워질 때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가까워진다면 서로를 찌르고, 햇살도 가려주게 될 거라고. 그리고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라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바람도 함께 맞고 잎들도 함께 키우는 것이 좋은 거라고 말이다.

가을이는 우정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다. 나 역시 친구 사이에 ‘거리’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친구라면 뭐든지 이해하고, 취향도 같길 원했다. 가족 이외에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가까지 지내고 싶었다.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어느새 환히 웃으며 여름이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다른 곳으로 뛰어가는 가을이의 뒷모습에서 의연하게 잘 극복한 아이의 성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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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장 클로드 카리에르.다니엘 비뉴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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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방탕한 아들'의 귀향을 무척 기꺼워했다. 여태껏 마을에서 벌어진 축제 가운데 이만한 축제는 없었다. - 59p

고등법원 판사 코라스는 이런 마법 이야기 따위는 시간 낭비라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오직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법원은 진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 195p

-장 클로드 카리에르 <마르탱 게르의 귀향>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 황제 하드리아누스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 철학자 에픽테토스


1560년 프랑스의 시골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은 세기의 재판이 벌어졌다. '마르탱 게르'라는 한 남성을 둘러싼 재판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마르탱 게르는 어린 시절 소심했던 성격이었고 다른 마을 사람들의 놀림에 수치심으로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떠난 마르탱 게르가 8년여 만에 고향에 나타났다. 그를 제일 처음 본 이들이 '마르탱 게르'라고 불렀다. 그는 호기심이 동해 장난을 쳐 보자는 생각에 잠시 전장에서 만났던 진짜 마르탱 게르를 떠 올리며 그 인척 행동하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진짜 '마르탱 게르'라고 믿었다. 그가 떠나기 전보다 훨씬 건강해지고, 소탈해지고, 활기차졌지만 그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전의 마르탱 게르보다 더 멋진 남성이 되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평화로운 분위기는 3년 정도가 지난 후 그가 '가짜'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모두가 한결같이 그를 진짜라고 믿었지만 차츰 사람들은 조금씩 그를 의심했다. 그 의심은 피에르 게르(마르탱 게르의 숙부)와의 마찰이 도화선이 되어 터진다. 이제 이 작은 마을에서의 사건은 툴루즈의 고등 법원 판사 장 드 코라스에 의해 재판에 올려지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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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가 진짜 혹은 가짜라고 '증거'를 대며 자신의 생각을 변호한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의 아내 베르트랑드의 진심에 모두의 눈길이 멈춘다. 그를 남편이라고 말하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책에 빠진 독자는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무조건 진실인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우리는 객관적인 시선에서 읽기에 금방 사실을 알아챈다. 하지만 그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과 베르트랑드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 속과 달라진 모습, 행동들이 어쩌면 이전의 진짜 '마르탱 게르'보다 좋았기 때문에 의심이 드는 마음을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가짜라는 소문이 돌아도 모두가 바로 믿지 않은 것은 마을의 평화가 깨지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

책이 끝나고 옮긴이의 말 서두에 적힌 저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문답처럼, 사람들이 진정 볼 수 없는 것은 누구나 간절하게 보고 싶어 하던 마음과 생각이다. 베르트랑드는 남편이 진짜가 아님을 알았더라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를 탓할 수 없다. '그대가 만약 베르트랑드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가. 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믿어야 할까.

우리가 진짜 모습이라고 믿는 정체성들이 있다. 그 정체성들이 나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그 정체성이 남들의 눈에 비치고 나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정체성을 꾸며내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나의 본모습과 그 보이는 정체성의 차이가 적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들의 속마음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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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기쁨 기쁨 시리즈 1
김용만 지음 / 달로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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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기다렸습니다. 자연에 대한 애정이 담긴 에세이들이 담겨 있을까요? 혹은 삶에 대한 애정이요? 무엇이든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시인의 글에 호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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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츄 -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암실문고
발튀스.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윤석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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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찾는 것. 잃는 것. 상실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상실이란 단순히 자신이 짐작하지도 못했던 기대를 막 충족했던 그 관대한 순간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한 순간과 상실 사이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는데, 조금 어설프긴 하지만 그걸 소유라고 칭해야 하겠군요.

그런데 상실이 아무리 잔인한 것이라 해도, 상실은 소유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상실은 소유의 끝입니다. 상실은 소유를 확인해 줍니다. 결국 상실이란 두 번째 소유일 뿐이며, 그 두 번째 소유는 아주 내적인 것이며, 첫 번째와는 다른 식으로 강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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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세요:저는 그대로 저이며, 발튀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상은 무척 견고하죠. 다만 고양이가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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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서문 중에서

많은 작가들이 사랑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서문이 있다기에 '무조건 이건 읽어야 해!'라며 이 책을 고대하며 기다렸지요. 진한 에메랄드 색깔을 배경으로 하고 까만 판화 같은 그림만이 표지에 있을 뿐이었고, 작은 이 책을 감싼 종이에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쓰여 있어요. 살짝 넘겨본 책의 내지에는 작은 판화 그림들이 설명 없이 한 페이지에 한 개씩 새겨져 있을 뿐이었어요. 그리고 앞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서문이 여러 장에 걸쳐서 쓰여 있었지요. 서문을 읽고 나서야 릴케가 왜 서문을 적었는지, 애정이 왜 그리 듬뿍 담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천천히 넘겨보는 그림은 이제 그냥 그림을 넘어서서 까만 그림이지만 발튀스의 모습을 같은 눈높이로 하려고 마음의 눈높이를 맞추게 되었죠.

발튀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발타사르가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고양이 미츄를 집에 데려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모습들을 판화로 새겼어요.

어린아이였던 발튀스는 우연히 만난 고양이 미츄를 데리고 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였어요. 미츄의 모습을 아버지는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였고 미츄가 장난을 쳐서 집안이 난장판이 되기도 하는 모습은 웃음이 지어지게도 하죠. 하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이 발튀스앞에 다가왔던 거예요. 그 이별은 '상실'의 또 다른 한 모습이고 그런 상실은 소유의 또 다른 끝이라고 릴케는 이야기하죠. 릴케는 그에게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발튀스의 마음을 온전히 들어줄 수 있는 이었던 것 같아요. 발튀스가 열 세 살에 드로잉 집 <미츄>를 출간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죠.

상실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생각보다도 '상실' 다시 곁에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강하게 와닿습니다. 막연함에서 이제는 마치 그 상실이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두려움마저 드는 거지요. 그럼에도 그 순간은 찾아오고야 맙니다. 의연해질 수는 없을 거예요. 그 상실을 마주함에 있어서는 쉽게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오기도 힘들겠지만, 여전히 상실 후에 존재한다는 것. 더 견고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에서 또 다른 위안과 안도의 한숨을 내어 봅니다.

생각보다 자주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아요. 미츄가 장난을 치는 모습이나 아픈 발튀스의 머리맡에서 걱정스레 바라보는 모습, 발튀스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는 모습들이 쉽게 잊히지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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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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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작가의 글이에요.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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