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게르의 귀향
장 클로드 카리에르.다니엘 비뉴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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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방탕한 아들'의 귀향을 무척 기꺼워했다. 여태껏 마을에서 벌어진 축제 가운데 이만한 축제는 없었다. - 59p

고등법원 판사 코라스는 이런 마법 이야기 따위는 시간 낭비라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오직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법원은 진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 195p

-장 클로드 카리에르 <마르탱 게르의 귀향>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 황제 하드리아누스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 철학자 에픽테토스


1560년 프랑스의 시골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은 세기의 재판이 벌어졌다. '마르탱 게르'라는 한 남성을 둘러싼 재판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마르탱 게르는 어린 시절 소심했던 성격이었고 다른 마을 사람들의 놀림에 수치심으로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떠난 마르탱 게르가 8년여 만에 고향에 나타났다. 그를 제일 처음 본 이들이 '마르탱 게르'라고 불렀다. 그는 호기심이 동해 장난을 쳐 보자는 생각에 잠시 전장에서 만났던 진짜 마르탱 게르를 떠 올리며 그 인척 행동하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진짜 '마르탱 게르'라고 믿었다. 그가 떠나기 전보다 훨씬 건강해지고, 소탈해지고, 활기차졌지만 그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전의 마르탱 게르보다 더 멋진 남성이 되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평화로운 분위기는 3년 정도가 지난 후 그가 '가짜'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모두가 한결같이 그를 진짜라고 믿었지만 차츰 사람들은 조금씩 그를 의심했다. 그 의심은 피에르 게르(마르탱 게르의 숙부)와의 마찰이 도화선이 되어 터진다. 이제 이 작은 마을에서의 사건은 툴루즈의 고등 법원 판사 장 드 코라스에 의해 재판에 올려지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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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가 진짜 혹은 가짜라고 '증거'를 대며 자신의 생각을 변호한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의 아내 베르트랑드의 진심에 모두의 눈길이 멈춘다. 그를 남편이라고 말하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책에 빠진 독자는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무조건 진실인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우리는 객관적인 시선에서 읽기에 금방 사실을 알아챈다. 하지만 그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과 베르트랑드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 속과 달라진 모습, 행동들이 어쩌면 이전의 진짜 '마르탱 게르'보다 좋았기 때문에 의심이 드는 마음을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가짜라는 소문이 돌아도 모두가 바로 믿지 않은 것은 마을의 평화가 깨지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

책이 끝나고 옮긴이의 말 서두에 적힌 저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문답처럼, 사람들이 진정 볼 수 없는 것은 누구나 간절하게 보고 싶어 하던 마음과 생각이다. 베르트랑드는 남편이 진짜가 아님을 알았더라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를 탓할 수 없다. '그대가 만약 베르트랑드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가. 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믿어야 할까.

우리가 진짜 모습이라고 믿는 정체성들이 있다. 그 정체성들이 나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그 정체성이 남들의 눈에 비치고 나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정체성을 꾸며내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나의 본모습과 그 보이는 정체성의 차이가 적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들의 속마음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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