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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티 아줌마의 죽음
낸시 애서턴 지음, 이현경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이혼 뒤 힘겹고 우울한 삶을 살아가던 로리 셰퍼드에게 법률 회사의 편지가 날아든다.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동화 속 주인공 디미티 아줌마의 부고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디미티 아줌마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진 로리는 법률 회사를 찾아간다.
변호사 윌리스에게 디미티 아줌마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로리는
디미티 아줌마의 유언에 따라 영국의 한적한 마을 핀치에 있는 시골집에 한 달간 머물며
디미티 아줌마와 엄마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고 그 안에 담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로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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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화사하게 꾸며진 시골집,
오래된 편지 속에 담긴 2차 대전 말기를 살았던 두 여자의 우정과 미스터리,
그리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잔잔한 판타지 등
여러 가지 코드가 온기를 머금은 채 버무려져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로리가 부여받은 미션은 쉬운 듯 보이지만 사실 무척 까다로운 일입니다.
디미티 아줌마는 자신의 이름으로 펴내려는 동화책의 머리말을 써달라는 부탁을 남겼고,
(그를 위해 동화책의 원전이나 다름없는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엄마는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 폐인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던 디미티 아줌마가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사진 한 장과 함께 남겼습니다.
로리가 가장 사랑했던, 하지만 이젠 고인이 된 ‘두 여자의 과거’를 소환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디미티 아줌마의 부탁은 그냥 부탁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던 시골집에 머무르라고 한 것은 그 안에 로리가 찾아야 할 단서가 있다는 뜻이고
편지를 제대로 읽어야 쓸 수 있다는 동화책 머리말 역시
편지 속에 담긴 ‘행간의 비밀’을 알아내라는 일종의 암시가 내포돼있습니다.
그 단서와 비밀을 쫓던 로리는 엄마가 궁금해 하던 디미티 아줌마의 과거를 조금씩 알게 되고
궁극의 정답을 찾기 위해 디미티 아줌마의 시골집과 인근의 멋진 언덕들,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공습을 겨우 피한 런던의 유서 깊은 곳들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리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의문의 현상과 연이어 만나기도 하고,
낭만과 참화가 공존했던 2차 대전 말기의 런던의 향수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 새삼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에 젖거나 궁핍한 처지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성장을 겪기도 합니다.
물론 영국까지 동행한 변호사 윌리스의 아들 빌과 로코 풍의 소동도 한몫 거들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잘 버무려진 탓에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들에겐 좀 답답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영국으로 떠나는 대목이 거의 작품 중반쯤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로리의 상황과 미션 설명이 충분히 필요하긴 했지만 메인 요리가 너무 늦게 나온 기분이랄까요?
또, ‘로리의 미션은 정확히 뭔가?’라는 점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의문인데,
디미티 아줌마와 엄마가 남긴 미션이 딱 떨어지는 구체적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 읽은 뒤엔 어느 정도 그 모호함이 이해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읽는 도중에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저만의 경험은 아닐 거란 생각입니다.
살인사건만 없을 뿐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이후 로리와 디미티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한 23편의 시리즈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승과 저승에 사는 두 여자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데
‘디미티 아줌마의 죽음’이 선전한다면 몇 편 정도의 후속작은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코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강력한 추천을,
정통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다른 분들의 서평도 참고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