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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2022년 10월 19일,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 교황이 선종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118명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예배당에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에 들어간다. 그들은 모두 성인(聖人)들이다. 동시에 야망이 있는 남자들이다. 그리고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차기 교황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추기경은 모두 네 명. 각각의 경쟁자들은 저마다 지원 세력이 있고 강점과 약점 또한 갖추고 있다. 그리고 72시간이 지나면 그들 중 오직 한 명만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가 될 것이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교황은 신성, 평화, 중립,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교황의 선출’은 신탁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로버트 해리스가 ‘콘클라베’에서 그린 교황의 탄생 과정은 진보와 자유, 보수와 전통, 인종과 성별, 욕망과 권력, 표를 얻기 위한 이합집산 등 세속의 선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갈등과 차별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18명의 추기경들은 2/3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12일간 감금된 채 투표해야 되는데, 애초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 네 명의 추기경 외에 군소후보들이 얻은 표는 투표가 거듭될 때마다 부동표처럼 이리저리 떠다닙니다. 유력후보들은 틈만 나면 표를 얻기 위한 적극적인 섭외활동을 펼치고 심지어 다른 후보들의 ‘약점’이 보이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까지 합니다.
교황 선출 과정을 주관하는 야코포 로멜리 추기경단 단장은 본의 아니게 유력후보들의 ‘약점’을 알게 되면서 고뇌에 빠진 탐정 역할까지 떠맡게 됩니다. 선종한 교황이 남긴 비밀문서들, 유력후보들이 지은 세속의 죄 등이 그것인데 중립적인 선거관리자로서 무척이나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교황 선출 과정을 함부로 왜곡할 수는 없을 테니 로버트 해리스가 그린 ‘콘클라베’는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 읽는 내내 꽤나 충격을 받았는데, 아마 뉴스나 인터넷에서 교황 관련 소식을 들으면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고, ‘바티칸 관료들’ 역시 성스러운 교황의 측근들로만 받아들이진 못할 것 같습니다.
교황, 선거, 미스터리라는 세 개의 큰 축이 떠받친 작품이지만, 상대적으로 미스터리의 힘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대체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반전 역시 소소한 규모로 설정돼있습니다. 다만, 거듭되는 선거가 야기한 팽팽한 긴장감에 신성(神聖)과 세속의 충돌이 낳은 딜레마까지 더해져서 마지막 장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누가 신의 선택을 받게 될지, 또 그는 진정 신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쉽게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미스터리 이상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