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 번째 피해자
천지무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팡멍위는 뛰어난 설치예술가이자 시의원 경선에도 나간 적이 있을 만큼 유명인사다.
그는 6개월 전 세 명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피해자들의 시체를 숨긴 장소를 실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형 판결 직후 자살한다.
하지만 자살 직전 시신들을 숨긴 곳에 대한 단서와 함께 네 번째 피해자의 존재를 암시한다.
한편 방송국 시사프로그램의 아나운서인 쉬하이인은 이 사건을 보도해 승진할 요량으로
팡멍위의 살인행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저우위제에게 접근하여 사건을 파헤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엽기적으로 시신을 훼손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은닉한 희대의 연쇄살인,
사형선고를 받은 범인이 자살한 탓에 ‘은닉된 희생자 찾기’에 몰두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수사,
그리고 부와 명예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에 몰두하는 한 아나운서의 집착 등
꽤 다양한 코드가 범벅이 된 독특한 중화권 미스터리입니다.
특히 막판의 반전과 결말은 일반적인 미스터리 서사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띄고 있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묘한 여운을 얻게 됩니다.
외형적으로는 엽기적 연쇄살인과 옐로우 저널리즘의 폐해 또는 그에 대한 고발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그리 단순한 구도로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은닉됐던 희생자를 찾아낼수록 범인 팡멍위의 범행 동기는 점점 더 오리무중이 되고,
그가 언급한 ‘네 번째 희생자’는 이미 살해됐는지 또는 추종자나 공범에 의해 살해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언론과 대중을 놀리기 위해 설정한 페이크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또, 시청률에 목을 매고 경쟁자를 따돌려 공을 세우려는 아나운서 쉬하이인은
분명 옐로우 저널리즘의 상징처럼 그려지긴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무능한 경찰 대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명탐정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그녀에게 응원과 비난을 동시에 보내게 되는데,
특종에 목맨 야비한 기자와 진실을 위해 분투하는 주인공이 한 몸에 섞인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한국에 소개된 첫 작품이라 작가의 성향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작품만 놓고 보면 ‘배배 꼬는 걸 무척 좋아하는 작가’란 생각이 먼저 들었고,
‘해설’,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곤 ‘역시 괴짜’라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학다식하고, 다양한 소재를 잘 활용하고, 이야기를 복잡하게 설계하는 능력도 있어서
한 번 팬이 되면 금세 애독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끊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배배 꼬는 이야기’에 거부감을 가진 독자라면
쉽게 적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경우, 미스터리를 끌고 가는 필력은 분명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꼬아놓은 나머지 ‘결과를 위한 작위적 설계’라는 느낌을 받은 대목도 있어서
일단 다음에 출간될 작품 한 편쯤 더 읽어보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릴 생각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아마 ‘피맺힌 원수의 영광’ 또는 ‘제4분면’ 중 한 편이 될 것 같은데,
어느 작품이 됐든 빠른 시일 안에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