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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 살인 사건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8년 1월
평점 :
화장품 회사의 한 직원이 계곡에서 흉기에 수차례 찔리고 불에 태워진 채로 발견된다.
피해자가 눈에 띄는 미인이라는 점과 사건의 잔혹성 때문에
삽시간에 언론과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피해자의 입사 동기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평범하고 내성적인 그녀가 피해자와 비교당하면서 열등감에 시달리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
주간지 기자는 피해자의 회사 동료에게 들은 내용들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용의자는 네티즌들에게 '신상 털기'를 당하며 사이버 상에서 유죄 선고를 받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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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직장동료인 연인으로부터 살인사건의 윤곽을 전해들은 한 주간지 기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시로노 미키의 지인들을 인터뷰한 내용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그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시로노는 피살된 노리코와 절친했던 동료였지만
외모와 능력 등 여러 면에서 사사건건 비교를 당해 모욕감을 느꼈던 건 물론
심지어 남자친구까지 빼앗겼던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기자는 시로노의 중고교 친구들, 대학의 절친들, 고향의 가족들까지 샅샅이 만나는데
문제는 진술하는 사람에 따라 시로노가 전혀 다른 인물로 비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그녀를 ‘저주의 힘’을 가진 기괴한 소녀,
또는 피해자를 불태워 죽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잔혹한 심성을 가진 여자로,
또, 누군가는 시로노는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사랑스런 여자였고,
살해된 노리코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여자였다고 진술합니다.
결국 주간지의 추측성 보도와 SNS의 광기 넘치는 관심 때문에
시로노는 조사받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을 거쳐 ‘살인자’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더구나 사건 이후 종적을 감춰버린 탓에 스스로 자백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그리고 막판에 이르러 그날 시로노와 노리코에게 벌어졌던 모든 진상이 반전처럼 드러납니다.
읽다 보면 아리요시 사와코의 ‘악녀에 대하여’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한 여자를 기억하는 27명의 지인들이 진술한 27가지의 각기 다른 내용을 담은 작품인데,
뒤로 갈수록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한 사람에 대한 타인들의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자기위주로 구성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입니다.
‘백설공주 살인사건’ 속 시로노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타인들의 기억은 물론
선정성으로 먹고 사는 옐로우 페이퍼와 익명성의 광기가 넘쳐나는 SNS에 의해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모조리 부정당하거나 왜곡당하는 인물입니다.
심지어 “주간지와 SNS를 보니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르겠다.”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독자들은 그런 시로노의 한탄을 전적으로 믿진 못합니다.
어쩌면 주간지와 SNS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살인 미스터리, 실체 없는 타인들의 기억, 이기심 또는 욕망, 옐로우 페이퍼와 SNS 등
꽤 다양한 소재와 서사가 펼쳐진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미와 긴장감을 갖고 단번에 달릴 수 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또, 영화로 제작되어 성공을 거뒀다는 걸 보면 분명 극성이 강한 건 맞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토 가나에만의 기발한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기대한 독자에겐
제법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지만,
읽을 때마다 편차를 크게 느꼈던 그녀의 작품들 중 딱 한 가운데쯤에 자리한 작품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