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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소나타 ㅣ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11월
평점 :
최강이자 동시에 최악의 변호사라 불리는 미코시바 레이지. 어떤 중범죄를 저질렀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집행유예를 받아내고 만다는 ‘검찰의 원수’, 그만큼 힘 있고 부유한 의뢰인만 상대하며 돈을 매우 밝힌다는 풍문의 변호사, 거기에 소년시절 '시체배달부'라 불린 엽기 살인사건의 범인이었다는 과거까지 놓고 보면 미코시바 레이지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선인이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그가 패색이 짙은 국선 사건에 자원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은 직후, 갑자기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떠오른다. 과연 그의 정체는 살인범에서 개과천선해 착실하게 살아가는 변호사인가, 혹은 그저 법과 상식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알게 된 악인일 뿐인가.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작가 이름 외엔 아무 정보 없이(심지어 띠지와 뒷표지는 일부러 안 본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 탓에 당연히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뒤를 이은 ‘고테가와&와타세 시리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사이타마 현경 수사1과의 고테가와 형사와 와타세 반장은 안 보이고 음울한 과거를 지닌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가 주인공의 비중과 분량으로 등장하기에 뒤늦게 띠지와 뒷표지를 보니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이라고 소개돼있더군요.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에서 열혈형사로서 죽음의 위기까지 넘기며 사건을 해결했던 고테가와의 후속 이야기를 기대했던 터라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선과 악의 경계선을 타는 미코시바 레이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면서 어느 새 조연으로 물러앉은 고테가와와 와타세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강에서 발견된 변사체 사건을 수사하는 고테가와와 와타세의 이야기가 하나이고, 보험금을 노린 가족 살인사건의 피의자를 변호하는 미코시바의 이야기가 또 하나입니다. 물론 이 두 이야기는 자연스레 하나의 줄기로 엮이게 되는데, 특이한 점은 미코시바가 변호사이자 동시에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역할도 겸한다는 점입니다. 즉, 의뢰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 진짜 범인까지 밝혀내려 하는데, 아이러니한 건 그 스스로가 고테가와와 와타세에 의해 용의자로 특정된다는 점입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 작품은 미코시바 레이지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과거를 갖고 있고, 어떤 캐릭터의 변호사인지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시리즈 첫 편이라 당연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사건 수사만큼 재미있게 읽은 대목이었습니다. 미성년자 때 끔찍한 토막살인을 저지르곤 의료소년원에 수감됐던 그가 어떻게 검찰이 이를 갈 정도로 막강하고 멘탈이 강한 변호사가 됐는지를 보여주는 챕터는 살인사건 수사를 다룬 그 외의 챕터들보다 훨씬 더 매력이 넘쳤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인공미가 느껴지긴 하지만 시리즈 주인공으로서의 데뷔 무대로서는 무척 인상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변호사이자 추적자이자 용의자인 미코시바는 사소한 단서에서 출발하여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할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두 조연 고테가와와 와타세도 크게 한몫 거듭니다.) 소시오패스였던 미코시바가 지극히 ‘정상인’으로 탈바꿈한 과정이라든가, 아무도 맡지 않으려던 사건을 맡게 된 속사정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반전의 맛과 법정물의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는데다 독특한 주인공의 매력까지 겸비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토막살인마 출신이자 최강 또는 최악으로 불리는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가 앞으로 어떤 사건들과 마주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