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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평점 :
맨션 13층 쇠갈고리에 매달린 채 발견된 여성의 시체.
그 옆에는 마치 아이가 쓴 듯한 쪽지가 남겨져 있다.
전대미문의 엽기적 범행에 경찰이 허둥거리는 사이,
이번에는 차 트렁크에서 으깨진 남자 시체가 발견된다.
마치 개구리를 잡듯 사람을 사냥하는 범인에게 불안에 떠는 언론과 대중은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출판사의 책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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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는 2014년 ‘살인마 잭의 고백’이란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장기가 사라진 채 참혹하게 훼손된 시체들이 연이어 발견되는 사건을 다룬 그 작품은
제목만큼이나 리얼한 잔혹 묘사와 장기이식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관한 새로운 시각 때문에
그 해 읽은 일본 미스터리 중 중 꽤 기억에 남은 작품이 됐습니다.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는 외형상으로는 ‘살인마 잭의 고백’과 동류항의 작품입니다.
‘매달다’, ‘으깨다’, ‘해부하다’, ‘태우다’ 등의 소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살인범의 행각은 장기 훼손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잔인하게 이뤄지는데,
나카야마 시치리는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한 묘사로 그 과정을 꼼꼼하게(?) 그립니다.
(개인적으로 잔혹한 묘사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꽤 여러 번 속이 불편해지는 걸 느낄 정도로
나카야마 시치리의 문장들은 일부 독자에겐 ‘악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심신상실자 혹은 정신이상자의 범죄, 사적 복수, 매스컴의 폐해 등 사회적 이슈는 물론
신참 경찰의 성장기를 통한 ‘경찰의 정의’까지 다루면서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등장인물들을 통해 약간은 설명적이거나 선언적인 방식으로 여러 주제를 강조한 탓에
살짝 산만해지거나 현학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점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끔찍한 연쇄살인마를 쫓는 주인공은 사이타마 현경의 신참경찰 고테가와 가즈야입니다.
(‘살인마 잭의 고백’에도 고테가와가 등장하는데, 그 작품에선 관할서 경찰로 나옵니다.
다만, 둘이 같은 인물인지, 이름만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큰 공을 세우려는 공명심과 성실한 정의감을 겸비했지만 아직 서툰 점이 많은 고테가와는
과학수사의 시대에 전통적인 ‘직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괴짜 반장 와타세와 콤비를 이룹니다.
늘 와타세에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조금씩 진짜 경찰로 성장해가는 고테가와를 지켜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흥밋거리이기도 합니다.
고테가와는 ‘대반전의 제왕’으로 불리는 자신의 창조주 나카야마 시치리 덕분에
후반부에 이르러 거듭되는 반전을 맛보게 됩니다.
끝났나 싶으면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고, 또 끝났나 싶으면 여지없이 뒤통수를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테가와의 몸은 거의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망가지는데
그야말로 “고테가와가 불쌍해서라도 이제 그만 끝내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고테가와가 겪는 반전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남은 분량만 보고 ‘몇 페이지 안 남았으니 이제 마무리겠군.’이라고 쉽게 단정해선 안 됩니다.
여러 주제가 등장하긴 하지만 핵심은 ‘과연 심신 상실자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는가?’입니다.
그 때문에 출판사에서도 이 작품을 ‘사이코 미스터리’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나카야마 시치리는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연약하고 위험한지를
막판의 연이은 반전을 통해 강렬하게 묘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주제를 부각시킵니다.
즉, 심신 상실은 타고나는 것인가? 조작될 수 있는 것인가? 완치될 수 있는 것인가?
사회적으로 엄격한 통제가 필요한 것인가? 등의 문제가 선명하게 제기됩니다.
또, 비슷한 주제를 다룬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들의 명료한 엔딩과 달리
나카야마 시치리는 독자 스스로 이 주제에 관해 고민할 수 있게끔 독특한 엔딩을 취합니다.
독자에 따라 ‘So What?’ 또는 ‘누구를 미워하란 말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거듭된 반전과 독특한 엔딩이 주제와 잘 맞아떨어지는 설정이란 생각입니다.
2014년 ‘살인마 잭의 고백’ 이후 소식이 없던 나카야마 시치리였지만,
올 2017년에만 무려 4편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간됐습니다.
작품 스펙트럼이 넓다는 평가대로 법의학 시리즈, 변호사 시리즈 등이 한꺼번에 출간됐는데,
저와는 궁합이 딱 맞는 작가라곤 할 수 없지만,
안정적이고 무난하기보다는 럭비공처럼 튀는 매력이 강렬한 작가임엔 틀림없어서
나머지 작품들도 찾아 읽고 싶다는 욕심이 저절로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