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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미 배드 미 ㅣ 미드나잇 스릴러
알리 랜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의 주인공 밀리(본명은 애니)는 만 16살 생일을 앞둔 소녀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청춘의 온갖 에너지를 발산할 나이지만
밀리의 삶은 일반적인 소녀들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궤적을 그려왔습니다.
밀리는 아이 아홉 명을 차례로 학대하고 살해한 엄마를 경찰에 고발한 뒤
엄마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심리학자 마이크의 집에 임시로 머무르게 됩니다.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감추긴 했지만 밀리의 삶은 살얼음 그 자체입니다.
마이크는 최면치료를 통해 더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밀리의 과거를 소환하려 하고,
동갑내기인 마이크의 딸 피비는 집과 학교에서 밀리를 극단적으로 괴롭힙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혔던 엄마를 경찰에 신고하긴 했지만,
밀리는 그 누구보다 엄마와 자신이 닮았다는 사실 때문에 극도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부지불식간에 엄마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의식적으로 엄마의 ‘교훈’대로 타인들을 대하기도 합니다.
과연 밀리는 법정에서 엄마의 죄를 제대로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엄마의 재판이 어떻게 끝나든, 밀리는 그 이후 어떤 인격으로 성장할까요?
정말 밀리는 엄마의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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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마이크의 집에 임시 입양된 밀리는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살게 됩니다.
마이크는 일찌감치 집을 나간 아버지 대신 부성애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인물입니다.
그의 아내 사스키아는 밀리의 엄마와는 180도 다른 무기력한 인물입니다.
마이크의 딸 피비와 그 친구들에게 학교 안팎에서 끔찍한 괴롭힘을 당하지만,
이웃에 사는 불우한 소녀 모건을 통해 처음으로 우정이란 게 뭔지 경험하기도 합니다.
또 전학 간 학교의 미술선생 미스 켐프는 밀리로 하여금
‘우리가 엄마가 저런 엄마였다면..’이란 아쉬움과 회한을 갖게 만드는 따뜻한 인물입니다.
이런 낯선 환경과 인물들은 밀리에게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10대 소녀의 ‘아름답고 긍정적인 성장기’와는 전혀 반대로 전개됩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엄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몸에 자해를 가하는,
그런 참혹한 삶을 견뎌야 하는 밀리의 몸과 마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까발립니다.
물론 밀리는 아주 잠깐씩 ‘이 아늑한 가족 속에 녹아들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마이크나 자신에게 관심을 표시하는 미술선생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서 보호받고 싶다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소소한 바람을 마음속에 키우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공존하기 힘든 양면성을 몸과 마음 안에 깊이 품고 있는 소녀가 바로 밀리입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밀리에게서 사이코패스의 전형이 발현되는 대목을 읽을 때면
진짜 사이코패스의 잔인한 범죄 장면을 읽을 때보다 더 섬뜩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아이는 타고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혹시 엄마보다 더 강력한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맺음 할 것인가?
설정도 캐릭터도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긴 한데
아쉬운 점이라면 초반의 힘이 끝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절반쯤까지는 한 줄 한 줄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꽤나 깊은 몰입도를 요구하는 어지간히 숨 막히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그 뒤론 왠지 동어반복으로 보이는 엇비슷한 에피소드가 계속 이어졌고,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엄마의 재판 부분도 기대보다 파괴력이 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엔딩의 반전은 왠지 사족 또는 덧댄 이야기처럼 공감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묵직한 심리스릴러로 시작했지만,
반전 한 방으로 앞서 전개된 그 많은 이야기를 허망하게 만든 셈이랄까요?
밀리는 내내 ‘굿 미 배드 미’, 즉 ‘좋은 나’와 ‘나쁜 나’ 사이에서 지독한 혼란을 겪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그 지독한 혼란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해보니 저의 바람 중 딱 절반쯤만 이뤄진 것 같았습니다.
다른 독자들의 서평이 무척 궁금해지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