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에스더 헤르호프 지음, 유혜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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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산 끝에 첫 아이를 낳은 디디는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침대에 꼼짝없이 매여 있다.

아기는 사랑스럽고 건강하지만 디디의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한편, 로테르담 경찰서에서 일하는 미리암은 친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올케였던 미망인 헤네퀸을 의심하고 그녀의 뒤를 밟는다.

이때 헤네퀸이 서로간의 믿음이 취약한 신혼부부의 가정 속으로 파고드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이제 갓 엄마가 됐지만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망가진 디디,

디디를 케어하기 위해 산후도우미로 들어온 수상한 여자 헤네퀸,

그리고 헤네퀸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개인적인 수사를 하는 로테르담 형사과장 미리암 등

번갈아 화자를 맡는 세 명의 여자는 제목대로 악연으로 얽힌 사이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되는데,

하나는 디디의 가족을 망쳐놓기 위한 헤네퀸의 현재의 소시오패스적 행각이고,

또 하나는 미리암의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는 헤네퀸의 사악하고 비극적인 과거사들입니다.

헤네퀸은 산후도우미로서 디디와 오스카 부부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그들을 응징할 의지를 드러내는데,

그녀와 그들 부부 사이의 과거의 악연은 미리암의 수사를 통해 한꺼풀씩 밝혀집니다.

오빠의 의문의 죽음에 올케 헤네퀸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하는 미리암은

헤네퀸의 수상쩍은 세 번의 결혼 이력은 물론 유년시절까지 집요하게 조사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헤네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 왜 산후도우미로 위장하여 디디와 오스카 부부에게 접근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시작과 동시에 범인을 공개한 뒤 ?’라는 질문, 즉 범인의 동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인데,

이런 류의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사악한 목적을 갖고 가족 안으로 파고든 외부인은 그 존재만으로도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특히 그 대상이 갓난아기가 있는 가족이라면 독자가 느끼는 위기감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리고 한쪽에서 그 외부인의 정체를 밝히는 주인공의 수사가 병행되면서

이 가족이 맞닥뜨리게 될 위기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량도 서사에 맞게 적절하고, 페이지도 금세 넘어갈 만큼 속도감을 자랑하지만,

단선적인 이야기의 뼈대와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개는 무척 아쉬웠습니다.

헤네퀸의 과거는 그다지 충격적이거나 새롭지 않았고,

디디 부부나 미리암과의 악연도 작가의 거듭된 강조에도 불구하고 인상 깊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지고 페이지는 계속 넘어가는데 뭔가 양념이 덜 들어간 듯한 느낌이랄까요?

가족의 문제가 얽힌 탓에 경찰 조직 모르게 단독 수사를 벌여야 하는 미리암의 행보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순 탐문 이상의 재미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심심함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막판의 무리한 반전은 오히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So What?이란 반문이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였으니까요.

 

네덜란드 최고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헤반 크라임존상'을 수상한 작품이라지만,

외양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은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캐릭터를 그리는 힘이나 단순하긴 해도 매끄러운 필력은 인상적이어서

혹시 에스더 헤르호프의 신작이 나온다면 한번쯤은 꼭 다시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2006년에 데뷔해서 네덜란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소개글을 보면

그녀의 진짜배기 작품을 기대하는 것도 무모한 일은 아닐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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