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기억
다카하시 가쓰히코 지음, 오근형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기억을 소재로 한 소름 돋는 7편의 괴담이 실린 작품집입니다.

중년의 주인공들이 오랫동안 봉인해온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마주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그 기억들은 하나같이 기이하거나 미스터리한 죽음과 연관돼있습니다.

또 그 죽음은 유령, 불륜, 근친상간, 식인(食人), 욕정 등

금기시 여겨지는 원시적 사연들이 내포된 것들이라서 더더욱 으슬으슬한 느낌을 전합니다.

 

누군가는 어릴 적 자신이 살던 마을의 세세한 지도를 우연히 본 것 때문에,

누군가는 박물관 직원이 갖고 온 낡고 오래된 온천여관의 사진 한 장 때문에,

또 누군가는 어릴 적 친구들과 즐거웠던 한때를 회상하며 나눈 이야기 한 토막 때문에

스스로 꼭꼭 억눌러놓았던 참혹한 기억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이 자신의 기억을 봉인한 대부분의 이유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죽였거나, 누군가의 죽음을 방조했거나, 누군가의 죽음에 영향을 미친 죄책감입니다.

어린 나이의 자아들은 그 공포를 견뎌내지 못했고,

결국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시간과 공포와 기억을 모조리 봉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봉인이 해제된 기억과 마주한 주인공들은 엄청난 패닉에 빠집니다.

 

사실, ‘봉인된 기억이란 것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고,

그래서 강고하게 봉인됐던 기억들이 무려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서야

(어떤 계기로든) 해제된다는 설정은 독자에 따라 지나친 허구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간간이 위화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매력적인 기억에 관한 괴담 판타지라는 생각입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오키 상 수상작인 이 작품집이

국내에서 크게 입소문이 나지 않은 것은 예상외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저만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요.^^;)

 

아직 읽지 못한 샤라쿠 살인사건때문에 작가의 이름은 낯익었지만,

검색을 해보니 국내에 이 작품 외에 전생의 기억도 출간돼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모두 세 권의 기억 연작 소설집을 출간한 걸 보면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이 작품집의 독특함이 우연한 산물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2011년 이후 더는 다카하시 가쓰히코의 신작이 출간되지 않은 점이 아쉬운데,

그나마 네이버 카페 일미즐의 일반독자님 추천 덕분에

이 작품을 만나게 된 걸 다행으로 여겨야 될 것 같습니다.

기억 또는 괴담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저 역시 강추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