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들
카린 슬로터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24년 전, 큰딸 줄리아의 실종 이후 캐럴 집안은 산산조각 났다.

둘째 딸 리디아는 약물에 중독된 채 가족과 절연했고,

아버지 샘은 딸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애쓰다가 결국 자살했다.

막내 클레어만이 폴과 결혼하여 백만장자의 트로피 아내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왔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폴이 살해당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미망인 된 클레어는 폴의 컴퓨터를 정리하던 중 봐선 안 될 파일을 보게 된다.

클레어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경찰은 별일 아닌 듯 대할 뿐이고,

느닷없이 찾아온 FBI 요원은 클레어에게 폴에 관한 집요한 심문을 멈추지 않는다.

18년 간 사랑해온 남편 폴의 추악한 모습 때문에 패닉에 빠진 클레어는

컴퓨터 파일 뒤에 숨은 진실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절연했던 언니 리디아에게 연락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클레어와 리디아는 끔찍한 참극에 휘말리게 된다.

 

● ● ●

 

백만장자에 사랑이 넘치던 남편이 실은 끔찍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클레어가

오랫동안 절연했던 언니 리디아와 함께 남편 폴의 추악한 비밀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설정 자체는 크게 새롭지 않지만, 비극적인 가족사가 사건과 한데 엮여 전개되면서

기존의 비슷한 설정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매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를 검색해보니 이 작품 이전에는 2004년 북스캔에서 출간된 의혹 1~2’이 전부더군요.

‘19딱지가 붙어있던데, ‘예쁜 여자들을 읽고 나면 충분히 납득될 만한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이 꽤 잔혹하고 불편한 장면들을 많이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 테스 게리첸의 의사 3부작과 막심 샤탕의 악의 3부작을 좋아하는데,

두 시리즈 모두 잔혹함과 스릴러로서의 매력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쁜 여자들의 경우 두 가지 면 모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우선, 납치-고문-살인으로 이어지는 잔혹함의 수준은 꽤 높은 편이지만

다분히 과장되거나 강요하는 분위기, 또는 보여주기 식설정이어서

독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만 할뿐 정작 필요한 긴장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뭐랄까, “누가 나보다 더 잔인하게 쓸 수 있겠어?”라는 느낌까지 받았다고 할까요?

 

스릴러로서의 매력 역시 하염없는 심리 묘사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때문에

작가의 명성에 비해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후반부에 실린 옮긴이의 말이나 인터넷 서점에 소개된 작가 인터뷰를 보면,

기존 작품들과 달리 오롯이 범죄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춘 스릴러”,

범죄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건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되었다.”라고 돼있는데,

이 문구들처럼 내용의 상당 부분이 현재 시점의 화자인 클레어와 리디아의 심리상태,

또는 과거 큰딸 줄리아의 실종 이후 캐럴 일가가 겪은 패닉 상태에 할애된 탓에

비슷한 분량의 여느 스릴러에 비해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도 느리고,

동어반복처럼 느껴지는 감정과잉의 문장들이 지루하게 읽힌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이 작품의 의도 자체가 범인이나 진실 찾기가 아니라

실종 이후 슬픔과 상실감에 젖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고통과 분노에 사로잡혔다가

점차 죄책감과 자기 파괴로 이어지고 결국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에 있기 때문에

그런 미덕에 매력을 느낀 독자들은 충분히 재미있는 책읽기를 경험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호불호가 꽤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법의학자와 형사가 함께 사건을 수사하는 그랜트 카운티 시리즈’,

연방수사국 특별요원 윌 트렌트를 주인공으로 한 윌 트렌트 시리즈가 대표작이던데,

개인적으로는 출간 순서가 좀 어긋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들이 먼저 출간됐더라면 스릴러로서의 만족감은 물론

작가에 대한 호감도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카린 슬로터의 작품들이 계속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대표작 시리즈라면 한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은 분명 있습니다.

예쁜 여자들이 아쉬움을 남긴 작품임엔 틀림없지만

적어도 작가의 필력만큼은 힘과 매력이 모두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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