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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명문 사립중학교 입시준비를 위한 호숫가 별장에서의 합숙수업에 네 가족이 참여합니다.
단순히 아이들 때문에 친해졌다고 보기엔 어딘가 불온해 보이는 네 쌍의 부부들,
공부에 치어 그 또래의 활력을 잃은 네 아이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학원강사 등 모두 13명이
풍광 좋은 히메가미코 인근의 별장에 머무는 동안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범인이 자백까지 하자 학부모 중 한 명인 나미키 순스케는 경찰에 신고할 것을 주장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신을 유기하고 사건을 은폐할 것을 주장합니다.
결국 모두가 공모한 결과 시신은 호숫가 깊은 곳에 버려지지만,
나미키 순스케는 이 합숙 자체는 물론 부부들의 수상한 행동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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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방치된 ‘장식용’ 책들을 어떻게든 조금씩 소화해야겠다는 생각에 목록을 작성하다가
아직 읽지 못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을 고르게 됐습니다.
2005년에 국내에 소개됐으니 벌써 10년도 훌쩍 넘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 대가로서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다루고 있는 주제나 미스터리의 구도로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일본의 입시문제,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가족의 균열, 살인사건 은폐를 둘러싼 미묘한 갈등 등
어쩌면 무척이나 상투적인 코드들로 이뤄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위화감이나 작위성도 느껴지지 않고 술술 잘 읽힙니다.
그야말로 독자들이 어디에서 궁금증을 느끼고, 어디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또, 어디쯤에서 독자의 뒤통수를 쳐야 효과적일지 정확하게 알고 설계된 작품 같았습니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에서조차 쉬운 문장들과 간결한 묘사 때문에
깊이감이 부족해 보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형적인 특징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현실감과 인물들의 감정이 워낙 탄탄하고 생생하게 그려져서
근래 출간된 일부 억지스럽거나 난해한 작품들에 비해서는 매력적으로 읽혔습니다.
무대는 ‘열린 밀실’처럼 외부인이 간섭할 여지가 없는 호숫가 별장이고,
경찰이나 탐정 없이 주인공이 진실을 밝힌다는 점,
또 예리한 독자라면 쉽사리 엔딩을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투적인 구조로 보이긴 하지만,
적절한 분량과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전개로 인해 그런 아쉬움은 모두 상쇄될 수 있습니다.
줄거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안 했는데,
초반부터 워낙 결정적인 단서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라
누가 죽었고, 누가 죽였는지조차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출판사의 소개글이나 앞뒤 표지도 무시하고
바로 본편 읽기에 들어가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