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이 일하던 가게의 손님이던 오치아이의 제안으로 바(bar)의 공동경영자가 된 무카이.

그는 과거의 삶을 버리고, 믿을 수 있는 파트너와 자신의 성()을 새롭게 구축하였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소박하지만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버려버린 과거에서 도착한 한 통의 편지가 예전에 봉인한 기억을 되살린다.

그들은 지금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출판사의 책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줄거리나 인물들을 좀더 상세하게 소개하고 싶었지만,

출판사의 절제된소개글을 보니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렇듯 어중간한 인용에 그쳤습니다.

다만, 궁금증 유발 차원에서 한두 줄만 더 한다면,

살인을 약속한 대가로 어두운 과거와 단절하고 새 삶을 얻었던 주인공이

15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의 실행을 요구받으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입니다.

 

최근 읽은 야쿠마루 가쿠의 두 작품(‘기다렸던 복수의 밤’, ‘악당’) 모두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30년 전의 과거사를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이런 설정은 주인공의 고뇌, 갈등, 상처를 그 기간만큼 깊고 절실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서

사회적 문제나 개인의 복수를 주로 다루는 야쿠마루 가쿠의 서사와 잘 매치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무카이 사토시는 인생에서 결정적인 두 번의 딜레마와 마주칩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먼 미래에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약속을 해야 하는 상황이 하나이고,

15년 간 봉인했던, 결코 현실이 될 거라 여겨본 적 없는 그 약속의 이행을 요구받게 됨으로써

지금껏 일궈온 소소한 행복과 단란한 가족을 모조리 깨부숴야 하는 상황이 또 하나입니다.

과거, 나름의 절박한 사정으로 영혼을 팔아 위기를 넘겼지만,

결국 그 거래가 혹독한 부메랑으로 돌아와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 경우라고 할까요?

 

무카이는 과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까?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약속한 자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혹시, 살인을 포기한다면 그는 어떤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까?

무카이에게 약속된 살인의 이행을 요구하는 자는 과연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이런저런 의문과 궁금증과 긴장감이 팽팽하게 펼쳐진 상황에서

무카이는 그에게 주어진 얼마 안 되는 시간 안에 미션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야쿠마루 가쿠의 주인공들 대부분이 무카이와 같은 사면초가의 신세였는데,

그들과 마찬가지로 무카이는 행복하다고도, 불행하다고도 할 수 없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그것은 이 비극의 출발점이 결국은 무카이 자신이 저질렀던 젊은 날의 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죄를 저지른 사람은 새 삶을 꿈꿀 수 없는 것일까?’라는 홍보 문구는

아마도 무카이의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짚어낸 한 줄 카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지막에 드러난 한 조각의 진실이 조금은 작위적으로 구성됐다는 점입니다.

뭐랄까, 무카이를 조금이나마 구원하기 위해 작가가 이런저런 변명을 하는 느낌이랄까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지만,

이 작품을 다 읽은 독자라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유일한 옥의 티인 건 분명합니다.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들은 사이즈나 구성 면에서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긴 하지만

주인공들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리적 딜레마에 관한 한

여느 대작보다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런 주인공이 사회적 문제나 개인의 복수라는 주제 속에 던져지면서

이야기는 힘과 긴장감과 호기심을 함께 얻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소위 문학적 멋내기는 찾아볼 수 없는 쉽고 평이한 문장들이지만

오히려 더 깊고 오래가는 여운을 남기는 것 역시 야쿠마루 가쿠만의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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