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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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미식축구 선수, 아내와 딸과 처남을 참혹한 범죄로 잃은 전직 경찰, 그리고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려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가 창조한 특이한 히어로 에이머스 데커는 전작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살해한 범인을 갖은 고난 끝에 밝혀냈고, 이번엔 FBI의 객원요원이 되어 20년 간 사형수로 갇혀있던 한 남자의 진실을 추적합니다.

 

미식축구선수였던 멜빈 마스는 20년 전 부모 살해범으로 체포됐습니다. 물증, 동기, 목격자가 워낙 확고해서 꼼짝없이 유죄를 선고받았고, 20년의 수형기간을 보낸 현재, 사형집행일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형수가 자신이 마스 사건의 진범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태는 급반전됩니다.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인연을 맺은 FBI 로스 보거트의 제안으로 미제 사건을 다루는 신설 특별수사팀에 참여한 데커는 마스 사건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을 갖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이 살해된 사건 때처럼 갑자기 누군가 자신이 진범이라며 나선 점, 마스와는 대학시절 미식축구선수로서 직접 경기장에서 만난 적이 있던 점, 그리고 무엇보다 마스가 사형수로 보낸 20년의 세월 뒤에 묻힌 비밀에 대한 의문 때문입니다.

 


전작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개인적으로 2016년 베스트 11으로 꼽았던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1년 만에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명탐정데커를 다시 만난 건데, 그는 더욱 매력적인 인물이 됐고, 사건은 더욱 복잡하고 강한 비극성을 지녔으며, 페이지는 훨씬 더 빨리 넘어가는, 그야말로 기대에 100% 부응한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20년을 복역한 한 사형수의 억울한 사연은 단순히 진짜 범인은 누구?’를 넘어 한 가족의 비극과 미국 남부의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상처로까지 확장되면서 서사의 무게를 꽤 묵직하게 만듭니다.

 

거의 원 맨 밴드에 가까웠던 전작에 비해 이번에 데커는 여러 조력자들과 함께 합니다. 보기 드물게 선한(?) FBI 요원 보거트와 얄밉고 집요한 저널리스트 알렉스 재미슨은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데커와 호흡을 맞추는데 케미는 좀 부족해도, 데커의 든든한 의지처 또는 지원사격조로 활약합니다. 그 외에 심리학자 대븐포트, 전형적인 FBI 요원 밀리건도 맛깔난 양념 캐릭터들입니다. 이들은 상부의 압력, 보이지 않는 적들의 기습과 살해 위협 속에서도 꿋꿋이 팀워크를 유지하며 20년 전의 진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사실, 이번 작품에서 데커의 과잉기억증후군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가족을 그리워하거나 대학시절 경기장에서 맞닥뜨렸던 마스를 떠올리는 일을 위해 활용될 뿐 정작 수사 과정에서는 미미한 정도로만 언급되는데, 전작을 읽은 입장에선 오히려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기억에 의존한 특별한 수사가 강조됐더라면 오히려 작위적으로 보였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데커를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난 독자라면 주인공이 과잉기억증후군이라던데, 별 거 없네.”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과잉기억증후군 대신 작가는 데커에게 냉정함과 가차 없는 판단력을 부여했는데, 거기까지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였지만, 거의 천재적인 명탐정처럼 활약하는 데커는 어딘가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컴퓨터 비밀번호를 쉽게 알아내고, 평범한 단어 하나에서 결정적 단서를 유추하고, 누구도 생각 못한 엄청난 상상력으로 사건의 골격을 파악합니다. 또 현장에서 단서를 찾아낸다기보다 두뇌활동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서 때론 안락탐정의 분위기까지 풍긴 점은 유감이었습니다. 거침없이 넘어가던 페이지가 2/3쯤 잠시 느슨해졌던 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번역 제목인데, 전작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원제인 ‘Memory Man’의 적절한 의역으로 보인 반면,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원제 ‘The Last Mile’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The Last Mile’사형집행장까지 죄수가 걷는 마지막 길을 뜻하는데다 멜빈 마스는 어느 모로 보나 괴물이라 불릴 만한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전작과 운율을 맞추기 위한 의도로 보이는데, 오히려 내용이나 원제에 충실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소소한 아쉬움을 제외하곤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올해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시리즈 첫 두 편이 모두 제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이제 데이비드 발다치를 관심목록 최상단에 올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여 년 동안 30편이 넘는 작품을 쓴 데이비드 발다치가 2016년에야 한국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신간이 아니라도 그의 과거 작품들이 한 편이라도 더 빨리 소개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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