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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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요리사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일본의 젊은 여성 작가가 일본인은 단 한 명도 안 나오는 전쟁 소설을 썼다는 점,

심지어 그 전쟁이 70여 년 전에 벌어진 2차 세계대전이란 점,

그리고 주인공들은 용맹한 전투병도, 카리스마 넘치는 장교도 아닌 홀대 받는 조리병인데다

장르는 전쟁터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의 진실을 찾는 일상 미스터리라는 점 등

어느 하나 일반적인 상식과는 거리가 먼 특징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5개의 챕터로 이뤄져있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전개된 프랑스를 비롯, 네덜란드와 독일 등

여러 곳의 전선을 이동하는 중에 벌어진 5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공수부대의 낙하산을 은밀히 모으는 병사의 비밀,

보급 창고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 무려 600상자 분량의 분말 달걀의 행방,

네덜란드 민가에서 벌어진 장년 부부와 정체불명의 민간인의 괴이한 죽음,

한밤중의 설원을 떠도는 유령 병사의 정체,

그리고 반역죄의 위험을 무릅쓰고 벌이는 기가 막힌 탈주극 등이 그것입니다.

 

사실, ‘가혹한 전장에서 사랑스러운 조리병들이 선사하는 일상 미스터리라는,

이 작품을 함축한 한 줄 카피를 본 순간 제일 먼저 든 느낌은 이질감이었습니다.

마치 궁합이 안 맞는 음식을 한꺼번에 입에 넣은 듯한 식감이랄까요?

피비린내 넘치는 전쟁터와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는 후방의 조리병들이

희극에 가까운 미스터리 쇼를 벌이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잘 만들어졌거나 여운이 남는 일상 미스터리라면 꽤 좋아하는 독자 가운데 하나지만,

전쟁 + 조리병 + 일상 미스터리 = 비현실적인 희극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첫 챕터를 보곤 저의 예상이 크게 빗나가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지나치게 성급한 예단이었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면서

이 작품이 일본에서 꽤 화제가 됐던 것이 괜한 허세는 아니었음도 흔쾌히 인정하게 됩니다.

작가는 풋내 나는 신병 팀 콜이 전쟁터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에 맞춰

그가 맞닥뜨리는 사건도 점차 묵직하고 큰 규모로 키워간 것입니다.

 

조리병이지만 유사시엔 낙하산으로 적진에 투입되어 전투에 참가해야 하는 공수부대원 콜은

덩치만 큰 어린애라고 키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면서 어쩔 수 없이 전쟁의 광기에 조금씩 전염됩니다.

타고난 선함과 후천적으로 습득한 광기 사이에서 콜은 갈등하고, 괴로워하면서 성장합니다.

다행히도 콜 곁에는 에드라는 소중한 멘토가 존재했고,

콜은 에드와 함께 전방 혹은 후방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을 함께 해결하면서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광기에 함몰되는 비극도 면하게 됩니다.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는 초반의 미스터리와 달리

뒤로 갈수록 사건은 일상 미스터리의 범주를 벗어나 명백한 전쟁 미스터리로 진화합니다.

거기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절실한 욕망이 깔려있기도 하고,

전쟁의 양상에 따라 이웃에서 원수로 탈바꿈하는 민간인들의 비극이 개입되기도 하고,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흑백논리만 존재하는 전쟁터의 아이러니가 빚어낸 참극도 끼어듭니다.

그래서인지 중반 이후의 콜은 조리병이라기보다 미군 공수부대원의 느낌이 더 강해지는데,

이는 가혹한 전장에서 사랑스러운 조리병들이 선사하는 일상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에겐

다소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출판사 소개글 중에 요리사 버전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란 문구가 있는데,

어쩌면 이 문구가 이 작품을 좀더 적확하게 함축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스터리 자체만 놓고 보면 복잡하거나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터라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이 미스터리의 아쉬운 부분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어서

꽤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면서 색다른 미스터리도 함께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주말 한나절쯤 투자해서 팀 콜과 그의 동료들이 벌이는 독특한 이야기를 만끽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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