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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 개정판 ㅣ 변호사 고진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평점 :
(2010년 9월 들녘에서 출간된 초판을 읽고 썼던 서평을 다시 업로드한 것입니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앞서 읽은 ‘붉은 집 살인사건’이나 ‘유다의 별’에 비해 비교적 소소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독특한 구성과 연이은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또, 경위를 듣는 것만으로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는 ‘안락의자 탐정 고진’과
사소한 단서만으로 수사의 맥을 짚는 ‘명탐정 고진’의 매력을 동시에 맛볼 수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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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경찰서 이유현 팀장은 독신자 아파트에서 벌어진 남녀피살사건을 수사하며
조금은 무리한 방법으로 용의자를 특정하여 기소한 끝에 결국 쓴맛을 보게 됩니다.
사건에 끼어든 고진은 이유현 팀장으로부터 사건 개요를 듣는가 하면,
사건 현장을 찾아가 이런저런 단서를 확보한 끝에 나름 용의자를 특정합니다.
이유현 팀장은 고진의 충고대로 수사를 진행하지만 결과는 엉뚱하게만 나올 뿐입니다.
완벽한 알리바이, 가늠할 수 없는 범행수법, 모호할 뿐인 범행동기 등
수사를 할수록 진실은 더 멀어지고, 이유현 팀장은 조언해준 고진에게 오히려 화가 납니다.
결국 안락의자를 벗어나 현장을 탐문하고 관련자들을 만나본 고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충격적인 진실을 이유현 팀장 앞에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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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소개된 사건의 규모나 서론만 놓고 보면
혹시 이 작품이 단편집 또는 중편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리 두꺼운 분량은 아니지만, 설마 이 사건만으로 장편을 끌고 간다고?”
사건은 단순하고, 관련자들도 한정되어 있지만
의외로 해결의 실마리는 드러나지 않고,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완벽합니다.
분명 단서가 될 만한 정황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지만,
도무지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려워진 탓에 수사는 계속 제자리를 맴돌 뿐이고,
안락의자 탐정 고진의 추리마저 번번이 벽에 막히면서 이야기는 밀도를 높여갑니다.
사실 고진이 이유현 팀장에게 조언을 해줄 때마다
독자는 “이번에는...”하면서 사건이 해결되는 게 아닐까, 기대하게 됩니다.
그만큼 추리도 완벽하고, 범행동기도 그럴듯하게 설명되기 때문인데,
남은 분량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고,
결국 예상대로 용의자는 고진과 이유현 팀장을 보기 좋게 넉다운 시킵니다.
이런 구성 덕분에 독자는 마치 고진 또는 용의자와 두뇌싸움을 벌이는 듯한
색다른 긴장감과 재미를 만끽하게 됩니다.
치열한 논리의 싸움, 알리바이 깨기, 사소한 단서들 속에 꼭꼭 숨은 진실 찾기 등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은 작은 사건 속에서 미스터리의 미덕을 실컷 맛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거만해 보이기도, 얄미울 정도로 똑똑해 보이기도 한 고진의 캐릭터도 맛깔나고,
욱하는 성질과 돌직구 같은 추진력을 보여준 이유현 팀장의 캐릭터도 재미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의 진상은 충격적이고,
거의 완벽하게 준비된 범행수법과 곳곳에 매복된 사소한 단서들은
도진기 작가가 얼마나 꼼꼼하게 설계도를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매력적인 대목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 좀 애매한 서평이 됐지만,
부담 없는 분량에 알찬 미스터리를 맛보려는 독자들에겐 더없이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