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복수의 밤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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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선 잘 안 쓰는 단어지만 시대극이나 사극을 보면

기구한 인생이란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비록 허구의 드라마라 하더라도 그런 인생을 부여받은 등장인물들은

그야말로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은 참혹한 우여곡절들을 겪기 마련이고,

혹시 드라마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돼서 해피엔딩을 맞이하더라도

상처뿐인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 자체를 끔찍하게 여길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기구한 인생이란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누구에게라도

날벼락처럼 떨어질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가타기리 타츠오에게 그 숙명이 찾아든 것은 30여년 전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예쁜 딸과 함께 가난하지만 건강한 미래를 꿈꾸던 가타기리의 인생은

단골 이자카야에서 횡포를 부리던 야쿠자를 저지하려던 사소한 행동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상해죄로 전과자가 되면서 직장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가족마저 붕괴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가타기리는 얼굴에 추악한 문신을 새긴 뒤 연이어 범죄를 저질러왔고,

30여년의 시간을 전국의 교도소를 전전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러던 그가 강도사건으로 5년을 복역한 뒤 출소하여 단골 이자카야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태연스레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것을 예고합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Last Night’인데, 개인적으로는 번역 제목 자체가 좀 과했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직설적이고 올드한 냄새도 문제지만, ‘셀프 스포일러란 점이 아쉽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금만 읽으면 주인공 가타기리가 그저 평범한흉악범이 아니란 건 금방 알게 되지만

그래도 복수라는 코드는 어느 정도 감춰져 있다가 등장하기 때문에

굳이 번역 제목을 통해 미리 독자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는지는 다 읽은 지금도 의문입니다.

 

아무튼...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은 대체로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되지만

매번 읽을 때마다 사회파이상의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운을 느끼곤 했습니다.

천사의 나이프’, ‘하드 럭’, ‘악당이 모두 그랬는데,

세 작품의 주인공 모두 기구한 인생을 부여받은 안쓰러운 캐릭터들이긴 하지만,

그들에 비하면 가타기리는 백만 배쯤은 더 기구한 인생을 산 셈이라,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여운 역시 그만큼 진하고 오래 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순간에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가타기리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게 이입하기도 했습니다.)

 

한 개인의 비극을 디테일하게 그린 휴먼드라마와 빈틈없이 정교하게 설계된 미스터리가

적절한 비율로 잘 배합된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들은 매번 만족스런 책읽기가 되곤 했는데,

기다렸던 복수의 밤천사의 나이프만큼이나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픽션이긴 해도 가타기리의 참혹한 비극을 재미있다라고 소개하는 게 어색하긴 하지만,

탄탄한 미스터리와 묵직한 여운을 찾는 독자에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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